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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도 해야 하는 두 가지, 고독과 사랑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은 이렇게 시작한다.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읊조려봤을 그의 시에서는 한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0>『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의 시는 아름답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산문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 『말테의 수기』는 아주 느리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어렵게 읽어야 한다. 여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인에게 한 문학 지망생이 인생과 시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물어왔다. 이에 답을 해준 열 통의 편지를 묶은 것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a Young Poet)』다. 편지가 쓰인 1903~1908년 사이 릴케는 주로 파리에서 생활하며 이탈리아와 독일,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등지를 여행했고, 그래서 때로 몇 달씩이나 답신을 미루곤 했는데,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약간의 정적과 고독, 그리고 너무 낯설지 않은 시간을 말합니다.”

이 시기는 또 그가 조각가 로댕으로부터 보는 법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내면을 오래도록 응시하면서 무겁게 닫혀 있는 사물의 내부로 경건하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로댕의 작품은 그에게 깨우쳐주었다. 그가 첫 번째 편지부터 젊은 시인에게 고독 속으로 침잠하라고 서릿발처럼 엄하게 꾸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신은 당신의 눈길을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 보십시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 그리고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 불러내는 내면으로의 전향(轉向)으로부터 시가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세 번째 편지에서는 “예술작품이란 한없이 고독한 존재”라며 비평의 글은 되도록 읽지 말고, 늘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느낌이 옳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준다. 예술가는 그렇게 나무처럼 성장해 가는데, 그 무엇에 의해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산(産)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입니다.”

한 통씩 편지가 이어질수록 젊은 시인을 향한 릴케의 애정은 깊어가고, 일곱 번째 편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 역시 훌륭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려우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여덟 번째 편지에서는 큰 슬픔을 겪은 젊은 시인에게 슬픔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미지의 것이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위로한다. “슬픔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슬픔을 시끌벅적한 곳으로 들고 갈 때 오히려 그 슬픔은 위험스럽고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을 위로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솔직하고 겸손한 인물인가. 이런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결국 인기 작가로 성공했고, 통속소설을 써서 돈과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릴케가 그토록 당부했던 고독과 사랑은 지켜내지 못했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까.
나도 지나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본다. 인생의 고비 때마다 늘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을 택하려 하지 않았는지. 그렇게 해서 과연 지금 얼마나 쉽게 살고 있는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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