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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애 낳기 힘든 나라, 그 책임은?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
할머니들은 종종 “옛날에는 애 낳고 바로 밭 매러 갔어”라는 말을 한다. 임산부들의 나약함을 말씀하시는 것일 게다. 요즘은 애 낳는 일이 중대사 중의 중대사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아이를 1명 낳을까 말까 한다. 젊은 부부들에게 임신·출산은 결혼에 이은 두 번째 ‘큰 일’이다. 어쩌면 평생 한 번뿐일지 모르는 ‘그날’을 앞두고 부부들은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병원을, 친정엄마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줄 산후조리원을 찾는다.



 하지만 임신부들의 열 달은 녹록지 않다. 경북 군위군에 사는 윤미화(32·여)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 7월 대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윤씨는 산전 진찰 때마다 버스 두 번을 갈아타며 왕복 3시간이 걸려 병원에 다녔다. 윤씨는 “애를 낳았지만 군위에는 소아과가 없어 앞으로도 젖먹이를 안고 대구까지 오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분만실을 찾아 헤맸던 ‘출산 난민’ 엄마의 고행길은 끝나지 않았다.



 대도시에 사는 임신부들은 다른 이유에서 괴로워했다. 지난해 9월 딸을 낳은 서모(31·서울 금호동)씨는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강북의 유명 산부인과를 이용한 서씨는 산전 진찰 때마다 예약자가 넘치는 병원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진료실에 머무른 시간은 단 5분. 서씨는 “모니터만 바라보고 앉아 기계적으로 초음파 영상을 분석해 주는 의사 앞에서 뭘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환자가 몰리는 대형 산부인과병원들은 3분 단위로 진료를 하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초음파 검진으로 수익을 낸다. 병원에서 권하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다 보면 정부의 출산지원금(50만원권 바우처)이 금세 동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산부인과 진료가 공공의료의 한 축이라는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이 고된 산부인과를 의대생들이 기피해 10년 후에는 애 받을 의사가 급감할 위기인데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산부인과 의사와 병원이 부족하다면 분만 취약지 응급·고위험 산모들을 위한 의료 안전망이라도 촘촘해야 하는데 여전히 엉성하다. 10년 안에 우리도 일본처럼 응급 상황에 처한 임신부가 입원할 병원을 못 찾아 숨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회가 분만 인프라 붕괴를 방치하는 사이 출산이 컨베이어 벨트 위 상품이 돼가고 있다. 시장이 좁은 시골에서는 병원이 사라지고, 소비자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2주에 수백만원 하는 산후조리원들이 급증한다. 양육은커녕 애 낳을 때부터 이렇게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건지 정부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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