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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거 같고 그게 저거 같은 오! 디자인이여

지난해 여름, 쨍한 옷 한 벌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매장 직원이 따라붙었다. “손님, 이게 요즘 가장 잘나가요. 명품 XXX랑 똑같거든요.” 그는 초록-파랑-검정-흰색이 차례로 배열된 줄무늬 치마를 보여줬다. 번뇌에 빠졌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줄무늬 간격이나 컬러 순서는 다르니 짝퉁은 아니지 않으냐는 옹호론과 얕은 꼼수를 쓴 카피일 뿐이라는 반대론이 맘속에서 충돌했다.이번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보면서 새삼 그때 경험이 떠올랐다. 스마트폰 외관 디자인에 대한 애플의 주장 때문이었다. 애플 측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 한 개의 홈버튼(초기 화면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기능 버튼) ^옆면에 볼륨키 등 아이폰의 디자인을 삼성이 베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 법원은 삼성 편을 들었다. 반면 미국 법원은 전적으로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끝난 지금까지도 뒷말은 무성하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애플도 소니 디자인을 참고해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판결에 대해 말이 많은 건 ‘디자인’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발명·신기술의 여부가 기준이 되는 ‘특허’와 달리 시각적 특징을 따지는 ‘디자인권’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모양·색깔·무늬를 가지고 ‘하늘 아래 최초’인 것을 증명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같은 논리라면 패션 동네에서 디자인 베끼기 여부를 따지는 건 체력 낭비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프로엔자 슐러’의 경우도 그렇다. 대표 상품이나 다름없는 사첼백(왼쪽 사진)의 유사 제품이 SPA 매장에서까지 팔려 울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들 제품 역시 멀버리(영국 브랜드)의 알렉사백(오른쪽 사진)을 카피한 것”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또 캐나다 스포츠의류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도 캘빈 클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허리밴드 디자인이 특이한 요가 바지 디자인을 캘빈 클라인 측에서 도용했다는 주장을 폈다.

국내 경우엔 소송은커녕 속앓이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2년 전 최지형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철조망 프린트’는 인기를 끌자마자 동대문 시장에 쫙 깔렸다. 하지만 컬러나 크기 면에선 살짝 다르니 권리 주장이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패션업계의 변화다. 미국디자이너협회(CFDA)는 미국섬유신발협회(AAFA)와 손잡고 5년 전부터 ‘혁신적 디자인 보호 및 복제 방지법(Innovative Design Protection and Piracy Prevention Act)’ 통과를 추진 중이다. 디자인 출시 뒤 3년간은 권리를 보장해 줘 SPA 브랜드들의 도용을 막자는 취지다. 진행이 더뎌지자 CFDA는 지난해 ‘디자인 메니페스토’를 선포하고 포스터·천가방 등을 만들어 짝퉁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권리 확보에 나섰다. 임선옥은 2년 전 자신의 컬렉션 작품을 특허 출원했다. 고열 처리로 천 조각들이 이어지는 기술을 개발하며, 소재 특성상 바느질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커팅 두 번으로 끝나는 고유의 디자인까지 인정받았다.
통계수치도 달라졌다. 의류산업협회의 지적재산권 보호센터에 따르면 2009년만 해도 디자인 침해 관련 분쟁 건수가 전체의 10%도 안 됐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41%까지 늘어났다. 특허청이 발표한 디자인 등록건수도 지난 10년 새 3만6867건(2001년)에서 5만6524건(2011년)으로 급증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앞으로 패션계에서 디자인 관련 논란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물론 침해냐, 아니냐는 법정에서 가릴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소비자다. 시장에 쫙 깔리는 디자인, 한 번쯤 누구를 베낀 건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브랜드와 비슷한 디자인인 줄 알면서 혹하는 건 아니 될 말이다. 옷이나 가방은 아이폰·갤럭시처럼 선택의 수가 한정된 것도 아니지 않나. 차라리 검정 터틀넥 니트에 청바지를 고수한 스티브 잡스처럼 나만의 ‘특허 스타일’을 개발하면 어떨까. 패션은 얼마든지 재창조의 기회가 있다. 참고로 나는 줄무늬 치마 대신 반경 100m에서도 튈 만한 핫핑크 치마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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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