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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중심에서 활약할 ‘반크 세대’ 키우는 게 꿈”

박기태 단장이 21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반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뒤에 세계와의 우정을 강조한 반크 세계지도가 보인다. 동해와 독도가 잘 보이게끔 표시돼 있다. 최정동 기자
3%에서 30%로.
1999년 활동을 시작한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지난 13년 세월을 압축해 주는 수치다. 순수 민간단체인 반크의 활동을 기폭제로 세계는 ‘동해’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 세계 주요 기관, 지도 제작사, 출판사의 97%는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젠 30%가 동해·일본해를 병기한다.
반크의 저력은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는 10만 회원에서 나온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주요 기관에 한국 관련 정보의 정정을 요청한다. 99년 결성된 이래 회원 수는 매년 늘고 있고, 요즘처럼 한·일 관계가 달아오르면 가입자는 더 몰린다. 매달 새 회원 1000명이 등록한다. 그중 약 30%는 가입비 3만원을 내고 활동하는 정회원이다. 전국 초·중·고교에 결성된 반크 동아리는 440개. 청소년들은 대부분 정회원으로 가입해 한국 알리기 활동을 펼친다.

회원 활동에 정해진 형식이나 방법은 없다. 요즘엔 독도 문제가 뜨거운 만큼 관련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온다. 반크 자유게시판엔 현재 “싸이의 ‘강남스타일’ 미국판 앨범에 독도 안내 문구를 넣자고 제안하자”는 아이디어가 올라와 있다. 자신이 영문으로 쓴 한국 소개 글을 올린 후 “표현들을 참조하라”고 제안하는 회원의 글을 볼 수도 있다. 반크는 이런 아이디어들을 모아 다양한 캠페인을 펼친다.

반크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국 알리기에 나선 첫 민간단체다. 그 선봉엔 박기태(38) 단장이 서 있다. 14일과 21일 두 차례, 서울 성북구 보문동 반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만남은 반전에 반전,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우선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명랑했다. 상근 간사들 소개, 외국인(미국·대만) 인턴 자랑에 30분이 흘렀다. “전 애국자가 아니에요. 일본 문화 너무 좋아해요” “독도를 알리고 동해 표기를 바꾸는 게 반크의 목표는 아니에요.” 기대를 저버리는 답변이 이어졌다.
박 단장에 따르면 반크의 목표는 ‘세계와의 교류’다.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국제주의자다. “반크 회원이 10만 명인데, 저희가 국수주의 단체라고 생각해보세요. 어휴…정말 사회 위험 요소 아니겠어요.”

반크는 전 세계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지려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라는 게 박 단장의 설명이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던 대학생이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어 만든 단체예요. 서로에 대한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죠.”

