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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소설 부문 당선작] 삵 -김수정

[그림 = 화가 김태헌]


세 번째 실종이었다. 아니 사실은 몇 번째인지 알지 못했다. 처음이 아니었다는 말이고 남자가 아는 한 세 번째라는 말이다. 사실 실종은 어디에나 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일하는 A공단에서 사람이 없어지는 일 따위는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해서 사건 축에도 못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번 일이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들 같이 여기며 믿고 의지했던 청년이 달랑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 못내 찜찜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땀에 흠뻑 젖은 이마를 훔쳐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다 꿈은 항상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끓는 바다 꿈은…



 바다가 끓고 있었다. 뜨거워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팔을 하늘로 뻗어 올리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제 발에 걸려 모래더미에 쓰러졌다. 모래도 뜨거웠다. 몸이 데일 것 같았다.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몸부림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독하게 외로웠지만 남자에게는 그런 감정도 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퍼뜩 눈을 떴다. 온 몸이 흠씬 젖어 있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청년을 떠올렸다. 오늘은 청년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어디로 가서 찾을지 막막했다. 단서는 청년의 가방에서 찾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푹푹 찔 모양이었다. 동료들이 어지럽게 엉켜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세수를 꼼꼼하게 했다. 세면장에는 손바닥 두 개를 펼쳐놓은 크기의 거울이 달려 있다. 비누질을 하면서 거품을 풍성하게 내서 코와 눈썹 주위를 문지르면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허옇게 거품을 뒤집어 쓴 삐쩍 마른 사내가 있다. 남자는 눈썹이 짙고 눈 사이가 멀었으며 볼 살이 푹 꺼져 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오늘은 어쩐지 낯설다. 올리브색 반 곱슬머리칼은 푸석해서 지저분하게 보였고 아내가 첫눈에 반했다는 지중해 빛깔의 눈동자는 더위에 지쳐 흐려 보였다. 남자는 고향, 북아프리카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늘 웃었다. 그들과 함께 있는 남자도 자주 웃었다. 그나마 청년과 함께 있을 때는 가끔 웃기도 했지만 남자는 청년과 함께 자신의 웃음까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세수를 마치고 조그만 거울 앞에서 턱을 내밀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얼굴을 만져 보았다. 비누가 들어가서 눈은 벌겋게 되고 무딘 면도날 덕분에 턱에 피가 맺혔다. 딴 생각에 빠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다 꿈은 남자에게 항상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끓는 바다 꿈은 처음이었다.



 사흘 전 청년은 남자에게만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졌다. 삐뚤빼뚤한 한국어였다.



 한 달만 다녀올게요. 제 가방 부탁해요.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더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었다. 청년의 가방을 뒤졌다. 가방 속은 단출했다. 몇 벌의 옷가지와 책 두 권, 그리고 사진기와 사진 몇 장, 메모 하나가 전부였다. 메모에는 핸드폰 전화번호와 해독할 수 없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도 없어진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곳은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습하고 무거운 공기 아래 자신의 일만 묵묵히 처리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냉장 탑 차는 아침식사를 끝내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들이닥쳤다. 뒷문을 열기 위해 걸쇠를 잡아당기자 무겁고 사나운 철커덩 소리가 긴 여운을 남겼다. 냉장 칸에서 냉기가 안개처럼 쏟아져 나왔다. 냉기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나자 주검들이 불길하게 겹쳐져서 쌓여 있다. 크레인이 들어올리기 좋게 사람 서넛이 달려들어 갈무리를 했다. 이틀에 한 번 실려 오는 가죽은 온갖 종류가 뒤섞인 것이었다. 영세한 공장이기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가죽에 덜렁거리며 붙어 있는 살점과 비곗덩어리, 심지어는 무게를 속이려고 업자들이 뼈까지 가죽에 싸서 넣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바닥에 부려진 가죽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진물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에 긴 작업용 장화를 신고 일했다. 바닥은 아무리 씻어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가죽을 크레인이 그러잡고 솥 안에 담그면 그때부터 꼬박 이틀을 삶아내야 했다.



