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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간단명료형, 문재인 원고낭독형 ,안철수 질의응답형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문화원 연합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기념사의 상당 부분에 자신의 지방 경험을 담았다. “사실 저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지방 곳곳을 많이 다니면서 문화유산들, 독특한 술 빚는 곳 등을 찾아다녔고…어느 지역을 가든 향토 음식을 꼭 맛보고 왔습니다.” 박 후보는 보좌진이 준비한 기념사 초고를 본 후 ‘지방 참석자가 많은데 이들에게 다가갈 내용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볼펜으로 줄을 쳐가며 꼼꼼히 경험담을 다시 넣었다고 한다.

“요망지게 일 허쿠다. 하영 도와줍서(꿋꿋하고 야무지게 일할 테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지난달 25일 제주 한라체육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통합당 첫 순회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예비후보는 이런 인사말을 하기 위해 녹음기까지 활용했다. 경선에 앞서 도민의 마음을 잡을 인사말을 고민하던 문 예비후보는 한 지지자의 방언 인사말 제안에 ‘이거다’ 싶었다. 그는 현지인 발음을 녹음한 후 억양을 흉내 내며 차 안에서, 숙소에서 수없이 연습했다.

말은 정치인이 가진 최고의 무기다. 의회(parliament)란 단어 자체가 프랑스어 ‘말하다’(parler)를 어원으로 한다. 정치인은 말이란 무기로 상대를 공격하고, 나를 방어한다. 특히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나 강연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표를 얻는 강력한 무기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들은 말의 성찬을 펼치고 있다. 전국을 돌며 순회 경선 중인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연설 스타일로 유권자에게 다가간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5년 전에 비해 유머와 미소 띤 모습을 자주 보인다.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공감 화법’의 대가란 소리를 듣는다.

박근혜, 미소·유머로 ‘얼음공주’ 탈피
딱딱한 표정과 화법으로 ‘얼음공주’란 별명을 가졌던 박근혜 후보는 요즘 ‘미소와 유머’ 코드를 많이 활용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실현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선 참석자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심장 무게’를 물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사랑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모르세요. 하하. 정답은 두근두근해서 네 근입니다. 하하하.”경남 합동연설회 땐 “식사들 단디 하고 오셨습니까”라고 웃으며 인사했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선 “날씨 디게 덥습니다”라고 말한 뒤 쑥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박 후보가 유머와 미소 코드를 자주 활용하지만 공식적인 연설은 기본적으로 건조하다는 평이다.

박 후보의 ‘대선 후보 당선 수락 연설’을 분석한 스피치(speech) 전문가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은 그의 연설 스타일을 ‘냉철한 교장 선생님형’으로 평했다. 김 원장은 “박 후보의 목소리는 안정적이고 중후하며 신뢰감을 준다. 여성의 목소리가 하이톤이면 가벼워 보이거나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연설은 할 말만 딱 하고 끝내는 스타일이다. 수락 연설을 보면 좀 더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간결하게 할 말을 하는 연설 스타일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란 지적이 있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최진 소장은 “짧게 답하고, 짧게 말하는 스타일은 말 많은 여의도에서 오히려 신뢰감을 주지만 이런 화법을 지속하면 청중은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이제부턴 의도적으로라도 재미있게, 가볍게 보이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설이 상대적으로 건조하다는 평에 대해 조윤선 대변인은 “아나운서처럼 매끄럽게 말하는 것보다 진실과 신뢰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는 발음 고치려 발성 연습
“저는 재벌에게 신세지지 않았습니다. 비공식 정치자금 받은 적 없습니다. 떳떳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문재인입니다.”(강원 합동연설회)
문 후보는 짧게 끊어 또박또박 말한다.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해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연설에서 이런 간결함 속에 그는 ‘청렴’과 참여정부에 대한 ‘반성’, 국정운영 ‘경험’을 담는다. 합동연설회에선 불비불명(不飛不鳴·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의 고사를 자주 인용한다.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못하는 새, 하지만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울면 천지를 뒤흔드는 새. 저는 하늘 끝까지 날고 천지를 뒤흔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 김미경 원장은 “목소리 톤에 변화가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지루하다. 점잖은 공무형이다. 시선 역시 원고를 자주 봐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평했다. 그래서 ‘원고 낭독형’이란 평이 나온다. 목소리는 좋은데 음성이 퍼져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문 후보의 발음에 대해 지난 4월 연극배우 출신인 문성근 당시 민주당 대표대행은 “참여정부 시절 치아 10개를 임플란트한 탓에 발음이 새고 잘 안 된다. 이건 잘되려야 잘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저서 운명에서 청와대에 들어가 첫 1년 동안 큰 스트레스로 치아가 나빠져 10개를 뽑았다고 밝혔다. 문 후보의 부인 김정숙씨는 한 케이블 방송에서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음, 음, 음’ 하며 발성 연습하는 남편을 보면 사랑스럽기도하고 애처롭기도 하다”고 전했다.