변변한 스펙 없던 취업준비생의 꿈
반크의 시작은 미약했다. 야간대(서경대 일어일문학과) 졸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 교양 무역영어 수업 시간에 익힌 몇 개의 ‘영문 무역 서식’, 역시 교양수업이었던 ‘인터넷 활용 방법’ 과제물로 만들게 된 홈페이지, 토익 680점…. 박 단장이 당시 동원할 수 있었던 자원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PC방을 전전하며 반크의 이름으로 보낸 몇 개의 서한은 한국 제대로 알리기의 씨앗이 됐다. 그 씨앗은 13년이 지나 잘 자란 한 그루의 나무가 됐다. 여기엔 ‘스펙’ 없이도 사회에 기여할 길을 스스로 찾아낸 박 단장의 열성과 실천이 녹아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굳게 믿었건만, 세상은 박 단장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따져보면 꿈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과 한바탕 수다를 떠는 꿈,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해외 마케팅을 하는 꿈, 사무실 화장실 청소보다 시급(時給)이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는 꿈….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엔 충격이 컸다. “국제 교류에 관심이 많아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대학생 자원봉사자에 지원했어요. 밝고 명랑한 제 성격을 믿고 당연히 합격될 줄 알았는데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더라고요.” 그뿐만이 아니다. 그즈음 응시한 어느 맥주회사의 대학생 마케팅 요원 자리, 시간당 5000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내걸었던 천리안 커뮤니티 대학생 관리요원 자리 등 다양한 구직활동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제가 가서 앉고 싶은 화려한 밥상엔 제 숟가락을 올릴 자리가 없었어요. 그건 ‘엘리트 대학생’의 몫이었던 것이죠.” 그가 넘어야 할 장벽은 높아만 보였다. 반크는 세계로 나가고 싶었지만 별 방법이 없었던 대학생 박기태의 갈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렇게 훌훌 털어내고 스스로 판을 벌인 것이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됐다. 보통은 학점을 채우느라 마지못해 듣는 교양과목이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무역영어 과목을 수강하다 보니 ‘가상으로 회사·단체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팔고자 하는 제품 혹은 캠페인을 알리는 서식을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는 대학생들끼리 펜팔을 할 수 있는 국제 교류 홈페이지를 만들어 한국어과가 개설된 전 세계의 대학과 교육기관에 한국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한국을 안내하는 사이버 관광 가이드’가 반크의 기본 컨셉트였다. 금세 방문자 수 1만 명을 기록하는 인기 사이트로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벌이니까 제 가치가 올라가더라고요. 토익 점수에 목매고 있을 땐 아무런 희망이 없었는데 말이죠.” 손수 차린 작은 밥상은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의 대표적 민간외교 단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반크가 유명해진 만큼 그도 월 20회씩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사회 명사’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요즘 활동이 화려하거나 넉넉한 건 아니다. 한 해 사업비는 6억원 정도인데 정회원 가입비와 기부금, 기업체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박 단장을 포함해 상근자 6명이 주택가에 위치한 월 90만원짜리 허름한 20평 사무실에서 회원 10만 명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한다.

우리도 아시아·아프리카 제대로 봐야
반크의 성과 덕에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도 심심치 않게 왔다. 지난해 겨울,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로 강의하러 나갔다가 트위터에서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실망했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사실 2년 전에 민주당 초청으로도 강의를 했거든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단장은 요즘 무엇을 홍보해야 할지 더 많이, 더 철저하게 고민하고 있다. “독도와 동해 표기라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으로 조명을 받아 (반크의) 강성 이미지가 강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독도는 반크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사안인 건 맞아요. 불꽃 같은 것이죠. 매년 광복절을 전후해 3박4일 동안 회원들과 독도에서 선언식을 하는 이유도 그런 열정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박 단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수 회원 70여 명과 함께 독도를 찾아 기념식을 치렀다.

그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이슈를 의제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도 지켜나가고 있다. “한국을 홍보하는 것이니까 정부에서 반대하는 일을 할 수는 없죠. 가령 반크가 개고기를 홍보할 수 없잖아요. 대신 정권 홍보는 안 합니다. 제가 서울시 홍보대사, 한식 홍보대사도 하고 있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홍보해 달라는 제안은 거절했어요.”

박 단장이 앞으로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독도와 동해 알리기로 부상한 단체지만 반크가 하는 일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왜곡돼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국가 홍보의 완성은 국민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바깥 세계를 이해하는가에 따라 바깥 세계가 한국을 보는 마음이 달라지겠죠.”

반크는 요즘 해외 문화유산 소개 지도, 한식 소개 엽서 등 영문 홍보물 30여 종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한 해 약 20만 부, 10여 년간 총 100만 부가 배포됐다. 한식 알리기, 직지심체요절 같은 한국 기록문화 알리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알리기 활동을 하며 쌓은 노하우를 다른 나라에 전수해주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박 단장은 경기도나 강원도에 ‘반크 학교’를 세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종의 방과후 학교인데,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깨우쳐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에요. 역사를 보면 한 나라가 혁신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리더와 함께 그 리더의 비전을 뒷받침하는 세대가 있더라고요. 전 그런 ‘반크 세대’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가 ‘반크 세대’라 칭하는 미래 세대는 세계를 무대로 뛰려는 자신만만한 세대다. “저희 때만 해도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죠. 하지만 반크 세대는 달라요. 한국은 이미 주요 국가니까요.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을 아는 희망의 세대를 키워내는 게 반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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