 사다리 아래로 보이는 무쇠솥에서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북덕북덕 끓는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왔다. 남자는 제 몸보다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저어가며 이물질을 찾느라 눈을 부릅떴다. 화공약품 때문에 땀과 함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주걱이라 부르지만 생긴 건 똥푸게처럼 생겨서 솥 안에서 끓고 있는 내용물과 마찰이 심했다. 작업장에는 여러 가지 소음이 뒤섞여 있었다. 끓는 소리, 젓는 소리, 털털거리며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조장의 고함소리 등 단 한순간도 정적 따위는 없는 공간이었지만 남자는 순간 너무 조용해서 귀가 먹어버린 것 아닌가 싶었다. 세 사람의 일꾼과 한 명의 조장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가히 불지옥에 견줄 만했다. 게다가 공단에서도 가장 봉급이 적은 축이었다. 기술보다는 견디는 힘만이 필요한 일이었다.



 거대한 솥단지 안에서 끓고 있는 것은 동물의 껍질이었다. 심줄이나 근육 비계 등은 다 녹고 상품 가치 있는 균일한 두께의 껍데기만 남겨서 롤러프레스로 누른 뒤 무두질하는 공정실로 보내졌다. 그리고 잘 말려주면 가죽이 완성되었다. 말이 쉽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급탕 작업실은 엄청난 열기와 습기로 가죽 삶다가 사람 삶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돌고 있는 선풍기에는 먼지와 기름때가 시꺼멓게 눌어붙어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라고 나오는데, 그야말로 열풍이라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남자는 사다리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작업하고 있었다. 왼손에 목장갑은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부분이 꺼져서 너덜거렸다. 처음에 이 공장으로 왔을 때 프레스부에서 일했다. 임금도 가장 좋았다. 이 년쯤 지나 제법 일이 손에 익어 눈 감고도 할 수 있겠다 싶을 무렵 프레스가 손가락 세 개를 잡아먹었다. 아픈 것보다도 아내에게 뭐라고 할지부터 깜깜했다. 의사는 접합이 불가능하다며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뭉개진 손가락은 유리병 속 액체에 잠겨 퉁퉁 불어 있었다. 열일곱 고교 시절 해부 실습할 때 보았던 생물실 표본과 다르지 않았다. 십칠 년 동안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죽음과의 첫 만남이었다. 남자는 표본 앞에서 뭔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손가락이 아무는 동안 보상은커녕 임금도 못 받았기에 송금을 할 수 없었고 송금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댈 수 없었기에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와는 지금껏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유리창에 테이프로 옹색하게 붙여서 글자를 만들어 놓았다. 토스트, 김치찌개, 두루치기, 냉면, 삼계탕, 김밥 등. 한마디로 말해 세상의 모든 음식이 다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없었다. 남자는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살이 빠졌다고 생각했다. 체격 좋다는 소릴 듣던 남자는 이제 말라깽이에 가까워 보였다. 점심 메뉴는 돼지고기 덮밥이었다. 한국에 와서 돼지고기를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못 먹을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한 맛이었다. 끝까지 다 먹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조금 남겼다. 청년이 생각났다. 어디서나 어떤 음식이라도 누구에게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환하게 웃던 청년이었다.



 한국에 온 지 이 년이 넘도록 남자는 변변한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 라오스에서 왔다는 청년은 큰아들 또래였다. 순박하고 착한 청년이었다. 수줍어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이물 없이 대했다. 눈이 마주치면 제 고향 방식으로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가끔 소주와 김치찌개와 공기밥으로 회식 아닌 회식을 한답시고 몇 명 마주앉아 먹어도 남자는 찌개를 먹기 힘들었다. 짜고 맵고 괴상한 맛이었다. 씹어도 씹어도 질겅거리며 넘어가지 않는 고기와 물컹거리는 두부조차 달게 먹는 청년이 기특했다. 한번은 청년이 밥을 먹다 말고 모국어로 무어라 말했다.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합장을 하며 식당 아줌마를 향해서 한국말로 말했다.



 맛있어요.



 아줌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이 새끼들아! 이번 주 물량 이 톤 못 채우면 퇴근할 생각 하지도 마!”



 악 쓰는 조장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을 앞둔 토요일 오후였다. 조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삼삼오오 벌써부터 저녁에 함께 어울릴 부류들끼리 시시덕대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같은 나라에서 왔거나 같은 언어권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렸다. 그들은 술을 마시기도 할 것이고 여자를 사러 가기도 할 것이며 쇼핑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기숙사 방에서 밀린 잠을 자느라 종일 이불과 씨름하기도 할 것이다. 남자도 손을 다치기 전에는 가끔 이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 호사를 부리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면 바다에 가보는 일이었다.