김경수 공보특보는 “문 후보는 달변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성과 신뢰감의 전달이다. 원고 낭독형이란 말이 나오는 건 합동연설 초기에 12분이라는 연설 제한 시간을 넘길까 걱정이 돼 원고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요즘엔 주변에서 놀랄 정도로 나아졌다”고 말했다.

안철수, 청중과의 공감 형성에 주력
“가난 해결이 됐고 자율도 해결됐을 때 앞에 놓인 게 뭡니까. 저는 불안 같아요. 불안. 불안을 해결하는 게 복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5월 30일 부산대 강연)
안철수 원장은 ‘공감의 연설’이 무기다. 정치적 연설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복지와 정의, 평화 그리고 소통을 강조한다. 안 원장은 ‘청춘 콘서트’를 비롯해 수많은 강연을 통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공감 화법’의 대가란 평을 듣는다. 무언가를 강조할 때도 정치인 연설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요’ ‘~죠’ 등의 경어체를 사용해 부드러운 느낌이다. “달변가는 아니고 조금 어눌한 편이기도 하지만 내용 자체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진솔하게 들려 어눌한 느낌의 단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화한 교수 스타일이다.”(김미경 원장)

조용한 말투 속에 ‘명언’을 터뜨리는 건 안 원장의 강점이다. “자신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게 청춘이다”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 등의 명언은 인터넷에서 인기다. 안 원장은 강연 원고를 직접 쓴다. 유민영 대변인은 “강연은 주로 질의 응답식으로 진행한다. 강연에 처음 나섰을 땐 청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데 중점을 뒀으나 그래선 공감이 안 된다고 느꼈다고 한다.”고 전했다.다만 대선에 출마할 경우 현재의 강연 스타일이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을 열광시키는 정치적 연설과 강의·강연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펼치기는 하지만 말 속에서 신념과 열정을 확 끓어오르게 하는 힘은 부족하다는 평이다.
 
연설의 고수, 손학규·김두관·정세균
민주당 순회경선에 나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예비후보는 풍부한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연설의 고수’란 평을 듣는다. 손학규 예비후보는 민주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설가란 평가를 받는다. 대학교수의 강의 경험, 당 대표 시절 했던 많은 연설이 바탕이다. 김미경 원장은 “목소리 톤이 높아 잘 들리는 게 장점이다. 다만 민주화에 헌신한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느냐고 강조하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손 후보의 김주한 공보특보는 “연설문 대부분은 후보가 직접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성한다. 내용을 짧고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데 힘쓴다”고 전했다.

김두관 예비후보는 경남 출신이지만 사투리 억양이 없고 발음이 정확하다. 성량이 좋아 대중 연설에 유리하다는 평이다. 연설에선 “청와대에서 정치를 배운 박근혜 후보와 이장과 군수를 거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온 저 김두관’식으로 대구(對句)를 즐긴다. 김 후보 측 전현희 대변인은 “진솔한 모습이 연설에서 나타나도록 힘쓴다. 세련됨보다 내용 전달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정세균 예비후보는 발음과 발성이 안정적이다. 강하고 깔끔하게 들린다. 목소리의 장단, 빠르기 등에 다양한 변화를 줘 청중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평가다. 고등학교·대학 시절부터 총학생회장을 해 대중 연설이 익숙하다. 순회 경선에서 주어지는 12분의 연설을 모두 1, 2초 정도만 남기고 마무리할 정도로 시간을 잘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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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