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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안에서 살아가는 게 과연 최선일까

엄청난 재난을 겪은 후 인간의 가치관은 변하게 마련인지, 개인주의로 치닫던 일본인들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연과 이웃을 돌아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 주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TBS 개국 60주년 특집 대하드라마 ‘남극대륙’은 패전 후 일본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남극탐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셔널리즘의 회복을 외치는 드라마일 것 같지만 뜻밖에도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썰매 개들이었다. 자연이 주는 극한상황을 함께 견뎌내는 인간과 개의 우정에, 과연 인간이 개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13일 개봉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대지진 발생 당일 제작회의를 시작한 때문인지 인간과 자연을 조명하는 시선이 한층 대안적이다. 호소다 감독은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인물. 스튜디오 지브리의 잠재적 후계자로 낙점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5)을 만들던 중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의 입김으로 중도하차했지만, 이듬해 경쟁사인 가도가와 서점에서 제작한 감성애니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하 시달소)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로 떠올랐다. ‘시달소’와 2009년 작 ‘썸머 워즈’는 모두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늑대아이’도 개봉 한 달간 300만 관객이 들어 동시기 개봉한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밀리지 않았다니 과연 대세는 대세인가 보다.

호소다 감독은 이번 작품이 대지진의 영향을 받았고, 재난에도 퇴색되지 않는 ‘모성 예찬’을 테마로 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왜 ‘늑대’일까? 이는 워낙 변신 코드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취향과 감독의 장기인 ‘경계 허물기’가 맞물린 결과다. ‘시달소’가 과거와 현재·미래의 경계를, ‘썸머워즈’가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늑대아이’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우리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화 속 악역에게도 모성이 있고 생태계의 법칙에 따른 이유가 있음을 일깨우는 살짝 진보적인 동화였다면, ‘늑대아이’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세계와 자연세계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늑대인간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유키와 아메 남매. 누나 유키는 어린 시절 늑대의 야성을 마구 드러내는 천둥벌거숭이였지만 철이 들자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택하고, 온순하고 겁 많던 동생 아메는 자연을 ‘선생님’ 삼아 산으로 돌아가길 택한다. 동화를 읽으며 “왜 늑대는 항상 나쁜 역할을 하다 결국 죽임을 당하나. 그런 거라면 늑대가 되고 싶지 않다”며 방황하던 아메가 자라서 자유의지로 당당히 늑대이길 택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존재에 덧씌운 스테레오 타입을 근본부터 허무는 의미다. ‘늑대’란 결국 인간이 만든 제도권 밖에서 가치를 찾는 삶에 대한 알레고리인 것.

마을의 어른 니라사키는 등교를 거부하는 아메를 “어릴 때부터 학교에 잘 안 가는 놈은 장래성이 있다. 에디슨이나 나처럼”이라며 두둔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권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조건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대사다. 엄마는 아들이 늑대인간의 후예로 당당히 자랄 방법을 함께 찾고, 아들의 선택을 응원한다. 공존할 수 없는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 스타일이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 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감독 스스로 밝힌 바 있듯, 삶에 있어 ‘제도권 안에 수렴되기’와 ‘제도권 밖에서 가치 찾기’는 어쩌면 선택의 문제인지 모른다.

영화는 자녀를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는 우리 ‘학부모’들의 목표가 모성의 본질은 아니며, 아이를 제대로 성장시킬 방법을 인간과 자연에 공평히 물어보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참모습이 아니냐는 대안을 늑대와 인간의 결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판타지를 통해 제시한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뭘까. 황당한 판타지 속에서도 내 주변에 정말 있을 법한 배경과 인물들에 내재된 보편적인 감성을 새롭게 발견해 내는 호소다 감독의 ‘공감의 힘’이 아닐까. 그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이기도 하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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