 A시의 끝에 있는 바닷가 풍경을 본 적이 있었다. 동료가 인터넷으로 보여준 동영상이었다. 풍력 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언덕이었다. 그 언덕 너머에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바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고향에서는 가끔 아이들과 바다로 소풍을 나가곤 했다. 아내가 구운 빵이나 양고기로 배를 채운 뒤 오후 내내 아이들과 수영을 하며 노는 것도 좋았지만 아내의 까슬까슬한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우면 잠이 솔솔 밀려드는 기분이 최고였다. 목덜미에 느껴지는 아내의 감촉과 천천히 불어오는 해풍의 냄새는 익숙하고도 당연한 것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세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말라리아 따위로 가족을 잃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배를 곯아 구걸을 하지 않으려면 돈을 모아야 했다. 한국에 온지 이 년이 지났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다. 처음에 삼 년을 계획하고 왔다. 한국에서 삼 년을 일하고 그 돈을 그대로 모을 수만 있다면 자그마한 집도 사고 모터 달린 배도 한 척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오자마자 막내딸이 아팠다. 큰 수술을 해야 했다. 애는 살려냈지만 이 년간 일한 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잡을 무렵 남자는 다쳤다.



 급탕조 일이 가장 먼저 끝났다. 남자는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공장을 나서다가 뒷마당 닭장에 생각이 미쳤다. 이번 주 닭장 당번은 남자였다. 뒷마당으로 돌아 들어가 닭장 안을 살펴 보았다.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꼼꼼히 살피고부터는 거의 피해가 없는 듯이 보였다. 닭장 안은 평화로웠다. 다행히 공장장이나 조장도 뒷마당 구석에 꾸며놓은 닭장에 대해서는 별 간섭이 없었다. 일꾼들에게 사기를 올려주는 일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림 = 화가 김태헌]


처음에 누군가 닭을 훔쳐가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소연도 못하고 일꾼들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병아리를 사와서 통통하게 살이 오르도록 길러 푹 고아 잡아먹는 게 여간한 즐거움이 아니었기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닭장 안에 널린 닭 털을 보니 속이 뒤집혔다. 얼마나 놀랐으면 이 지경이 되도록 푸드덕거렸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고심하다 두 명씩 짝을 이뤄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하필이면 남자가 지키던 날 밤 범인의 눈과 딱 마주쳤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이어 닭이 죽는다고 소리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랜턴을 켜고 비추었는데 닭을 물고 남자를 노려보는 삵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두 눈동자가 빛에 반사되어서인지 아주 크고 밝게 빛났다. 남자는 외계인과 마주치기라도 한 것 같은 공포감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범인이 삵이라는 걸 알고부터 일꾼들은 닭장 단속을 철저히 했다. 그물망도 꼼꼼하게 살피고 문단속도 철저하게 했다. 그래도 가끔은 어떻게 구멍을 후비고 들어와 닭을 훔쳐갔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아수라장이 된 닭장 안에서 혼비백산한 닭들이 구구구구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곤 했다.



 공단의 끄트머리 하수 종말 처리장에서 풍겨오는 악취가 지독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였다. 작업장의 냄새에 어지간히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종점이자 출발점이고 차고지인 이 큰 도로 앞에 서면 악취의 끝, 그야말로 종말에 마주 선 느낌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는 멍해진다. 옆에서 사람이 말을 걸어 대꾸라도 하려면 말보다 앞서 구역질이 먼저 올라올 정도였다. 멀리 몇 겹의 낮은 산들이 뿌연 먼지 속에 어슴푸레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다. 그 산들을 모두 넘어가면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를 꼭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바다 쪽으로 나가는 버스노선도 몰랐고 누구도 남자를 데려가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남자는 함부로 나다니면 안 되는 불법 체류자였다.



