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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위에 주사 … 돈줄 쥔 공무원이‘갑’

세계 10위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과학계의 연구조건은 명(明)과 암(暗)이 뚜렷하다. 연구개발(R&D) 투자라는 면에서 보면 세계 정상 수준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R&D 투자는 연 9.6%씩 증가했다. 증가율로 보면 일본 다음 가는 세계 2위다. 투자총액(2012년 16조원)으로도 세계 5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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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R&D 투자의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과학계 연구환경은 이를 못 따라간다. 여전한 관료주의와 무리한 연구관리,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 비정규직 증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나로호 1, 2차 발사 실패 여파로 나로호 사업을 이어받을 한국형 발사체 사업 예산이 30% 삭감됐다. 사진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위성 시험동에서 연구원들이 다음 달 말로 예정된 나로호 3차 발사 때 실릴 과학위성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고흥=연합뉴스]
 ◆군림하는 관료들



정부출연연 연구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박사 위에 주사(6급 공무원의 옛 명칭)’. 연구원 위에 공무원이 군림한다는 비유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만난 한 연구원이 털어놓은 얘기다.



 “연구책임자급이 되는 날부터 연구는 물 건너갑니다. 연구 프로젝트를 따내려고 공무원들에게 밥 사고 술 사야 합니다. 프로젝트 두세 번 거치면 연구능력은 소진되고 뒷방 신세가 됩니다. 팀원은 상급 정부부처 주사, 사무관이 써야 할 보고서를 대신 써주기도 합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교수·연구원이 공무원을 상대로 연구비를 따려고 ‘사정’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 논리로 왜 중요한지를 설득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 넘는 연구비 관리



무리한 연구비 관리도 연구환경을 해치는 요소다. 지난해 4월 연구비 유용 혐의로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KAIST 박태관 교수가 대표적 사례다. 박 교수의 아내는 당시 대학 인터넷망에 “이런 식의 감사라면 누구도 온전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5년간 대전·충남지역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비 관리담당 사무원으로 일한 이모(31·여)씨는 자신이 겪은 지나친 관리 행정 실태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36만원짜리 모니터 2대를 사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써야 했습니다. 위탁기관이 견적가와 이유서·용도·설명서 등 7가지를 첨부하게 했습니다. 장비 시리얼 번호, 장비 사진, 구입내역서, 어느 방의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등도 내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닌가요.”



 이런 문제에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그랜트(Grants)’ 제도다. 연구비 협약 절차 없이 지원하는 유형으로 별도의 결과 평가 없이 성과만 요구하는 제도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경우 연구비의 70%를 그랜트 방식으로 연구자에게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R&D 자금 중 90% 이상이 철저한 연구비 관리와 정산이 요구되는 ‘연구협약(research agreement)’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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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부도 올 1월부터 5000만원 규모의 일반 연구자 지원사업에 한해 ‘한국형 그랜트’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일반 연구자 지원사업에서도 수십~수백 쪽에 달하는 결과보고서를 요구하고 평가위원회 평가까지 실시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일반 연구자 지원사업에 적용한 한국형 그랜트 제도의 결과를 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에 실패는 없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연구 분위기도 문제다. 연구개발에서 실패는 자양분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 R&D 사업의 과제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연구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쉬운 과제만 선택하거나 정부 눈치를 보느라 실패도 성공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성공률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조만간 범부처 차원에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눈에 드러나는 실패에는 예산 삭감이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나로호 1, 2차 발사가 실패하면서 2010년 시작한 한국형 발사체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2012년 현재 관련 예산이 30% 정도 축소됐다. 항공우주연구원 이규수 홍보실장은 “한국형 발사체용 300t급 1단 액체엔진을 디자인해 놨는데 예산이 부족해 엔진연소 시험시설 장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짧고 작아지는 연구과제



국가 연구과제가 소형화·단기화하는 것도 연구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런 현상은 지식경제부 산하 출연연에서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을 선도해온 국책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 과제당 평균 예산이 2006년 18억4000만원이었나 지난해에는 10억2000만원으로 급감했다. 50억원 이상 사업의 경우 2006년 35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줄어들었다.



 ETRI의 한 연구원은 “성과에만 급급해 연구기간이 짧아지고, 연구과제도 작아진다는 것은 안정적인 연구환경 확보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 기자,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미주 중앙일보=정구현(LA)·강이종행(뉴욕)·유승림(워싱턴) 기자, 김보경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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