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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도전하라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강영진
논설위원
“50년간 지속된 한반도 대결 체제가 변화의 전기를 맞았다.”



 2005년 9월 20일자 본지 1면 머리기사의 첫 문장이다. 7년 전 오늘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4차 2단계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이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음을 알리는 기사다. 이날 본지는 5개 면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했다. 다른 신문·방송들도 비슷한 크기와 내용으로 보도했다. 모든 언론이 ‘한반도 분단 질서의 전면적 변화 가능성을 예고한다’는 정부 당국자의 전망을 인용했다.



 그로부터 만 7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북한은 올해 초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명기함으로써 핵 포기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후 올 한 해 동안 북한 핵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함으로써 잠시 긴장국면이 있었지만 미사일이 중간에 추락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9·19 공동성명’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합의였다. 성명이 발표된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오전 중에 회의가 끝날 것”이라고 말해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또 그날 오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편도 예약한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그만큼 내용도 획기적이라면 획기적이었다.



 성명은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을 공약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가침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골자였다. 또 북·미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진전시킬 것을 약속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한반도 질서에 근본적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날부터 장밋빛 전망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북한 외무성이 미국이 먼저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으면 핵 포기는 없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미 국무부는 “북한 입장이 베이징 6자회담 합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성명 문안의 맥락을 볼 때 북한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것이었다. 성명은 북한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고 돼 있는 반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6자회담 5개국은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은 북한의 해외 돈세탁을 방조한 혐의를 받은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미국의 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했고 북한은 이듬해 대포동2호 시험발사와 1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9·19 공동성명’ 합의를 사실상 폐기했다. 이후 6자회담은 2007년 6차 2단계회담까지 이어졌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그 뒤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우라늄농축 착수를 선언하는 등 미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거듭했지만 미국은 이른바 ‘선의의 무시정책(benign neglect)’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에선 김정일이 2011년 말 사망함으로써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의 ‘권력 다지기’가 진행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한·미·중의 정권 교체가 이뤄질 예정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당분간 소강상태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중국에 새로운 정권이 자리 잡는 내년부터는 북핵 문제가 새롭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북핵 문제가 소강상태에 놓인 지금 동아시아에선 새로운 갈등이 불거지는 중이다. 중국과 필리핀·베트남 등과의 영토분쟁에 이어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중국의 의지, 장기적인 저성장 경제구조에 빠진 일본에서의 우익 득세 등 원인은 복합적이다.



 어쨌거나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협력적 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은 7년 전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시점에 비해 상당히 후퇴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북핵 문제가 새롭게 불거진다면 상황은 예전보다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국제질서 아래에서는 예전과 달리 군사력이라는 극단적이고 직접적인 분쟁 해결 수단에 의존할 수 있는 국가란 존재하기 어렵다. 각국 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관계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고 중층적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극단적인 분쟁 해결을 시도하는 경우 스스로도 파멸될 위험성이 너무 큰 것이다. 따라서 분쟁이 격화되면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 역시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9·19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방법론은 여전히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틀을 통해 일단 한반도평화체제가 형성되고 정착될 수만 있다면 이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평화 정착에도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연말 대선에서 승리한 새 지도자가 이 점에 착안할 것을 기대한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정착에 앞장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해법을 찾기 위해선 담대한 전략과 치밀한 준비, 유연한 상황대처 등 초인적인 의지와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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