 첫 번째 실종은 작년 여름이었다. 두 번째는 올 봄에, 그리고 며칠 전 실종이 세 번째였다. 청년은 쪽지를 남겼지만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남자는 실종으로 여겼다.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겨울 상품을 준비하는 공장이기 때문에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는 아예 할 엄두도 못 내었다. 영세한 가공업 공장에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은 법이다. 특히 불법 체류자 문제는 서로가 난감한 문제였다. 공장은 공장대로 손해가 막심이요, 당사자는 본국 송환에, 경찰은 관리 소홀로 경위서를 써야 하는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작년에 처음 없어진 사람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청년이었다. 시내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단속반에 걸렸나 보다 생각했다. 그것은 강제 귀국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안됐다는 생각도 잠시,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나도 시내에 싸돌아 다녀 볼까, 남자는 잠깐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고향에서는 배가 없으면 물고기조차 잡을 수 없었고 낙타 한 마리 없이는 사막 장사도 어림없었다. 여섯 식구가 함께 살려면 집도 필요하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진료비도 필요하다. 지금 잡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들의 꿈은 의사였다. 남자가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아들은 공부도 썩 잘했고 학교장 추천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이 가고 싶어 한 대학은 쿠바에 있는 국립의과대학이었다. 학비는 무료이고 생활비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졸업 후 의료 사각지대인 세계 각국 오지로 파견 나가게 된다고 했다. 남자가 다치기 전 마지막 통화할 때 아들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일하는 한국으로 돈 벌러 가고 싶어요. 지금이라도 갈 수 있대요. 정식 산업연수생으로 비자 받아 갈 거예요. 모두들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몹시 아팠다. 아들이 아비의 삶을 닮고 싶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아들의 말이 반갑지 않았다.



 A역 앞까지 가는 것도 큰 맘 먹고 하는 외출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습관처럼 공중전화 부스를 쳐다보았다. 마지막 부스에 한 사람이 어깨를 구부정하게 선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비어 있는 부스를 지나쳐 그 뒤에 가서 섰다. 십대 후반쯤으로 짐작되는 아이가 송수화기를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였다. 청년의 고향 언어 비슷한 느낌이었다. 모르는 언어였고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지만 얼마나 간절한지 생생하게 전달되어 왔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던 아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카드에 통화 가능 금액이 다되어 연결이 끊어진 듯했다. 돌아서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함께 시내에 처음 나가게 된 날 청년의 고향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에 함께 갔다. 괴상한 냄새가 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청년을 생각해서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청년은 한마디 말도 없이 허겁지겁 국수를 먹었다. 청년과 아이의 눈망울이 닮아 있었다. 눈물방울을 눈에 매달고 있던 아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남자는 전화기에 카드를 넣고 고향집으로 연결되는 번호를 하나하나 힘주어 눌렀다. 여전히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친 이후 연락이 아예 되지 않았다. 아내의 친정집에는 전화가 없었고 다른 연락되는 어떤 번호도 남자는 갖고 있지 않았다. 전화기를 갖고 있는 집이 드문 가난한 마을이었다. 그나마 남자의 집 전화도 막내가 아프기 전 남자의 설득으로 설치하게 된 호사품이었다. 남자는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전화기를 들고 아내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그림 = 화가 김태헌]
남자는 청년이 남긴 메모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가 받았다. 서툰 말투여서 사내는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약속을 잡았다.



 -라오스에 방비엥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아니.



 -유명한 곳인데 무척 아름다워요.



 -……



 -방비엥의 아침안개는 멋져요. 물줄기를 거슬러 쪽배를 타고 올라가면 안개가 온몸에 스며들어요. 다음에 우리 모두 잘 살게 되면 제가 아저씨 식구들 모두 초대할게요.



 남자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청년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갖고 있었다. 사진기로 사람들을 찍었다. 즉석에서 현상되어 나오는 사진을 들고 부채질 하듯 말리면서 사람 좋게 웃었다.



 -뭐 찍어?



 -그냥 지금 여기 사람들요.



 -나 한 장 찍어줘.



 -김치 해요. 김치.



 웃으라는 말이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꼬리를 위로 올리는데 서글서글하게 큰 눈에 얼핏 그늘이 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사진을 찍었다. 철컥, 사진기는 조잡한 소리를 내더니 지잉 인화된 사진을 내뱉었다. 사진 속에서 남자는 어정쩡하니 웃고 있었다.



 지하도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토요일 저녁 어스름의 역 앞은 번잡스러웠다. 지구상 온갖 인종의 전시장이기도 했다. 그때 한 꼬마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방긋 웃어 주었다. 막내딸 또래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올랐다. 남자는 무심코 두 팔을 벌렸다. 아이 엄마는 단말마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아이를 답싹 들어 올려 품에 안고는 총총걸음을 서둘러 돌아서 버렸다.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국 사람이 두렵기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쭉 찢어진 눈, 표정 없는 얼굴,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냄새, 한없이 재재거리며 쏟아내는 말, 곁을 내주지 않는 태도. 남자는 몇 년이 지나도록 그들이, 이 나라가 두렵다.



