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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척 신화’ 이순신 명량해전 뒤엔 사대부들 배 1000척 응원 있었다

명량해전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사호집』.
1597년 9월 명량해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12척의 배로 133척을 거느린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다. 이 놀라운 승리 뒤에는 피란을 포기하고 수군에게 식량과 옷 등을 조달해준 사대부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참모 오익창이 쓴 산문집 공개

 당초 조선수군의 패배를 예감하고 인근 외딴 섬으로 피란을 가기 위해 배를 띄운 사대부들은 이순신의 수하에서 일했던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1557∼1635)의 다음과 같은 설득에 마음을 바꾼다.



 “통제사(이순신)가 패하게 되면 우리의 울타리가 철거될 것이니, 비록 외딴 섬에서 저마다 보전하고자 한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힘을 모아 합세해 통제사를 위해 성원(聲援)한다면 온전히 살길이 있을 것이니, 가령 모두 죽을지라도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했다는 명분은 있게 될 것이오.”



 명량해전 당시 조선수군의 절박했던 상황과 이를 극복한 과정 등을 알려주는 사료가 나왔다. 『난중일기』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18일 공개한 오익창의 산문집 『사호집(沙湖集)』이다. 『사호집』은 영조 49년(1773)에 간행된 2권짜리 문집이다.



 책에는 명량해전 당시의 전황과 오익창의 활약상이 상세히 묘사됐다. 오익창은 피란을 가려는 사대부들을 설득하는 글을 지어 여러 선박에 돌렸고, 이에 감화받은 사대부들은 1000여 척의 배를 전함 12척의 뒤쪽에 세워두고, 소리를 질러 군사들을 응원했다.



 수군들이 먹을 식량이 떨어지자, 그는 사대부들의 배에서 저고리와 쌀가마를 거둬 군졸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또 왜군의 총탄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배에서 솜이불 100여 개를 거둬 물에 적셔 전함에 걸어두기도 했다.



 오익창은 전북 고창 출신의 유학자다. 41세 때 명량해전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거북선 건조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당사도(전남 신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기려 했던 이순신 장군에게 “영험한 기운이 있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군졸들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공의 힘이었다”며 그를 치하했다. 하지만 이듬해 이순신 장군이 죽음을 맞게 되면서 그의 공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효종 때에 이르러서야 우재(尤齋) 송시열이 당시의 문서를 발견하고 오익창의 포상을 왕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노 소장은 “400여 년간 책을 보관해 온 오익창의 후손으로부터 2010년 『사호집』을 입수해 이를 번역했다”며 “그동안 감춰져 있던 오익창이라는 인물의 면모와 조선수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주는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한글 완역본 『사호집』(관월출판사)도 이날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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