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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넥타이, 여자는 긴 치마… 전통 방식 역사 속으로

미국 오크허스트 링크스 골프클럽에서 옛날 골프 복장으로 차려입은 남녀 골퍼들이 히코리 클럽과 구타페르카 공으로 골프 라운드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선 수십 마리의 양을 투입해 오래전 방식으로 잔디를 깎는다. [사진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
‘오크허스트 링크스 경매에서 매각되다(Oakhurst Links sold at auction)’.
미국 골프 전통주의자들의 꿈과 희망의 공간인 오크허스트 링크스 골프클럽(9홀·파34·2235야드)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인 ESPN과 골프다이제스트 등은 최근 대단히 완곡한 논조였지만 비장한 느낌의 기사를 게재했다. ESPN은 7월 29일(한국시간) 오크허스트 링크스의 경매 사실을 타전했고, 골프다이제스트는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최신 9월호에서 비중 있는 사진 한 컷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다. 두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128년 된 오크허스트 링크스가 경매에서 매각됨에 따라 히코리 샤프트 클럽에 구타페르카 공을 치고 니커보커스 옛날 복장으로 라운드할 수 있는 이 전통적인 코스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골프다이제스트는 미국 골프 역사에서 오크허스트 링크스 골프클럽은 ‘미국의 퍼스트 골프코스(America’s First Course)’란 가치와 전통을 간직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오크허스트 링크스’ 경매 매각


그렇다. 이 골프클럽은 미국 골프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미국에서 흔히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18홀 골프클럽을 얘기할 때 1888년 11월 14일 뉴욕에서 3홀로 시작한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 골프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크허스트 링크스는 이 골프장보다 4년이나 앞서 문을 연 골프클럽이다. 1884년 러셀 몬테규(Russell Montague)라는 미국인 지주가 스코틀랜드 이주민 4명과 함께 만들었다. 골프코스가 들어선 곳은 바로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의 조용한 계곡이었다. 당시 이곳은 골프코스가 생겨나면서 골프라는 새로운 게임을 해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오크허스트 링크스에 플레이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히코리 클럽과 구타페르카 골프공(사진 위). 티를 옛 방식으로 모래에 물을 적셔서 직접 만들어 공을 올려놓은 모습. [AP]
물론 이전에 미국에 골프 놀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1743년 96개의 클럽과 432개의 골프공 등 많은 골프장비가 에든버러의 리스항을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보내졌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골프는 1880년대까지도 인기를 얻지 못했다. 독립전쟁이 있었고 골프는 영국과 관련 있는 스포츠였기 때문에 관심이 높지 않았다. 몇몇 골프코스가 있었지만 군사기지로 전용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바로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 탄생한 골프클럽이 오크허스트 링크스인 것이다.

몬테규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골프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코스의 실제 소유주였던 그는 몇몇 동료와 힘을 합쳐 1888년 처음으로 매치플레이 전통을 그대로 살린 대회를 개최한다. 매년 크리스마스에 대회가 열렸는데 경기 타이틀은 ‘챌린지 메달’이었다. 이 경기는 미국에서 최초로 개최된 골프 토너먼트로 평가받는다. 뉴욕 세인트앤드루스 골프장 멤버들이 3홀 플레이를 즐기고 있을 때 이들은 9홀 매치플레이 대회를 치렀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이 닥쳤다. 1893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오크허스트 링크스의 회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몬테규와 대부분의 원년 회원은 세상을 뜨거나 회원직을 내놓았다. 그 결과 코스에서의 플레이는 1910년 이후로 중지됐다. 이 작은 코스는 무성한 잡초로 뒤덮인 채 목장으로 방치됐다.

샌드 티잉그라운드에서 아이언 샷을 준비하고 있는 한 남성 골퍼. [AP]
히코리 클럽과 구타페르카 공 사용
그렇게 50년이 흐른 뒤 1960년 루이스 켈러 시니어(89·당시 37세)가 이 땅(약 3만7000평)을 사들인다. 조언자가 있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골퍼 샘 스니드(1912.5.27~2005.5.23)였다. 스니드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다승인 82승을 기록한 인물이다. 켈러는 오랜 친구인 스니드로부터 오크허스트 링크스에 대해 듣게 된다. 스니드는 근처의 그린스보로 골프리조트에서 수십 년 동안 헤드 프로로 일했었다. 켈러는 그때 여름 휴양지로 사용하고, 또 말을 기르기 위해 이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는 코스를 복원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지만 한 골프 기자가 부추기기 전까지는 수십 년 동안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코스 복원은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뒤에야 시작됐다. 1991년 시작된 복원작업은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기사와 안내를 위해 사용된 코스 사진을 참조해 3년여 동안 진행됐다. 켈러는 당시 유명한 골프코스 설계가 봅 컵을 참여시켰다. 켈러와 컵은 숱한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20일 지금의 오크허스트 링크스 골프클럽을 원래대로 복원시켜 놓았다. 1884년 문을 연 뒤로는 110년 만이었고, 1910년 문을 닫은 뒤로는 84년 만이었다. 당시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코스에서 히코리 샤프트 클럽에 구타페르카(말레이시아산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수지를 이용해 만든 원피스 볼) 공을 이용해 플레이함으로써 1800년대의 골퍼들이 가졌던 골프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고 느끼는 것이다.” 켈러는 심지어 오래전 방식으로 잔디를 깎기 위해 수십 마리의 양을 투입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이 코스를 찾는 골퍼들은 남성이나 여성 할 것 없이 모두 예전의 전통적인 복장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남성은 넥타이와 니커보커스 복장이 기본이었고 여성 골퍼들은 대부분 긴 소매의 블라우스와 긴 치마를 입었다. 골프클럽은 이들 손님에게 히코리 샤프트가 장착된 클럽과 ‘거티(Gutty·또는 Gutta)’란 애칭으로 불리는 구타페르카 공을 제공했다. 또 티잉 그라운드는 샌드로 조성했고 공을 올려놓는 티는 모래에 물을 적셔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전통적인 플레이 방식 그대로였다.

색다른 즐거움 줬지만 큰 관심 못 끌어
이후 1998년부터는 미국 히코리 챔피언십이 매년 이곳 오크허스트 링크스에서 개최돼 왔다. 이처럼 전통적인 라운드는 많은 사람에게 골프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과 생경한 경험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켈러가 생각했던 만큼 골퍼들에게 큰 매력을 끌지는 못했다. 결국 골프클럽은 수년째 경영난이 계속 가중됐고 급기야 재개장 18년 만에 경매에서 41만 달러(약 4억6000만원)에 매각되는 비운을 맞았다.

지금 켈러는 이번 경매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 그것은 슬픔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미국 사적지로 등록돼 있는 이 코스에 대해 미국 골프산업계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번 경매의 낙찰자가 앞으로 이 코스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데 있다. 켈러는 이번 경매를 통해 ‘속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란 회의에 빠져 있다. 그는 “그동안 역사적인 게임을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어렵게 돼 가슴 아프다. 미국 골프계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 코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아내 로살리를 떠난 보낸 켈러는 지금 혼자다. 그는 이제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퇴직자 전용주택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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