 지하도에 모자나 선글라스 따위 싸구려 잡동사니를 파는 상인들과 과일 야채를 늘어놓고 팔고 있는 행상을 지나자 중국인 한 무리가 사진을 전시한 채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진을 훑어보니 한눈에도 일하다 다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중국말과 한국말로 인쇄된 전단지를 받으려고 다가갔지만 외면당했다. 남자는 누가 보아도 무얼 호소하거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청년을 찾으러 그 식당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에 들어서고 자리에 앉은 뒤에도 남자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함께 먹었던 자리에서 국수를 주문했다. 국수 맛은 여전히 이상했다. 돼지고기 냄새가 몹시 심했다. 남자의 고향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탓이리라 생각했지만 낯선 음식은 늘 사람을 더 허기지게 했다.



 시장 입구에서 사내 두 명이 불신검문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하나는 하늘색 남방에 검정 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었다. 다른 하나는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역시 흰 운동화였다. 하늘색 남방 쪽은 눈매가 날카롭다. 한국 사람들의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이대로 잡혀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남자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들은 어딘가로 돈 벌러 곧 떠날 것이고 두 딸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이, 껌둥이!” 사내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너무 많이 머뭇거렸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뛰기 시작했다. 토요일 저녁 시장거리, 온 지구상의 사람이 다 쏟아져 나온 듯 번잡한 곳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휘청거리며 뛰었다. 골목길을 한참 뛰어 들어갔다. 어둑신한 골목길이 낯설다. 양계장처럼 작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건물 지하로 들어간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조금씩 눈이 익숙해지자 켜켜이 앉은 누추함과 초라함이 먼저 보인다. 쭈그려 앉는다. 생전 한 번도 피워보지 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 시간은 족히 그러고 앉아 있었나 보다. 이젠 괜찮으려니 밖으로 나와 보니 어둠이 완전히 거리에 내려앉았다. 약속한 시각이었다. 걸걸한 목소리에 어울리게 덩치가 좋은 사람이었다. 덩치는 남자를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낡은 건물 뒤쪽에 있는 창고 같은 곳이었다. 허술한 듯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건물 내부는 어수선했다.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가죽공장 냄새 비슷한 비린내와 악취가 났다. 의자에 앉았다.



 “신장 하나 이천만원, 각막 하나 오백만원. 목숨과는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최대치야. 요즘 공급이 달려서 팔 월 중으로 하면 내가 오백 더 받아 주지.”



 사내의 말투는 위악적이고 위협적이었다. 웃음기를 애써 걷어낸 소리였다.



 “사흘만 말미를 주세요.”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하루라도 빨리 결심하는 게 좋아. 시세 변동이 워낙 심해서 말이야.”



 남자는 덩치 혼자서 이곳을 운영하는 것인지 가늠하느라 창고를 훑어보았다. 모르긴 해도 혼자서 움직이지는 않으리라 짐작되었다. 언제쯤 이곳이 텅 비게 될까. 남자는 오늘 밤 기다렸다가 다시 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장으로 다시 간 것은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필요한 물건을 아직 사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이젠 포기하고 갔으려니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꼬치구이 가판대 앞을 지날 때도 그들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까 그 새끼 불체자 맞아. 내가 한눈에 척 보면 알아. 불안한 눈동자. 사흘은 굶주린 것 같은 짐승 같은 눈빛이지.”



 하늘색 남방은 입맛을 다셨다. 입가에 선득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어이, 대충하자고. 그 사람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우리 이번주 할당은 채웠잖아.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청바지는 기세가 눌린 말투였다.



 “야. 술을 빨아도 이 빌어먹을 동네는 떠서 빨자. 새끼들 몸 냄새 진저리가 난다.”



 하늘색 남방은 정말 진저리를 치는 듯 몸동작을 과장했다.



 “그러자고. 역 앞에 가면 택시가 있을 거야.”



 청바지는 하늘색 남방을 어르고 달래는 듯했다.



 “어! 어! 저 껌둥이 새끼! 잡어!”



