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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으로 직조되는 삶 우리 몸은 방직공장 같은 것”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그가 오랜만에 국내 전시를 한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의 개인전 ‘투 브리드(To Breathe·8월 29일~10월 10일)’와 광주비엔날레(9월 7일~11월 11일) 기획전 ‘라운드 테이블’을 위해 김수자(55)는 올가을 화단에 풍성한 작품 보따리를 펼쳐놓는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대표작 ‘뭄바이 : 빨래터’와 최신작 ‘실의 궤적’ 등 7편의 영상 작품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무성영상작품 ‘An Album: Hudson Guild’를 선보인다. 전시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심플한 검정 블라우스, 바지 차림에도 형형한 눈빛은 여전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An Album: Hudson Guild’(2009), single channel projection,sound, 31:39 min loop, Commissioned by More Art,New York, Courtesy of Kimsooja Studio
실(絲) 문화 인류학적 보고서 ‘실의 궤적’ 2부작
김수자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작업은 ‘보따리’ 시리즈다.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어릴 적 살던 여러 곳을 11일간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움직이는 도시들, 2727㎞’(1997)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돼 당시 세계 미술계의 화두였던 노마디즘과 연관되며 금세 주목을 받았다. 멕시코시티·도쿄·상하이·델리 등 세계 8대 대도시 한복판 군중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담아낸 ‘바늘 여인’(1999~2005) 시리즈 역시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바늘은 양면성이 있어요.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치유의 도구이기도 하죠.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제 작품이 치유의 세리머니가 되기를 항상 바라왔어요.”

김수자 :1957년 대구생. 홍익대 및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8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80년대부터 전통적인 천조각인 이불보를 사용해 이를 꿰매거나 덮거나 헌옷을 넣어 보따리를 싸고, 이를 수없이 많은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로 펼쳐보였다.뉴욕 현대미술관(2001), 리옹 현대미술관(2003∼2004),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크리스탈 팰리스(2008)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휘트니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국립현대미술관, 스위스 쿤스트 뮤지엄 베른,뒤셀도르프 K21, 도쿄 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실의 궤적’ 2부작을 선보인다. 페루·크로아티아·이탈리아·벨기에·체코 및 스페인 알함브라궁전 등을 찾아다니며 실과 관련된 문화를 다룬 인류학적 보고서다. 2002년 레이스로 유명한 벨기에의 중세 도시 브루주에서의 행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전체 6부로 기획됐는데 8년 만에 제작된 1부는 올 6월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의 ‘언리미티드’ 섹션에서 공개됐고, 2부는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찌르고 꿰매는’ 바느질이 ‘보듬어 싸는’ 보따리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지요. 실 작업은 이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전 작업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구체적인 삶, 몸의 욕망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1부 영상물의 마지막 장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가닥 실을 잣는 여인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진지하고 엄숙하다. 26분간의 상영물은 ‘운명의 실’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제의적인 진지함, 종교적 몰입에 도달하면서 끝이 난다. 그것은 단순한 생필품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삶의 매 순간에 대한 진정성과 경외감의 표현이다. 한순간만 놓쳐도 실도, 인생도 불감당으로 엉클어져 버린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을 잣고, 직물을 짜는 페루 여인들의 모습과 페루 코스코, 마추픽추, 타길레 섬 등의 풍광이 교차한다. 축제기간에 춤을 추는 여인들의 그림자는 길쭉한 실패를 닮았다. 페루 여인들이 짜는 직물들이 페루의 자연과 건축을 닮았듯이, 유럽 여인들이 짜는 레이스는 유럽의 자연과 건축을 닮았다. 고딕 성당의 천장 구조는 레이스를 뜨는 기구들이 내는 경쾌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도 닮아 있다. “자연 지형 - 건축 구조물 - 실의 문화가 서로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몸도 구멍이 있는 레이스 같잖아요. 결국 자연과 문화의 구조는 우리 몸의 구조와 닮아 있죠.”직물을 짜거나 레이스를 뜨는 행위는 자연-문명-개인의 운명 등이 씨실과 날실처럼 무수히 교차하면서 일종의 삶의 피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작품은 조곤조곤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다. 삶의 직조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린랜드에서 촬영한 ‘물의 거울, 공기의 거울, 바람의 거울’에서는 회화적 표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쿠바의 말레콘 해변에서 촬영한 ‘앨범 아바나’에서는 헛되이 사라지는 삶의 희미한 영상을 회화라는 불변의 틀에 담고자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뭄바이: 빨래터’는 인도 빈민가 뭄바이의 빨래터, 새벽 거리, 슬럼가 골목, 사람들이 기차 문에 짐짝처럼 매달려 가는 출퇴근길 풍경을 담은 4개의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는 작품이다. “2007년 시작된 작품입니다. 빨래터의 알록달록한 옷들이 시각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빈민가의 피폐한 리얼리티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죠.”

1 ?Thread Routes-Chapter 1…(2010), 16mm film transferred to HD format, 29:31, sound2 ‥Bottari-Alfa Beach,…(2001),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6:18 loop, silent3 ‥Mumbai: A Laundry Field…(2008), 4 channel video projection, 10:25 loop,sound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회화란 언제나 바라보는 관객을 상정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런데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이라는 작품은 어떤 이미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람객의 기대와는 달리 텅 빈 화면의 색이 서서히 변하는 것만을 보여준다. 당황하고 있는 순간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숨소리다. 숨소리 퍼포먼스 ‘방직 공장’이라는 작품이다. 서서히 화면의 색이 변해가는 9분 동안 숨소리는 점점 가빠져서 호흡이 멎을 듯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삶과 죽음이 한 호흡의 차이인 것이다. 예술에 대한 사유와 함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체험을 설정함으로써 예술은 더 진지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 몸이 하나의 방직공장과 같은 것이죠. 작품 자체가 나의 몸이 되어서 호흡을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관람객과 하나가 되어 호흡을 하게 되죠. 숨, 호흡에 의해서 우리의 삶은 계속 직조되는 게 아닐까요?”

사소한 것까지 감싸안는 ‘보따리 철학’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음양의 조화, 천지인 같은 몸에 밴 동양 철학과 서구 미술 담론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사고의 유연성, 삶의 다양한 측면들, 거기다가 피부에 바로 닿는 천의 친밀한 촉감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보따리의 철학’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보따리가 눈앞에 보여서 보따리가 아니라 자기 형태를 주장하기보다는 세상의 사소한 어느 것도 내치지 않고 두루두루 위무하듯 감싸안는 종합성의 철학이 보따리를 닮았다는 이야기다.
“동양철학은 자연스레 내 피에 들어있는 것이죠. 그러나 어떤 주의(ism)로 규정되는 것은 달갑지 않아요.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엮어나가서 어떤 종합성(totality) 같은 것에 도달하는 것을 원하죠.”

무언가를 이룬 사람은 나이를 넘어 아름답다. 단단한 내면의 힘이다. 인물 촬영을 하는 내내 그녀는 단단한 기둥처럼, 굳건한 바늘처럼 서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김수자는 자신의 보따리에 들어 있는 삶과 예술을 조금 풀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김수자의 세계는 깊고 넓다. 시선이 멀리 꽂히기 때문에 시야도 넓다. 그녀가 바라본 그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 이것이 이번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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