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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산악탐험은 보험업의 교과서

구자준(62·사진) LIG손해보험 회장은 전자공학도 출신의 이공계 최고경영자(CEO)입니다. 14년째 보험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26년간 방위산업 등 제조업에 종사했습니다. 보험사 경영자로 변신한 이듬해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퇴출위기에 있던 럭키생명의 대표가 된 그는 2년 만에 이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소통의 수단으로 임직원들과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이렇게 마라톤을 시작해 그는 지금까지 42.195 풀코스를 10회 완주했습니다.

CEO 일요 경영산책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 ①

그는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 구철회 회장의 막내아들입니다. 금성사 시절의 LG전자에 말단직원으로 들어가 훗날 분사된 방위산업 부문에 몸담을 당시 미사일 기술을 국산화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천생 엔지니어입니다. 쉰에 대표이사가 됐으니 오너 경영인치고는 늦깎이인 셈이죠.
LIG손해보험은 그가 경영을 맡은 후 13년 만에 자산 규모가 5.7배로 커졌고, 매출액은 4.4배로 늘어났습니다. 세계적인 보험 전문 평가회사 A. M. 베스트로부터 8년 연속 A(엑설런트) 등급을 받는 등 재무 건전성과 안정성 면에서도 우량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구 회장의 마라톤 경영론과 나눔의 철학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

마라톤으로 조직 일체감, 실적 호전
LG그룹이 인수한 부산의 럭키생명(옛 한성생명, 현 우리아비바생명)에 사장으로 부임한 것이 2000년입니다. 가서 보니 보험료를 받아 경비로 쓰고 급여도 보험료로 지급하더라고요. 일부만 사업비로 쓰고 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할 보험료를 전액 사업비로 쓰는 겁니다. 금융회사라서 현금이 있었지 제조업체라면 이미 부도가 났을 겁니다. 직원 사기도 바닥이었습니다.

골프를 좋아하고 실력도 수준급이었지만 딱 끊었습니다. 그리고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임직원 40~50명과 한 시간씩 부산 바닥을 달렸습니다. 똑같이 팬츠 입고 뛰고, 끝나고 나면 식당으로 몰려가 3000원짜리 설렁탕을 함께 먹었죠. 오너 사장이라 어려워하던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내심 “아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구나. 믿어도 되겠구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허수 계약 등 나쁜 영업 관행이 차츰 줄면서 경영이 호전됐습니다.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생산성이 네 배로 뛰었죠. 흑자로 전환시켜 2008년 초 좋은 가격에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마라톤과 보험사 경영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기초체력이 중요합니다. 마라톤을 뛰려면 다리에 근육이 붙고 심폐기능에도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보험 영업을 하려면 보험상품 자체에 관해 해박해야 할뿐더러 고객 성향을 미리 조사해 파악해 둬야 합니다. “나 좀 먹고 살게 보험 하나 들어달라”는 식의 영업은 이런 기본과는 거리가 먼 생떼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기초체력이 기업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줬죠.
마라톤을 하려면 또 유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르막·내리막 등 다양한 지형, 기상 변화에 잘 적응해야죠. 마라톤을 하다 보면 20㎞ 지점을 지나면서 오히려 힘이 안 드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맛볼 수 있고, 32~37㎞ 구간이 가장 힘듭니다. 이렇듯 경영 환경도 수시로 변합니다. 단적으로 보험 영업을 하다 보면 ‘내가 이 짓까지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 때가 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죠. 지구력이 요구되는 것도 마라톤과 보험의 공통점이죠.

서산대사의 漢詩, 선구자의 좌우명
마라톤에 이어 저는 2001년 고산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고(故)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 K2봉에 오르면서 원장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죠. 탐험을 할 땐 무엇보다 리더십과 팀워크가 긴요합니다. 탐험의 성패가 이 두 가지에 달린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것이 팀원의 생사를 가르기도 하죠. 저의 경영 좌우명은 서산대사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 김구 선생도 자주 인용한 이 시는 선구자의 역할과 자세를 제시합니다. CEO의 경영 의사결정은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잘못되면 구성원들을 절벽으로 인도해 모두 떨어져 죽게 할 수 있죠.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이 훗날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이 결정 덕에 나중에 회사가 큰 이익을 볼 것인가. 내 뒷 세대의 삶이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더 미래지향적인 판단을 하게 되죠.

전인미답의 눈길을 혼자 걷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블루 오션(Blue ocean)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신성장 동력도 이리저리 탐색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발굴해 낼 수 있죠.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선발 회사 금성사가 버티고 있던 전자산업에 진출한 것도 이런 용단이었습니다. 반도체 시대, 휴대전화로 소통하는 세상을 내다봤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혜안이었죠. CEO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리스크 테이킹은 잘나갈 때 하는 겁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하는 건 도박에 불과하지요.

탐험을 하다 보면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동안 회사 자리를 비웁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생각의 주간’을 보내듯이 이 기간 저도 재충전을 합니다. 한계상황을 돌파하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고 겸손해지기도 하죠.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동안 도전정신, 절제와 인내를 배웁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 경영도 단기 성과에 연연해 오버페이스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죠.
산악 탐험을 할 땐 루트를 잘 골라야 합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 같은 선구자들이 이 루트를 만들었죠. 지구 최고봉 에베레스트엔 박 대장이 개척한 ‘박의 코리안 루트’가 있습니다. 경영을 할 때도 이렇게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야 합니다. 시장과 매체의 변화로 새롭게 등장한 방카슈랑스나 제휴사업 등에 우리 회사가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이런 저의 생각과 무관치 않습니다.

탐험을 떠날 때면 의사결정을 임원들에게 위임합니다. 임원들은 큰일이 벌어지면 결단을 윗사람에게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가 되면 책임감을 가지고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리죠. 지난 10여 년간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한두 건 그럴 만한 큰일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부사장이 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보다 일처리를 잘 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CEO의 부재는 임원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가늠하고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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