 하늘색 남방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뛰기 시작했다. 몸을 움츠렸다 펴자 몇 미터는 단숨에 날아갈 듯 날래 보였다.



 “야! 야! 고만해 좀!”



남자는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뛰면 고향 바다에라도 닿을 수 있다는 듯이 뛰었다. 내 고향, 북아프리카. 지중해 바다에 뛰어들어 맘껏 헤엄쳐도 안전한 곳. 남자는 땀에 흠씬 젖었다. 아무리 헐떡거려도 숨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고향에서도 남자는 검은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유난히 검은 편인 녀석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검다고 놀리지는 않았다. 고향은 유럽의 지배를 오래 받아서인지 유럽형 얼굴이 많이 섞여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팔려 간 오랜 선조들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었다. 그들이 목화밭에서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흠씬 맞으며 젖도록 일한 이야기를 들었다. 온 몸이 젖도록 고단한 밤에도 잠 못 이루고 하얀 목화송이 밭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내리 비추는 달빛을 보며 고향의 노래를 부르던 이야기를 들었다. 온몸을 흔들며 철커덩철커덩 발목에 채워진 쇠고랑 소리를 반주 삼아 부르던 그 노래. 그것이 오래된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창고는 그새 문이 잠기고 불도 꺼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닭장 열쇠를 꽂아 보았다. 처음엔 열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덜컹 열렸다.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창고 안은 깜깜했다. 주머니에는 닭장에서 쓰던 랜턴이 있었다. 쌀자루 같은 것이 쌓여 있는 쪽으로 갔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몇 개의 자루가 아무렇게나 겹쳐져 있었다. 맨 위에 있는 자루를 열어 보았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른 자루를 열어 보았다. 여자도 있었다. 정신 없이 몇 개의 자루를 더 연 뒤 청년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랜턴으로 비추는데도 편안한 표정으로 입을 약간 벌리고 눈 주위에 피눈물이 흐른 듯 벌겋게 물이 스며 나와 있었다. 자루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보니 배가 갈라져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모조리 다 긁어 갔나 보았다. 순간 삵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아무 감정도 싣지 않은 채 닭을 물고 인광을 뿜어내던 커다란 눈동자, 몸통에는 짙은 갈색 반점이 찍혀 있고 눈 사이로 코에서 머리까지 흰 줄무늬가 선명했다. 남자가 주저앉아 버리자 빠른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 순식간에 사라졌다.  



 밤이 깊도록 기다렸다. 창고는 한여름 밤의 무더운 공기를 꿰뚫는 이상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주검의 냉기 같아서 무릎을 싸 안고 앉아 남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읊어 주던 기도문을 떠올렸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아내의 얼굴도 지워진 듯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내의 다리 안쪽 까슬까슬한 감촉과 부드러운 젖가슴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다리를 쓸어 보았다. 검실북실 거친 털이 손끝에 거칠게 와 닿았다. 아내의 몸을 안고 깊이 잠들고 싶었다. 아득하여 잘 실감 나지 않는 바람이었다.



 밤이 깊어 사람도 차도 뜸해진 뒤 남자는 청년을 잘 싸서 둘러멨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속이 텅 빈 지푸라기라도 떠멘 기분이었다. 큰 거리로 나섰다. 차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찻길에 “무단횡단 금지. 사망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 도로를 향해 가면 공장을 지나 바다에 닿을 것 같았다. 바다에 뛰어들어 한참을 헤어 가면 고향 바다에 닿을 것도 같았다.



 땀이 나서 손등으로 턱을 훔친다. 아침에 면도 하다 벤 자리가 쓰리다. 그러다 오늘 아침 꿈이 좋은 꿈이었는지 나쁜 꿈이었는지 가늠해 본다. 바다 꿈은 좋은 꿈이야. 바다로 가고 싶어. 남자는 몇 번이고 모국어로 중얼거린다. 경찰차가 지나간다.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몸을 움츠린다. 이상한 장면이었을 텐데 경찰차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다.



