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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초조함 뒤에 은근히 찾아든 해방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쩌다 스마트폰 없이 지내게 됐다. 오늘로 벌써 열하루째다. 무슨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술자리 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잃어버렸을 뿐이다. 보험을 적용받아 새 전화기가 나올 때까지 임대폰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그냥 한번 버텨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온갖 불편이 밀려들었다. 약속 장소에 늦어질 때 전화로 미리 알리지 못하는 결례를 범한 적도 있다. 스마트폰에 입력해 놓은 일정·약속을 기억만으로 복구하자니 답답하고 불안했다. 가장 아픈 건 전화번호부였다. 그나마 1년 전쯤 노트북 컴퓨터에 전화번호부를 복사해 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상당수가 016·018 등 옛 국번이어서 통화가 먹통이긴 했지만.

 작심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40일간 지냈던 독일의 프리랜서 기자 크리스토프 코흐는 스마트폰이 들어 있던 허벅지 부분이 부르르 떨리는 ‘유령진동’ 현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팔이 절단된 사람이 없어진 팔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코흐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휴대전화가 들어 있던 왼쪽 주머니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허전해지곤 했다. 코흐는 40일의 오프라인 기간 동안 많은 원고 청탁을 놓치는 대가를 치렀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지(紙) 기자 알렉스 륄레도 6개월간 인터넷·휴대전화 없이 살아보고 그 과정을 책으로 펴냈다. 인터넷뱅킹을 못 하게 되면서 은행에 가서 손으로 계좌이체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고, 공중전화기를 이용하기 위해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갖고 다녔다. 궁금한 것이 생길 때 전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검색하면 해결됐지만, 실험 중엔 그럴 수 없어 새벽에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다.

 나의 경우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이용했고 집·회사의 전화기를 썼으니 코흐나 륄레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소득은 크다. 스마트폰으로 바깥세계와 연결하는 데는 의사교환·공감·오락 등 여러 동기가 작용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중 절반쯤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연결이었다. 소통이 끊겨도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정확히 말해 아쉬운 쪽은 나지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화 상대는 나 자신이지 바깥세상이 아니었다. 초조·허전함에 익숙해질 즈음 늦게 떠난 손님처럼 조용히 찾아오는 은근한 해방감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한 엄청난 소통의 양(量)을 질(質)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울리히 슈나벨이 저서 『휴식』에 소개한 ‘자동면도기의 악순환’이 떠오른다. ‘내가 빠르게 면도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해 자동면도기를 발명하기 위해서다. 더 많은 시간이 생기면 더 성능 좋은 면도기를 발명할 것이고, 그럼 더 빨리 면도할 수 있을 테니 남은 시간을 이용해 더욱 더 빠른 면도기를 발명하고…’.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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