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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응답하라 ‘쌍용차 2009’

권석천
논설위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엔 그늘이 있었다. 회사에서 ‘3개월 감봉’ 카드가 난무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업무 처리에 실수가 발견되면 20~30%씩 월급을 깎는다고 한다. 감봉을 두세 번 맞은 사람은 사표를 내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일부 기업은 희망퇴직 프로그램에 시동을 걸었고, 중견 건설업체들 사이엔 구조조정설이 나돌고 있다. 올해 2%대의 저성장이 예고되면서 일터가 살얼음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의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를 다룬 『의자놀이』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작가 공지영은 그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든다.



 “우리 아이들이 입시경쟁을 치르고 스펙을 쌓고 취직을 한다 해도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빙자한 ‘더 많이 벌기 위한 경영상의 이유’로 오래도록 성실했던 내 아이들을 해고시킨다면, 그래서 거기에 항의하는 내 아이들을 경찰이 와서 테러범처럼 진압한다면….”



 여기서 ‘우리 아이들’은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당신 자녀를 포괄한다. 어떤 직장에 있든 ‘신자유주의 시대’란 말에 깃든 고용 불안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의자놀이』의 암울한 세계가 피부에 와 닿는 건 그래서다.



 평택의 중산층을 이루며 성실하게 일하던 쌍용차 근로자 2646명이 어느 날 정리해고 명단에 오른다. 이후 77일간의 파업이 낳은 사회적 갈등과 생활고,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속에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는다. 특히 한 무급휴직자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엔 숨이 멎는다. 아내는 베란다 아래로 몸을 던지고 10개월 뒤 남편마저 숨진다. 두 아이는 고아로 남는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두 명 모두 유서도, 문자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지영은 “그들은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에 완전히 절망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자놀이』의 상당부분은 논란에 싸여 있다. 법정관리 신청과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회계법인 보고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강조한다. 최대주주였던 중국 상하이차가 자본 철수를 위해 부실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쌍용차 측은 “회계조작 의혹이 사실무근이란 점은 금융감독원 감리와 법원 판결에서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또 경찰의 파업 진압을 ‘인간사냥’이라고 고발하지만 노조 측 대응은 짧게 언급한다. “노동자들도 쇠파이프를 들고 새총으로 볼트를 쏘고 있었으나 헬멧도 부족했고 얇은 여름옷은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의자놀이”의 문제 제기가 유효한 까닭은 쌍용차 문제가 지난 3년간 거리에서만 떠돌았다는 데 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사회의 공식 의제로 다뤄진 적이 없다. 내일(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리는 쌍용차 청문회를 주목하는 이유다. 쌍용차 전·현 대표와 노조 전·현 지부장, 지난해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 그룹 사장, 회계법인 관계자 등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의원들은 최대한 냉정하고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적법하고 불가피했는가. 회계보고서에는 문제가 없는가. 무급휴직자 461명의 복직 약속은 언제 지켜질 것인가.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떠받칠 사회안전망은 무엇인가. 증인들은 회피해서도, 거짓으로 답변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기나긴 터널의 출구가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그제 대선정책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쌍용차 속엔 그 세 가지 목표의 알파요, 오메가인 생명이란 가치가 담겨 있다.



 이제 많은 시민이 언젠가 나도 저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종교계 대표 33인은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온 국민이 문제 해결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국민행복의 답은 우리 사회가 쌍용차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지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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