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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벗어나고 싶다" 강남 엄마들이 간 곳은

아이에게 최상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 비싼 학비도, 외로운 제주살이도 부모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은 제주 국제학교 중 하나인 NLCS 제주를 향해 달리고 있는 아이들.

국제학교 단지 내 유일한 주거지인 캐논스 빌리지.
#1. “대치맘으로 살기 싫었다.” 정모(42)씨가 입을 열었다. 아홉 살 딸을 둔 정씨는 지난해 9월아이를 제주 국제학교 중 하나인 KIS 제주에 입학시켰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서울에, 아이와 정씨는 제주에 살고 있다. 정씨는 대치맘(대치동 엄마)의 삶을 ‘대기인생’이라고 표현했다. “강남에선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9~13개 학원을 보내야 해요. 엄마는 계속 기다리는 거죠. 영어학원 끝나면 수학학원 데려다 주고, 끝나면 또 논술학원 보내고. 그런데도 항상 불안해요. 그곳엔 아이의 삶도, 엄마의 삶도 없어요.” 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치원부터 사교육에 치이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정씨는 결국 제주도를 선택했다.

 #2. 이모(36)씨의 아이는 ‘영재’다. 대치동 영어유치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교육 과정도 남보다 빨리 소화했다.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학업에 흥미를 잃었다. 학교는 수업시간 내내 ‘8-5=3’을 가르쳤고, 이미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가진 아이는 지루한 듯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 유창하던 영어도 자꾸만 둔해졌다. 질문도 줄었다. 학업 수준이 천차만별인 30여 명을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은 아이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할 여유가 없었다. 이씨는 “장애아나 예체능계 아이들 처럼 영재들을 위한 특수교육도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다는 NLCS 제주(노스런던칼리지잇스쿨 제주)에 아이를 보냈다.

 #3. “국제중에 못 가면 다 끝이다.” 열두 살 딸을 둔 김모(40)씨는 머리를 싸맸다. 영어유치원과 사립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가 국제중과 외고 코스를 밟지 못하면 여태껏 공부한 게 모두 헛것이 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아이와 함께해 주지 못하는 워킹맘이라 교육환경만큼은 최고로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국내에는 보내고 싶은 학교가 딱히 없었다. 왕따·빵셔틀·입시지옥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공교육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섰다. 고민 끝에 유학을 보내려던 김씨는 제주에 국제학교가 들어선다는 얘길 듣고 ‘이거다’ 싶었다. 10여 년간 다닌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둔 그는 올 10월 개교하는 BHA(브랭섬홀아시아)에 아이를 등록했다.

국내외 대학 모두 지원 가능

 초·중등학생을 둔 서울의 강남 엄마들이 학원과 사교육의 메카인 대치동을 버리고 제주도로 떠나고 있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설립된 NLCS 제주, BHA, KIS 제주 등 국제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이들 국제학교는 미국·영국·캐나다 등 해외 명문학교의 교육 과정과 교사를 그대로 가져온 분교(아시아 캠퍼스)다. 교사의 90% 이상이 외국인이고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정보는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빠르게 퍼졌다. 인터넷 카페 ‘강남엄마 vs 목동엄마’와 ‘상위 1%’ 등에 관련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제주 국제학교 학부모 모임’ 카페도 개설돼 활발한 정보공유가 이뤄졌다. 북미와 유럽의 선진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고 사교육이 필요 없다는 점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학교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골프·테니스·승마 등 다양한 체육·음악 활동이 가능해 이른바 ‘글로벌 리더’로 자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부모의 해외 발령 등으로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돌아오는 학생들에게도 국제학교는 좋은 대안이었다. 국내외 학력을 동시에 인정해 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졸업할 즈음엔 국내외 대학에 모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국제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대했던 커리큘럼과 다를 경우 언제든 국내 학교로 전학할 수도 있다. 해외 유학과 달리 같이 지내거나 주말마다 볼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장점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마트·병원 가려면 20분 차 타고 나가야

 엄마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제주로, 제주로 향했다. 실제로 국제학교 학생 10명 중 4명은 강남3구 출신이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NLCS 제주 전체 신입생 435명 중 내국인은 411명이었고 이 중 161명이 강남3구에서 왔다. 경기도의 부촌인 과천시와 성남시 분당구 출신도 45명으로, 이들이 내국인 입학생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제주 속 대치동’이라거나 ‘강남을 제주로 옮겼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에게 ‘국내 최상의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가 치르는 대가는 적지 않다. 예기치 못한 문제들도 속출했다. 학부모들이 말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비싼 학비. NLCS 제주의 기숙사비를 포함한 1년 학비는 4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고교생은 4700만원에 달한다. 비교적 저렴하다는 KIS 제주의 6~9학년도 연평균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을 통틀어 3400만원이나 된다. 10월 개교하는 BHA의 7~10학년 학비는 5300만원으로 책정됐다. 대학 등록금의 4~5배에 달한다. 두 아이를 NLCS 미들스쿨(중학교)에 보낼 경우 매년 학비만 8000만원 넘게 내는 셈이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위해 감당하겠다고 각오했지만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학비 분납기일 때마다 힘에 부치는 걸 느낀다”고 토로했다.

