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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지존 ‘후난 쌀국수’ 찾아 끝없는 젓가락질

1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의 시환청(西環城)로 북단에서 찍은 중국의 아침 풍경. 중국의 아침은 7시 이전부터 활기차다.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출근·등교하면서 함께 길거리 식당에서 만두와 전병, 국수와 같은 아침식사를 사 먹는다.2 허난성 난양(南陽)시의 한 국수가게에서 주인이 면발을 가지런히 뜯어내 펄펄 끓는 솥에 넣고 있다.3 허난성 전핑(鎭平) 부근 312번 국도변에 양고기가 마치 빨래처럼 걸려 있다.4 산시(陝西)성 상뤄(商洛)시 골목길에 있는 아침식사 노점. 다양한 양념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주문하면 바로 떠 준다.
중국여행을 자극한 동기 중 하나는 미국의 식단이었다. 대서양 연안에 바퀴를 담그고 출발해 10개 주를 가로질러 태평양에 입수할 때까지 카페라고 불리는 아침 식당을 수없이 들렀지만 기이하게도 메뉴가 똑같았다. 메뉴에서 당당히 한 줄씩 차지하고 있는 요리 이름이다.
계란 한 개
계란 두 개
계란 세 개
계란 네 개까지는 보지 못했다. 여기에 다양한 가짓수가 있는 양 '서니 사이드 업'이냐 '스크램블'이냐 하는 사소한 선택들이 있다. 그러고 나서는 치즈버거·비프버거·피시버거·에그샌드위치 등등 빵 두 조각으로 싸먹는 닮은꼴의 음식들이 잇따르고 마지막으로 오믈렛 메뉴가 있다. 항상 오믈렛만 먹었다. 짠맛과 단맛 이외의 맛은 이것뿐이었다. 점심 메뉴로 가면 여기에 스테이크류와 치킨 누들 수프가 추가된다. 뉴욕과 같은 도시는 예외로 하고 이 광대한 나라에 카페의 메뉴가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개성을 존중한다는 미국이 오히려 획일적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근데 벽촌에 중국식당이 있었다. 내가 창안한 법칙인데 인구 300명만 넘으면 그 촌락에는 반드시 중국식당이 하나씩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의 3대 패스트푸드 식당 전체를 합한 것보다 중국식당이 더 많다. 중국식당에서는 미국화된, 또는 국적 불명의 음식을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콤하거나 매운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중국을 횡단한다면 아침이 더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중국에서 음식이 입에 맞는지를 묻곤 했다. 기름을 너무 많이 쓰지 않느냐는 것. 우리는 끓이거나 삶지만 중국에서는 솥의 두꺼운 바닥을 뜨겁게 달군 뒤 기름을 넣고 볶거나 튀겨 먹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에는 삶고, 굽고, 찌고, 끓이고, 부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지방에 따라 주요리가 다를 뿐이다. 식칼을 쓰는 방법만 해도 수평으로, 사선으로, 수직으로, 밀고 당기고 썰고 흔들면서 재료를 거의 분자 수준으로 해체한다.

5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볶음면의 일종인 치란차오몐, 돌솥면의 일종인 사궈몐, 면발이 넓적한 후이몐.
그래서 칼이 중요한데 중국에서 요리기자로 활동한 젠류류는 저서 인민에게 봉사하라(Serve the People)에서 칼만 보고 요리사의 출신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검으로 협객의 유파를 아는 것과 같다. 상하이는 상어의 머리처럼 뾰족한 칼, 쓰촨(四川)은 종처럼 생긴 날, 광둥은 서양 칼처럼 좁고 날카롭고 긴 칼, 베이징은 공포영화에서 나올 법한 뭉툭하고 네모난 칼날을 쓴다. 허난에서는 베이징식 식칼을 많이 썼다. 양고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두툼하고 네모진 칼날이 필요한 것 같다.

과연 중국의 아침 식사는 훌륭했다. 내가 들른 중국은 아침을 일찍 시작, 오전 7시면 길거리에서 아침을 사 먹을 수 있다. 부부 모두 일하기 때문에 등교하는 아이와 길가에서 오순도순 아침 먹는 모습은 마치 야외 식탁을 차린 것처럼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아침 식사로는 죽과 콩우유인 더우장(豆漿), 밀가루를 길다랗게 반죽해서 튀겨낸 유탸오(油條), 우리는 보통 찐만두라고 부르는 바오쯔(包子), 찐만두인데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만터우(饅頭), 구운 빵 안에 숙주·계란 등을 넣은 사오빙(燒餠), 조를 쪄서 갈대 잎으로 싼 쭝쯔(<7CBD>子), 양고기탕에 구운 빵을 뜯어서 넣어 먹는 양러우파오모(羊肉泡<9943>)… 헤아릴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통칭해서 담대하게도 간단한 식사라는 뜻의 샤오츠(小吃)라고 부른다. 샤오츠 중에서 나의 탐구 대상은 국수다. 국수는 빨리 먹을 수 있고 국물도 있어 여행자의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달래준다. 무엇보다 15년 전 워싱턴에서 일하던 시절 프레스센터 2층에서 4달러50센트를 내고 사먹던 비프 누들 수프를 찾아내야 했다. ‘후난익스프레스’라고 하는 중국 패스트푸드점에서 팔던 그 쇠고기 쌀국수는 내게 중국 국수의 세계로의 초대권이자 잃어버린 사진의 원판 같은 것이다. 그 몇 년 뒤 프레스센터에 일부러 찾아갔지만 그 집은 없어졌다. 실제 후난(湖南)성 창사(長沙)까지 순례했지만 짠맛과 매운맛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그 감동은 재현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찾아내리라. 도착 첫날 저녁부터 상하이에서 란저우 쇠고기 국수(蘭州牛肉拉麵)를 골랐다. 서북지방인 간쑤(甘肅)성의 수도인 란저우에서 회족인 마바오쯔(馬保子)가 1915년에 처음 지금과 같은 국수를 만들어내 ‘그 냄새를 맡으면 말에서 내리고 그 맛을 알면 차를 세운다(聞香下馬, 知味停車)’라는 명성을 얻었다. 란저우 안에만 수천 개의 라몐(拉麵)집이 있고 중국 전역에 퍼지고 있는 중이다.

