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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경제’ 스트레스

최근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의 소니·파나소닉·샤프가 쇠퇴한 것은 ‘나쁜 소비자’ 탓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소비자란 누구를 말할까? 바로 당신이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 보면 땀 흘려 만든 신제품을 알아주지도 않고 사주지도 않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나쁜 소비자’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한때 전자왕국이라 불리던 ‘기술의 일본’이 나쁜 소비자의 관점에서 마케팅을 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전 세계의 나쁜 소비자에게 버림받지 않고 잘나가고 있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을 보면 재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김시래의 세상탐사

사실 착한 기업과 착한 소비자란 존재할 수 없다.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의 이윤을 남기려는 기업’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 나쁜 기업이다. 반대로 ‘까다로운 품질을 요구하면서 값싸게만 사려는 소비자’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모두 나쁜 소비자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뿐 경제주체들은 이렇게 착하지 않다.

수원시 화서동 골목에는 속칭 ‘착한 가게’와 ‘나쁜 가게’가 몇 발짝 사이를 두고 나란히 있다. 친환경상품을 판다고 하는 착한 가게의 간판에는 ‘착한 생산, 착한 소비’라고 써 있다. 골목상권을 고사시킨다며 나쁜 가게라고 손가락질 받는 기업형수퍼마켓(SSM)은 ‘신선한 가격, 맛있는 하루’라고 돼 있다. 필자는 이 골목을 지날 때마다 ‘착한’ 글씨에 항상 마음이 걸렸다. 큰맘 먹고 지난 휴일 아침에 착한 가게를 찾았다. 그러나 쉬는 날이라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투덜대며 나쁜 가게를 가야만 했다. 며칠 뒤 착한 가게에 다시 들러봤다. 하지만 물건이 조잡하고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유기농 짜장라면 하나가 1900원이나 했다. 그들이 착한 생산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의 착한 소비를 할 생각은 싹 가셨다. 차라리 개념 없는 소비자란 욕을 먹더라도 나쁜 가게에 가서 편리하게 값싼 제품을 사기로 했다. 대신 착한 생산을 하는 사람들이 어렵다면 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돕고 싶은 심정이다.

종북 논쟁을 불러일으킨 통합진보당이 분열되기 얼마 전에는 ‘아메리카노 논쟁’이 벌어졌다. 옛 당권파의 한 인사는 “유시민·심상정 전 공동대표가 회의 중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와서 마신다”며 “이런 사람들이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유 전 대표와 심 전 대표는 “아메리카노를 계속 마시겠다”고 했다. 심 전 대표는 “밥 먹는 것 이외에 유일한 기호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뼛속까지 진보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이들 두 사람의 반응치고는 뜻밖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도 나쁜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착한 경제니 뭐니 하면서 이념과 사상을 섞지 않는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얘기다.

국산품 애용이 착한 소비라고 외치던 시대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자기가 마시는 커피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두세 잔씩 먹는 커피 애호가인 그에게 몸에도 안 좋은 걸 왜 그렇게 마시느냐고 묻자 “내 삶의 즐거움이다. 서양 애들이 수백 년간 먹어도 탈 없는데 무슨 문제냐”고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커피에 관한 한 착한 소비자였다. 가난한 우리 농민들을 돕는 차원에서라도 국산차를 마셔야지 왜 쓰디쓴 커피를 외화 낭비하며 수입해 마시느냐는 논리였다. 그런데도 당시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 매장에 가보니 정 명예회장의 착한 소비 유지(遺志)는 간데없고 마치 ‘커피 왕국’이 된 것 같은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나쁜 소비자의 행태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도 막을 수 없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이 동성애자라고 경쟁업체들이 아무리 흘려대도 나쁜 소비자들은 신제품 ‘아이폰5’에 열광할 뿐이다.

요즘 12월 대선을 앞두고 착한 경제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정치공학적으로 대기업을 나쁜 기업으로,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를 착한 기업으로 규정해 놓고 표를 계산한다. 위헌 논쟁까지 일으키며 700만 자영업자를 위한 휴일 영업제한법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5000만 명의 대한민국 나쁜 소비자는 어찌할 셈인가. 이들을 착한 소비자로 바꾸기는 더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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