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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작가가 들려준 무지막지한 시대의 아픔, 정말 소설 같은 일생

기획: 국립예술자료원 출판사: 수류산방 가격: 2만9000원
국립예술자료원이 기획한 ‘예술사 구술총서’의 다섯 번째 편이 나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와의 13시간 대담을 풀어낸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다. 2008년 7월 다섯 차례에 걸쳐 작가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이 책을 펼쳐 들면 그 꼼꼼한 구성이 우선 고맙다. 작가와의 대담은 책 오른편으로만 이어지고 왼편에는 관련 사건에 대한 해설, 연관 작품의 한 대목, 친분 있는 작가에 대한 소개 등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어 찬찬히 읽다 보면 한국 현대사가 입체적으로 정리된다.

작가의 구수한 입담은 가슴속을 파고든다. 전쟁에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에게 벌벌 기어야 했던 참담함, ‘숙명 우등상’으로 고이 간직하던 은수저를 전쟁 통에 먹을 것과 바꿔야 했던 아쉬움,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오빠에 대한 회한, 미군부대 PX에서 근무하며 느낀 이중적인 감정, 다섯 아이를 키우며 “발톱까지 100개를 깎아야 했”던 바쁜 주부 생활 등 진솔한 고백이 진국처럼 우러나온다.

그런 와중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글을 써야겠다는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전쟁 통에는 빨갱이다 이러면 뒤에서 쏴 죽여도 고만이에요. 무지막지한 시대였어요. (글쓰기는) 제가 정말 꽃다운 20세 나이에 그걸 겪으면서 속에서 품은 복수의 꿈이었어요. 내 이걸 글로 쓰리라. 언젠가는 이 상황을 증언하리라 하는.”
계기는 박수근 유작전이었다. 박수근 화백과는 PX 초상화부 근무 시절 얼굴을 익힌 사이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PX 같은 데서 저 같은 계집애한테 구박을 받으면서 죽을 기를 쓰고 싸구려 그림을 그려 갖고 가족을 부양한 박수근의 생애가, 그 시대를 못 견뎌서 모든 걸 포기하고 술에 절어 갖고 광기를 부린 이중섭 화백보다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그 유작전을 보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해서 뭔가 쓰고 싶어졌어요.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았다는 걸 내가 증언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흔에 쓴 첫 작품이 『나목』이었고 그에게 등단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당시 일간지 기자였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었으며, 처음 원고청탁을 했던 이가 소설가 이문구라는 식의 에피소드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글쓰기는 이십 년을 하든 삼십 년을 하든 숙련이 안 된다는 거, 그것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데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글에 대한 자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쓰려고 하는 어떤 혼돈이 형체를 얻으면서 가장 마땅한 표현을 얻었을 적에 내 속에서 일어나는 불꽃 같은 기쁨, 그것이 없는 글은 약속이라 해도 안 씁니다. 그것은 제가 글을 쓰는 최고의 기쁨이고, 그것이 또한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작가가 “기억만으로도 고통스럽다”고 해서 묻지 않았다는 것이 채록자 장미영 박사의 변이다. 생떼 같은 아들을 잃은 ‘참척(慘慽)’의 슬픔은 『나의 가장 나종지니인 것』(1993)으로 승화됐다. 마침 이 작품은 8월 24일부터 9월 23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배우 손숙의 동명 모노드라마로 진행 중이다. 적절한 보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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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