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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 총리로 냉전시대 동·서 진영 가교 역할

한국인 다수는 ‘사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반사적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아마도 해방 직후 좌·우파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한국전쟁 이후 유지된 반공정책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구상 모든 전체주의 공산체제도 표면적으론 사회주의를 표방하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질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전혀 다르다. 사민주의는 공산주의 이론 중 역사유물론,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을 거부한다. 대신 의회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평화롭고 점진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한다. 사민주의 원로로는 독일 정치학자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독일 사민당을 창건한 카를 카우츠키, 프랑스 사회당 시조 장 조레스 등을 꼽을 수 있다. 독일 빌리 브란트, 스웨덴 올로프 팔메, 그리고 오스트리아 브루노 크라이스키(사진) 등은 유럽 사민주의를 현실 정치에 도입해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유럽 사민주의 거두 브루노 크라이스키


非시온주의자 아랍권서 환영 받아
크라이스키는 1911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아버지는 봉제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그러나 크라이스키는 소년 시절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청년노동연맹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당시 엥겔베르트 돌푸스 정권의 사회주의 금지령으로 크라이스키는 지하운동을 벌이다 35년 경찰에 체포됐으나 이듬해 풀려났다. 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유대인인 그는 스웨덴으로 피신해 46년까지 살았다. 종전이 되자 귀국해 스웨덴 주재 대사로 임명된다. 이후 대통령 비서관, 외무부 정무차관을 지냈다. 외무성 정무차관 시절인 53년 크라이스키는 연합국과의 협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승전 4대국의 공동 통치를 받던 오스트리아의 주권을 회복하고 중립국으로 변모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56년 오스트리아 사회당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다음해 당수에 선임된다. 59년엔 기독교민주당과의 연정에 참여해 외무장관을 지냈다. 70년 사민당이 집권하자 총리에 올랐다.

크라이스키는 총리직 13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외교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중립국 지위를 이용해 냉전시대 동·서 진영 간 가교 역할을 했다. 개발도상국과의 남북 협력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선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등 국제기구를 빈에 유치해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미·소 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위한 접촉을 중재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의 조정자를 자임했다. 크라이스키는 유대인이지만 시온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보다 오히려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서 더 환영받았다. 77년엔 브루노 크라이스키 세계인권상을 제정해 남아공 넬슨 만델라 등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우리 저항시인 김지하도 81년 이 상을 수상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다수인 오스트리아 사회는 전반적으로 보수성이 짙었다. 크라이스키는 오래된 법제를 과감하게 손질해 자유주의를 확산시켜 권위주의를 점진적으로 없앴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승진 등 남녀 간 차별을 철폐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임신 중절과 동성애에 대해 합법성을 관철시켰다. 다만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 개발 추진은, 이 안이 78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계획을 접었다. 크라이스키는 83년 정계를 은퇴하고 요양하다 신장이식수술 부작용으로 90년 세상을 떠났다.

크라이스키는 사회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활동을 통해 유럽에 사민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기존의 잡다한 유럽 온건좌파 정당을 묶어 51년 결성된 사민주의의 국제적 연대 기구다. 70~90년대 서유럽 수개 국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이다.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은 자유, 평등, 인권, 개방이다. 사회정의 구현, 사회적 연대의식에 바탕을 둔 균등한 분배와 복지 확대도 사민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이다. 유럽 사민주의 정당은 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의 큰 틀 속에서 그들의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나라별로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서유럽 다수 국가에선 사민주의 계열 정당이 온건 성향의 보수 정당과 번갈아 정권을 맡고 있다.

한국, 권력집중 강해 사민주의 어려워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성공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여러 형태의 정치체제를 경험했다. 또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도 무수히 겪었다. 이 와중에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지고의 가치임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공산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사민주의라는 이상주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사민주의가 제 아무리 바람직한 정치 이상이라 할지라도 모든 나라에서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민주의가 유럽 각국에 뿌리 내릴 수 있는 데는 두 가지 기본 여건이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의 고른 의식수준과 크지 않은 빈부격차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균등한 분배와 복지 확대가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사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민주의는 권력 분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오랜 중앙집권 전통은 권력 집중을 선호한다. 파이를 나누기보다 승자에게 다 몰아주는 권력 형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경제·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 있는 한 사민주의는 자리 잡기 어렵다. 민도는 낮은 편이 아니지만 균형적 사고보다 극단적 논리가 앞선다. 과거 우리 경제의 급성장을 이룬 원동력인 기형적 자본주의에 대한 미련도 떨쳐내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 다수가 사회민주주의를 열망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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