 한국에 와서 가장 이상하게 느낀 것은 무관심이었다. 누구도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가 사랑을 나누고, 사람들 사이에 정이 넘치고, 아름다운 곳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남자가 겪은 한국은 지독한 냄새와 냉대와 이상한 음식과 그리고 무관심이었다. 아니 무관심보다 경멸에 가까운지도 몰랐다. 같은 공단의 일꾼들조차도 한국 사람들은 긍지에 넘쳤다. 일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은 짙은 화장에 온갖 멋을 다 부리고 도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여자들도 설렘에 들떠 퇴근길 어딘가로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남자나 청년 같은 이방인을 만나면 불편하거나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같은 버스에 타도 곁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공장 뒷문으로 들어온다. 기숙사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맞은 편 닭장 문을 연다. 이번 주 당번이라 마침 남자가 열쇠를 갖고 있었다. 닭장 안으로 들어서자 닭들이 침입자에 놀라 저항이 세다. 남자는 닭에게 쪼이고 그들이 훼를 치는 동안 구석자리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청년의 몸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닭들의 소란이 가라앉고 남자가 자신을 해칠 뜻이 없다는 것을 헤아렸는지 자리를 내어준 채 밤이 깊어가는 동안 남자는 깜빡 잠이 들었다.



고향 꿈을 꾸었다. 회벽이 햇볕 아래 환하다. 눈이 부시다. 아내가 양고기 꾸스꾸스를 만들어서 마당에 있는 식탁으로 내온다. 꾸스꾸스는 아내의 주특기 요리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리지만 가족들은 얼마든지 기다릴 용의가 있다. 아이들은 즐거워서 손뼉을 친다. 남자의 손가락은 어느새 온전하게 돋아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짙푸르게 펼쳐져 있다. 왼쪽 언덕에는 풍력 발전기의 풍차가 천천히 돌아간다. 시원하고 막힌 데 없는 풍광에 마음이 편안하다. 식구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모두 모여 웃고 있다.



 삵이 나타났다. 닭들이 푸덕거리며 날아 오른다. 남자는 깜짝 놀라서 깨어난다. 삵은 자루를 덥석 물고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확신에 찬 표정이다. 남자는 자루를 잡아당겼다. 삵은 아가리에 힘을 주며 물고 늘어진다. 남자는 엉거주춤 일어선다. 자루를 사이에 두고 삵과 남자는 힘을 겨루면서 긴장한다. 삵은 으르릉 그르릉 자루를 문 채 고개를 휘젓는다.



 -안 돼!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자루를 움켜쥔다. 삵을 발로 쳐내려고 다리를 뻗었다. 삵은 자루를 놓지 않고 앞발을 휘두른다. 바지가 찢어지고 정강이가 할퀴어진다. 남자는 발길질을 계속한다. 온 몸을 버둥거리며 발버둥을 쳐댄다. 삵은 눈동자에 불을 켠다. 자루를 놓지 않으면서도 이를 드러내고 등이 곧추선다. 몸의 털이 다 곤두선다. 아름다운 털의 무늬가 뚜렷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발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본다. 삽이 보인다. 자루를 놓고 바로 튀어 가 삽을 잡았다. 삵은 재빨랐다. 자루를 더 깊이 물고 그새 몇 발자국을 끌고 갔다.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삽으로 삵을 찍었다.



 캬앙-.



 삵은 펄떡 뛰어올랐다. 앞발톱을 세워 남자의 뺨을 후볐다. 얼굴은 금세 벌어졌다. 붉은 보석이라도 박힌 듯 반짝이더니 이내 끈끈한 것이 얼굴을 타고 투둑 흘러내렸다. 남자도 쉰 소리를 질러댄다.



 -이 새끼, 안 돼!



 남자는 한국말로 소리 질렀다.



  삽을 휘둘렀다. 어느 순간 둘은 멈춰 섰다. 마주 서서 씨근덕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삵은 아쉽다는 듯 천천히 입맛을 다신다. 그러고는 삵이 눈길을 먼저 거둔다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자는 주저앉아 버렸다. 바닥을 더듬자 자루 입구가 벌어져 있다. 끈을 단단히 잡아당겨 잘 매듭지어 묶는다. 남자는 자루를 안은 채 조용히 일어선다. 닭장에서 걸어 나와 잠시 머뭇거리다 공장으로 들어간다. 불을 켜지 않는다. 밤새 불을 켠 이웃 공장의 불빛에 작업장이 훤히 보인다.