 현지 생활비도 만만찮다. 처음 부닥치는 벽은 바로 집. 제주 국제학교 단지 내 유일한 거주지인 캐논스 빌리지의 분양가격은 87㎡(27평형)에 1억8000만원 정도다. 학교와 가깝고 거의 대부분의 주민이 국제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란 장점이 있지만 이마저도 물량이 달린다. 또 단지 내에 편의시설이 전무해 병원이나 마트에 가려면 시내로 20여 분씩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기름값이 간단찮다.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은 학교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라온 프라이빗 타운을 선택한다. 119㎡(36평형)의 분양가가 4억2000만원인 이곳엔 국제학교 학부모 9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외제차 6~7대 없으면 라온엔 못 들어간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하는 5학년부터는 아이만 보내기도 하고, 양쪽 어디서도 집을 구하지 못하면 학교가 있는 서귀포시가 아닌 제주시 노형동 등에 터를 잡기도 한다. ‘캐논스파’도 ‘라온파’도 아닌 이른바 ‘노형동파’다. 학교와 거리가 멀어 통학이 힘든데도 국제학교 학부모들이 많이 찾아 이 일대의 주택 시세가 치솟기도 했다.

부유층 많아 상대적 박탈감 느끼기도

 그래도 학부모들을 위로하는 것은 아이들의 만족도다. NLCS 제주에 2학년(8세)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저학년은 예체능과 축제·체육대회 위주의 발산 교육을 많이 해 아이의 표현력이 부쩍 늘었다”며 “잘해야만 발표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은 뭐든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장려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1, 2학년이 어설픈 피아노 연주를 해도 고학년 선배들이 끝까지 듣고 박수를 쳐주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긴다고 했다. 방과후 활동도 다양해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한다고 한다. 8학년(14세) 자녀를 둔 학부모는 “아이가 웃음이 많아졌다. 예전엔 학원에서 휴대전화만 쳐다보더니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공부하고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휴대전화를 볼 시간도 없다고 하더라”며 뿌듯해 했다.

 반면에 ‘대치동 습관’을 버리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엄마들도 적잖다. 10개씩 학원을 다니던 아이가 국제학교에 들어가더니 너무 많이 논다는 걱정이다. 4학년(10세) 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방학 때 대치동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학원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힘들어 했지만 오히려 나는 마음이 편해지더라. 대치동 습관을 못 버렸나 보다”며 씁쓸히 웃었다. 학기 중에 기숙사 대신 제주시 학원을 몰래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한 학부모는 “엄마들이 ‘선행병’이 있어 학원을 못 끊는다”며 “특히 수학 학원이 인기”라고 귀띔했다. NLCS 제주와 BHA에 각각 아들과 딸을 보내려던 한 학부모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너무 많이 놀게 될 것 같아 고심 끝에 진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어학연수 개념으로 온 경우 기대와 달라 돌아가기도 하고, 국제중이나 외고를 상상하고 왔다가 자유로운 분위기가 낯설어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 장밋빛 환상만 가지고 무조건 내려온다고 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영어에 서툰 엄마들에게도 국제학교 학부모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학제가 외국식이고 성적표나 알림장·숙제 모두 영어로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상담을 신청할 수 있지만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에서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기다가 편의시설이 덜한 제주에 온 엄마들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한 학부모는 “아이만 바라보고 살려니 왠지 우울해진다”며 “마사지를 받고 골프를 치는 엄마들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부유층이 많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예기치 못한 고통을 준다. 한 학부모는 “학교 입학식이나 소집일엔 G20 정상회의를 하는 줄 알았다. 외제차가 곳곳에 즐비하고 애들은 버버리 등 명품옷을 입고 있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거나 문제가 생겨도 졸업 때까지 계속 같은 반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엘리트 교육에 국가서 재정지원” 반발도

 일각에선 국제학교를 두고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귀족학교”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정부가 국제학교 운영 적자를 보전해 주기로 하면서 “엘리트 교육을 받는 소수에게 국가에서 재정지원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NLCS 제주가 20여 년 동안 영국 본교에 로열티 등 612억원을 주기로 계약하고 다른 국제학교도 사정이 비슷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정원이 1000명 이상이지만 초기 단계인 지금 학생이 300~500명뿐이고 초기 시설비가 많이 들어 적자를 면키 어렵다는 점도 부각됐다. “사실상 내국인을 위한 고급 영어학원”이란 비아냥마저 나돈다.

 반면에 국제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아 기존의 설립 목적은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학부모는 “원래 국제학교가 외국유학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설립된 것 아니냐”며 “유학 비용이 해외에 유출되는 것보다 국제학교를 통해 국내 인재로 자라게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국제학교 측은 좀 더 두고 봐 달라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아직 설립 단계라 정착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좀 더 여유를 갖고 국제학교가 자리 잡는 모습을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9~10학년인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쯤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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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