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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비관론의 허실… 17억 명 신흥 중산층이 희망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세계적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미국의 몰락’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논지는 이러했다. 지구촌 많은 국가에서 사회 발전의 준거틀이 돼 온 미국식 모델, 즉 자본주의 시스템과 보수주의적 가치가 유효성을 상실했으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때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이전 대표작 역사의 종언에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한 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고문은 거의 양심선언 수준일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후쿠야마가 아니더라도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유력 학자들의 비관론이 도처에서 터져 나왔다. 이들은 대개 현재의 위기가 경기순환상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 붕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미셸 아글리에타의 말을 빌리자면 “부채를 먹고사는 기존의 성장체제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흔한 비관론을 펼치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니 이쯤에서 결론부터 이야기해 둬야겠다. 비관론 속에서 낙관론을 펼 만한 근거 또한 충분하다는 것이다.

금융의 실물 지배, 위기의 씨앗
우선 비관론의 근거 또한 풍부하다는 점을 짚어 두는 것이 공평하겠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후쿠야마 교수의 ‘자본주의 항복 선언’ 이후 4년, 지금은 어떤가. 주요국 경제는 여전히 과잉 채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미국·유럽 등 선진경제의 과잉 채무는 총 8조 달러로 추정된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남유럽 국가들의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면서 유로존(유로화 통용 17개국)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유로존 회원국 간 이해상충으로 해결안 도출이 여간 어렵지 않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무제한 국채 매입정책을 천명하면서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갔지만 사태가 쉽게 해결되리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선진경제의 또 다른 축인 미국의 상황도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대규모 재정적자 축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이후 각종 재정정책을 통해 약 2조 달러의 경기부양을 시행했다. 부시에서 오바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행된 각종 부양책, 가령 감세나 상속·증여세 감면, 급여세율 인하, 실업급여 혜택이 차례차례 종료되는 것이다. 이른바 ‘재정절벽(Fiscal cliff)’의 재앙이 우려된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다. 돌이켜보면 그 씨앗은 금융 자유화가 시작된 1980년대에 뿌려졌다. 이후 40여 년간 금융 부문은 실물 부문으로부터 점점 유리된 채 자기순환적 팽창을 계속해 왔다. 미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과 하이먼 민스키가 우려했던 ‘파멸적 붕괴’ 단계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공포마저 느껴진다.

그렇다면 비관론이 정답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비관론자라도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주가의 움직임이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한데도 다수 국가의 증시가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는 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유럽에서도 독일과 영국의 주가는 위기국면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신흥시장 역시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식시장은 보합을 넘어 강세장에 가까운 모습이다. 심지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남아공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초강세장이 연출된다. 글로벌 경기의 향배를 가늠케 한다는 한국 증시 역시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상반기 조정 장세를 보인 뒤 14일 다시 2000포인트를 넘었다.

증시 호전, 거품 아니라 실수요 반영
물론 넘쳐나는 돈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유동성 거품’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글로벌 펀드로의 자금 유출입 동향을 보면 많은 돈이 채권형 펀드에 몰렸다. 주식형 펀드는 오히려 순유출을 기록했다. 미 연기금이나 보험회사도 자산 구성을 할 때 주식 비중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는 보수적 운용을 하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린 돈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각국 주가의 밸류에이션(Valuation·실적 대비 주가 수준) 지표는 역사적 기준에 비춰 볼 때 거품이라는 징후를 찾기 힘들다.

넘치는 유동성의 힘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주가를 끌어올린 원동력은 뭘까. 신흥경제라는 거대한 수요 축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생각해 보라.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유럽과 맞먹는 중국 경제가 지난 4년간 무려 40%나 성장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이 보여 주듯이 새로운 수요의 기반이 지금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신흥경제 역시 경기순환의 굴곡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2030년까지 17억명의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될 것이라는 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예측이 꽤 적중한다면 과잉 채무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의 위기는 극복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생각된다. 요컨대 경제가 어려운 것은 생산·소비 양쪽 측면에서 수요가 부족한 탓이다. 중국이나 아세안처럼 수요가 확대되는 신흥시장이 커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글로벌 경제가 비관과 낙관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지금, 나는 낙관론 쪽에 무게를 두겠다.



김석규(52)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리젠트자산 운용 상무 등을 거쳐 B&F투자자문과 교보투신운용의 대표를 지냈다. 펀드업계의 대표적 거시경제 전문가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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