 청년을 안아 올렸다. 사다리를 손으로 잡지 않고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밟고 올라간다. 솥은 여전히 끓고 있다. 바닷물이 펄펄 끓는 것 같다. 고향 바다의 냄새가 물씬 올라온다. 지독한 냄새가 눈으로 스며들자 눈을 깜박거린다. 눈물이 솟는다. 남자는 고향 바다를 떠올린다. 파도소리에 섞여 막내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를 부르는 소리다. 남자는 웃으며 잠깐 돌아본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환하다. -끝-





[소설 당선 소감]



억울했던, 화 났던 가시밭길 알고보니 선택한 길이었네




선연하게 바람이 지나갑니다.



 문득 알아채고 고개를 듭니다.



 한여름의 생기를 잃은 나뭇잎 건드리며 바람은 우수수 소리를 내더니 무심하게 저쪽 골짜기로 날아갑니다.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꽃길도 놔두고 왜 이리로 왔을까, 내 어리석음에 화가 났습니다. 누군가 이리로 떠민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존경하는 한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생애를 시작할 때 너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그 말씀은 제게 위로가 되고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선택했습니다. 저답습니다.



 꽃길보다 가시밭길이어서 볼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제 재산입니다.



 내 가장 소중한 두 사람, 용준과 태수. 내 마음 알지요?



 첫 소설을 읽고 격려해 주신 신상웅 선생님, 변함없이 지켜봐 주신 전영태 선생님, 부족한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이웃들, 친구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풍경이 되어주어 감사합니다. 나도 그대들의 좋은 풍경이 되겠습니다.



 너만은, 너희들만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 영전에 작은 꽃다발 하나 바치러 가겠습니다. 그 아버지, 어머니들이 물려주신 땅입니다. 그분들의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김수정=1967년 부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소설 심사평]



이주노동자 문제 주체적 소화 놀랍고 섬뜩한 각성의 기회로




소설 본심 심사 중인 박상우(왼쪽)·김형경씨. [김도훈 기자]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넘겨진 작품은 모두 열두 편이었다. ‘일요일’ ‘유목민들’ ‘태양과 소녀의 발’ ‘아수라백작의 턴아웃’ ‘징후들’ ‘진실이란 영화’ ‘ㄷ’ ‘압사라’ ‘파일럿피시’ ‘빙시’ ‘아무도 테니스를 칠 줄 몰라’ ‘삵’이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예심 통과작의 전체적 수준이 많이 미흡해 그 원인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소재를 선택해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성에 대한 자신감과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플롯의 인과성이 약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기본기가 충실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절제하고 정제되지 못한 문장, 부족한 묘사력과 과다한 대사 남발 등의 요인으로 치열하게 중심을 파고들어가는 에너지가 현저하게 약화돼 온전한 이야기성에 도달한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열두 편의 예심 통과작 중 ‘삵’은 단연 돋보였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한국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주체적 시선으로 소화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땅의 이면 현실을 아프고 낯설게 묘파해 섬뜩한 각성의 기회를 제공했다. 무한 열림과 무한 연결로 외형적 관계성이 극대화되는 21세기의 이면에 이처럼 닫히고 고립된 삶의 이면이 있음을 치열하고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작가적 시선과 그것을 다루어내고자 하는 공력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오랜 창작의 공력을 느끼게 하는 탄탄한 패턴이 다양한 문학성과 새로운 실험성을 저해하는 장애가 될 수도 있으니 자기 갱신과 자기 부정에 대한 냉철한 경계심이 필요하리라 판단된다.



 ‘ㄷ’ ‘빙시’ ‘아무도 테니스를 칠 줄 몰라’ ‘진실이란 영화’도 나름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었으나 플롯의 작위성, 정제되지 못한 문장, 주제 구현 등에서 미흡한 점을 드러내 더 연마할 필요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새로운 작가를 뽑는 기준이 낯설고 새로운 가능성을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지만 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체득한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 가능성 자체가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당선자가 21세기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이 되길 빈다.



◆ 본심 심사위원=김형경·박상우(대표 집필 박상우)



◆예심 심사위원=김숨·김영찬·박성원·한강



소설 본심 진출작(12편)



● 고은경 : 압사라



● 구연 : ㄷ



● 김나리 : 파일럿피시



● 김미남 : 태양과 소녀의 발



● 김수정 : 삵



● 김아라 : 유목민들



● 김태림 : 징후들



● 유현수 : 아무도 테니스를 칠 줄 몰라



● 이우화 : 빙시



● 장보은 : 진실이란 영화



● 장성욱 : 일요일



● 채윤희 : 아수라백작의 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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