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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정희의 빛과 그림자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중·고를 다녔다.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 박정희는 당연히 민족 지도자였다. 박정희 사진을 보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다 틀리면 불충(不忠)의 자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10·26 이후 대학생활을 하면서 듣고 읽은 박정희는 ‘전두환 다음으로 나쁜 독재자’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 마음속의 박정희는 뚜렷한 빛과 그림자로 자리잡았다. 이후 취재 현장에서 접한 우리 사회의 박정희 평가는 상상 이상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전직 장관의 집에서 본 돈봉투다. 누런 봉투 십여 장을 부챗살처럼 펼쳐 표구한 액자가 집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다. 장관 재직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한 격려금 봉투를 모은 것이다.



 전직 장관은 돈봉투 부채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업적과 박정희의 자상한 리더십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장관 자리에 하사금까지 수시로 내려준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존경의 마음이 흘러넘쳤다.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그 돈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박정희의 빛을 쪼이며 따뜻하게 살아온 장관은 박정희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데 완고했다. 조국 근대화의 대장정에 낙오자는 불가피하며, 낙오자는 대부분 능력이 없거나 사상이 불온하다는 식의 단순논법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에 갇혀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논리에 분개할 것이다.



 박정희라는 거인을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름의 평가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투표 행위는 감성적이라 좋아하는 사람을 찍게 된다. 유권자들은 투표용지의 ‘박근혜’란 이름을 보며 ‘박정희’를 떠올릴 것이다. 박근혜가 아무리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호소해도 박정희는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역사의 평가’란 말만 반복하는 박근혜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진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평가나 마찬가지로 민감하다. 현실은 복잡한데 주장은 단순하고 여론은 갈려 있다. 대선 과정에서 여야의 정치공방이 이어질 경우 여론은 더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념적 분열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박정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는 눈이다.



 우선 개념정리부터 하자. 5·16과 10월유신은 쿠데타다. 특정 세력(주로 군부)이 무력으로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 쿠데타다. 5·16은 쿠데타란 말의 정의에 부합한다. 10월유신은 쿠데타 중에서도 특수한 형태인 ‘궁정 쿠데타’로 분류된다. 집권자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기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중요한 것은 쿠데타가 과연 ‘불가피한 선택’이었냐, 그 결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느냐’다. 5·16의 불가피성은 역사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당시 윤보선 대통령과 장도영 참모총장이 적극적으로 쿠데타를 진압하지 않고 사실상 인정해 준 정황이 그렇다. 당시 절대적 존재인 미국도 진압 대신 관망했고, 곧 지지했다.



 쿠데타 이후 사회 발전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눠 평가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는 곧 산업화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박정희의 얘기는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나 죽은 다음에 욕하라’는 확신이다.



 당연히 민주화 분야에선 혹평을 면하기 어렵다. 박정희는 1930년대 일본 군부가 이끌었던 국가 주도 산업화 모델을 택했다. 산업화에 매진하기 위해 민주화를 희생한 것은 박정희가 의도한 것이다. 그 모델의 전형이 10월유신이다.



 5·16 이후 10월유신 이전까지는 그런대로 헌정질서가 유지됐다.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았고, 국민투표로 개헌을 했다. 그러나 10월유신 이후 정치는 실종됐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마저 산업화를 위해 희생했다. 따라서 유신 이후는 더 가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혁당은 치명적 오점이다.



 이런 다면평가 결과는 몇 점이나 될까. 덩샤오핑이 마오쩌뚱에 대해 ‘공7과3’이라 평가한 것은 ‘공(功)이 과(過)보다 많다’는 뜻이다.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오 시대를 인정하고 가자는 메시지다. 마오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막자는 취지다.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도 ‘공7과3’이란 평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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