원래 후난의 쇠고기 국수도 청나라 옹정제 때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에 따라 후난으로 강제 이주된 회족의 일종인 신장 위구르족이 만든 것이다. 누들로드의 저자 이욱정 PD에 따르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국수는 바로 신장의 투르판 부근 화염산에서 발견된 2500년 전의 국수라고 한다. 신장은 그만큼 국수의 유서가 깊은 곳이다. 개토귀류 정책은 소수민족의 부족장을 중국의 내지로 보내고 중앙에서 임명한 관리를 파견, 서부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제 이주된 소수민족의 부족장과 그 가족들은 낯선 타향에서 국수를 먹으려고 하는데 밀이 없어 후난의 주식인 쌀을 썼다. 이후 현지화의 과정을 거쳐 원래 회족들이 먹는 맑은 국물이 아니라 걸쭉한 국물의 쌀국수로 재탄생했다.

란저우 국수는 맛도 맛이지만 위생적일 것 같다. 조리사들은 머리에 둥글거나 육각형 흰색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두건을 걸쳐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마치 전문적인 요리사 복장 같다. 돼지고기와 술에 손대지 않는 이슬람교도의 정결한 생활 태도 역시 맑은 국물로 표상되는 듯하다. 무엇보다 면을 만드는 과정 때문이다. 4 단계다. 깨끗하고 단백질 함유량이 많은 밀가루를 고르고(選麵), 물과 반죽할 때는 30도의 온도를 유지해 탄성과 신축성을 높이고(和麵), 30분 이상 숙성하고(醒麵), 찧고 주무르고 늘이고 내던지기를 되풀이하면서 면을 뽑아낸다(拉麵). 그 과정을 주방 안이 아니라 가게 입구에서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래도 나는 후난 국수처럼 걸쭉한 국물에 입맛이 당긴다. 장쑤(江蘇)성 전장(鎭江)에서 펄 벅의 옛집으로 올라가는 길 모퉁이의 허름한 국수집에서 무심코 면을 시켰다가 따뜻한 국물과 함께 상서로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이름은 솥뚜껑이라는 뜻의 궈가이몐(鍋蓋麵)으로 걸쭉한 후난 국수에 대한 일편단심을 흔들어놨다. ‘우연히 먹은 국수가 이 정도라면’ 하는 기대감으로 편안히 마지막 한 젓가락의 국수를 후르르 빨아들였다. 원래는 부주의하게 솥뚜껑을 솥에 빠뜨려서 끓여낸 면이라서 솥뚜껑 국수지만 지금은 더럽게(?) 솥뚜껑을 넣지는 않는다. 넣은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쇠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 넣은 뉴러우쓰(牛肉絲)면을 먹었다. 전장 특유의 간장을 써서 매운맛이 아니라 짭짤함을 기조로 하고 다진 마늘 등으로 시원한 맛을 낸다.

중국 국수의 작명은 계통적 과학 발전이 안 된 것처럼 무정부주의적이다. 면발의 굵기, 국수 뽑는 방법, 국수의 유래 등에 따라 제각각이다. 중국의 6대 국수 중에서 산시(山西)성의 다오샤오몐(刀削麵)은 각진 칼로 대패처럼 면을 잘랐다고, 베이징의 자장면은 춘장을 소스로 버무려서, 허난의 후이몐(<71F4>麵)은 걸쭉하게 끓인다고, 쓰촨의 단단몐(擔擔麵)은 행상들이 어깨에 메고 판 국수여서, 우한(武漢)의 러간몐(熱乾麵)은 한 번 익힌 국수를 식혀서 말린 뒤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고, 란저우의 라몐은 국수를 손으로 잡아 늘였다고 해서 각각 이름이 붙었다. 위의 6대 국수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고 산시(陝西)성의 짜오쯔몐(<566A>子麵)이나 광둥의 이푸몐(伊府麵)을 꼽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국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수가 모래솥이라는 뜻의 사궈몐(砂鍋麵)이다. 허난의 정저우(鄭州)에서 두 자매가 시작해서 퍼지고 있는데 나는 광산현의 2호점에서 시식할 기회를 잡았다. 매운맛이 강렬하고 중독성이 있다. 한국의 고추장처럼 달짝지근한 매운맛(甛辣)이 아니라 쓰고 시큼한 매운맛(酸辣)이었다.
맛 기행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에서 맛을 발견할 때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상하이에서 시안까지 가는 312번 국도는 남쪽으로는 쌀, 북쪽으로는 밀가루의 경작지대를 가르는 분계선이다. 이 국도는 내게 쌀과 밀가루의, 수없이 많은 국수를 체험할 수 있는 ‘누들로드’다. 아직 나의 ‘후난 쌀국수’는 못 찾았지만 그에 맞먹는, 영원히 잊지 못할 국수가 나타났다. 시안으로 가는 친링산맥의 한 산골에서였다.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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