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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트렌드 예술의 탈(脫)경계와 융합] 미술관에 걸면 미술작품, 영화관에 걸면 영화?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은 이정재와 임수정, 두 스타 영화배우가 출연한 최근작이다(사진). 하지만 영화관과 TV에서 볼 수 없다. 그럼, 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답은 미술관. 이달 초 개막한 광주비엔날레의 전시관 한 코너에서 상영 중이다.

이 작품은 아티스트 문경원과 전준호가 공동으로 만들었고, 독일의 권위 있는 현대미술제인 ‘카셀 도큐멘타’에서 올해 초에 처음 공개됐다. 미술가가 만들었고 영화제가 아닌 미술제에 나왔으니 모두들 영화라고 부르기보다 영상작품이나 미디어아트라고 부르곤 한다.

딱 봐도 일반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긴 하다. 나란히 붙은 두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이다. 왼쪽 스크린은 어느 예술가(이정재)의 허름한 창고 같은 아틀리에를 보여 준다. 아틀리에 바깥에서는 자연 파괴를 동반한 대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오른쪽 스크린에 나타난 미래 인류(임수정)가 대재난의 여파로 방호복과 수분 공급 목걸이를 착용한 데서 추측할 수 있다.

왼쪽 스크린의 예술가는 자신을 포함한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작품을 만든다. 오른쪽 스크린의 미래 인류는 대재난 전의 식물 잔해를 채집하다가 예술가가 남긴 것을 발견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기나긴 세월의 간격이 있지만 때때로 그들은 마치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듯 옆 스크린 쪽으로 눈길을 던진다.

이렇게 일반 영화와 다른 2채널 상영방식은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영화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대사는 없지만 임수정의 내레이션이 있으며 하나의 이야기 구조가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업영화와는 사뭇 다르지만 아트하우스 영화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있다. 지금 서울 국제갤러리는 세계적인 미술가 김수자의 최신작 ‘실의 궤적(Thread Routes)’을 상영 중이다. 세계 각지의 직조문화를 그 지역의 자연과 건축과 함께 관조하며, 그것들을 한 줄기로 꿰뚫는 인간의 원형적 미학과 삶의 태도를 찾아가는 영상작품이다.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춤추는 듯한 손놀림으로 레이스를 뜨는 장면, 또 완성된 레이스의 이미지가 마치 절묘한 변주처럼 그 지방 식물의 이미지와 교회 천장 무늬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장면이 아름답다. 작가의 말대로 “시각적 시”인 동시에 “시각적 인류학 다큐멘터리”이기도 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내레이션이 없는 것 외에, 베르너 헤어초크 같은 영화 거장의 시적 아름다움을 지닌 다큐멘터리와 어떤 장르적 차이가 있을까?

결국 미술가가 만들면 미술작품이고 영화감독이 만들면 영화인 것일까? 하지만 요즘 그 두 가지를 겸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1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 감독 아피찻뽕 위라세타쿤은 같은 해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1999년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 스티브 매퀸은 최근 ‘헝거(2008)’ ‘셰임(2011)’ 등 장편영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니 “미술가가 만들면 미술작품, 영화감독이 만들면 영화”라는 구분보다는 오히려 “미술관에서 상영하면 미술작품, 영화관에서 상영하면 영화”라는 구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무식한 구분 같지만 두 장소의 차이는 관객 감상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상의 저편’을 미술관에서 두 스크린에 상영하는 대신 예술가 장면과 미래 인류 장면을 한 스크린에 교차하도록 편집해 영화관이나 TV에서 상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관객은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좀 더 집중해 작품을 볼 수 있다. 반면 적극적으로 시선을 옮겨 가며 작품을 보는 대신 소극적으로 작품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8월 말에 개관한 서울미술관(서울 부암동)의 이주헌 관장은 향후 다양한 전시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심지어 영화나 만화도 전시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 경우에는 물론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과는 다를 것이다. 미술이 영화 등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정해진 시간 동안 선형적 순서로 감상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미술작품 보듯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뉴미디어의 시대에는 하나의 작품이 보여지고 보는 방식에 따라 영화로도 미술로도, 또 다른 예술장르로도 될 수 있다. 예술의 이러한 탈(脫)경계와 융합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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