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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만 무성애자 사랑할 줄 알아 … ‘성욕 과다’ 사회가 문제


‘성욕 과다(very sexualized)’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킬 책. ‘무성애(無性愛·Asexuality)의 아버지’로 꼽히는 앤서니 보개트 캐나다 브로크대 교수가 다음 달 신간 『무성애 이해(Understanding Asexuality)』를 낸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내린 평가다.

 인간의 성적 취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자나 여자를 좋아하는 게 하나다. 세밀하게 나눈다면 이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bisexual) 등이다. 그런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소싯적 읊어대는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와는 또 다른, 성적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 말이다. 그것이 무성애다.

 무성애는 이성애·동성애·양성애, 그 어느 것에 속하지 않는 ‘제4의 성적 지향’이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명 이상이 무성애자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년 남성들이 흔히 말하는 ‘욕구 저하’나 ‘기력 부족’ 등과는 다른 것일까. 보개트 교수를 e-메일로 만났다. 그는 의사 출신으로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브로크대에서 지역보건학과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 무성애 이론을 집대성한 사람으로 꼽힌다. 부인 역시 이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부부 교수’다. 학내에서는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인기 교수’로 통한다. 다음은 보개트 교수와의 일문일답.

●무성애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그동안 연구도 거의 되지 않은 분야 같다.

 “생소한 건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다. 이전에는 무성애를 장애(disorder)로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을 의사들이 임상 현장에서 ‘정신적 장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무성애자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자신이 무성애자로서 행복하고 삶에 만족한다면 장애로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을 폈다. 최근 몇 년 새 무성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무성애 커뮤니티 사이트인 에이븐(AVEN)에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무성애란 무엇인가. 무성애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있나.

 “간단히 말하면 ‘지속적인 성 충동의 결핍(enduring lack of sex drive)’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무성애자 커뮤니티인 AVEN은 무성애자를 ‘성적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someone who does not experience sexual attraction)’으로 정의한다. 그 특징으로는 ▶성적 매력을 주거나 느끼지 않고 ▶성적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며 ▶성적 파트너와 배타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점 등이 꼽힌다.

●무성애 인구는 실제로 얼마나 되나.

 “영국인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가 ‘나는 누구에게도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무성애자로 집계됐다. 영국 내 연구 결과지만, 유색인종이 백인에 비해 무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또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무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성애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도 생기나.

 “그건 나도 모른다. 유전적 요소가 작용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 외에 태아기 시절 작용하는 호르몬 등이 성 역할과 성적 지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요소도 중요하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연구 과제다.”

●자기애(自己愛·Narcissism)가 너무 강해서 무성애가 되지는 않을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성적인 끌림을 느끼기 때문에 무성애가 되는 경우다. 하지만 극히 드물다.”


●왜 무성애를 연구하게 됐나.

 “나는 원래 전통적인(traditional) 섹슈얼리티 연구자다. 게이 남성, 출생 순서와 행동 양태, 동성애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신체적 차이 등을 연구해 왔다. 게이와 이성애 남성 사이의 차이를 연구하던 중 ‘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연구는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4년부터 무성애 연구에 착수했다. 나 외에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로리 브로토 교수가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무성애 학자가 없는 것 같다.”

 보개트 교수는 ‘게이가 일반 남성보다 키가 조금 작다’ ‘게이와 비(非)게이(straight) 남성 사이에는 신체적인 차이가 있다’와 같은 성(性) 문제 가설을 세우고 연구해 왔다. 현재는 캐나다 자연과학·공학연구재단(NSERC)에서 21만 캐나다달러(약 2억4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출생 순위와 성적 지향은 면역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연구 중이다. 보개트 교수가 섹슈얼리티라는 광의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윌리엄 피셔 웨스턴온타리오대 심리학·산부인과학 교수의 대학원 조교로 공부하던 때였다. 브로크대 학보인 ‘브로크 뉴스’는 “(스승인) 피셔 교수가 제자들을 섹슈얼리티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했듯, 보개트 교수 역시 제자들을 성적인 이슈로 매혹시키기 일쑤였다”고 썼다.

●연구는 어떻게 하나. 무성애자들은 얼마나 자주 만나나.

 “연구는 통계나 대규모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대개 성 충동이 있는(sexual) 그룹과 무성애(asexual) 그룹을 나눠서 분석한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무성애자를 만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적인 관계다.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해서 연구에 활용하지는 않는다.”

●흔히 중년 갱년기에는 성욕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때때로 성욕이나 성 충동이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무성애자들은 기나긴 기간, 심지어 자신의 일생 내내 지속적으로 성 충동이 없는 상태를 겪는다는 점이 다르다.”

●무성애자에게는 사랑의 감정이 없나.

 “무성애자도 사랑의 감정이 있다. 다만 사랑의 감정이 성관계로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AVEN에서는 무성애의 발현을 ▶성욕은 느끼지만 상대방과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 ▶감정적으로는 끌리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성욕도 느끼고 감정적으로도 끌리지만 신체적인 성관계만 거부하는 경우 ▶성을 혐오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무성애는 포옹이나 악수 같은 친밀감에서 그칠 뿐 성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성애·동성애·양성애 등 기존의 성적 지향과 확실히 다르다.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는 “무성애자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관계 대신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아이를 갖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어떤 부인은 자신의 남성이 결혼 후 애까지 잘 낳고 나서 무성애임을 자각했다면서 고충을 호소한다. 가정의 화합을 위해 성적 지향을 바꿀 순 없을까.

 “사람의 성적 지향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 해도 (부인에게 성 충동을 느끼도록 하는 등) 성적 지향을 바꾸게 하는 게 윤리적인지는 별도로 논의해 봐야 한다.”

 보개트 교수는 침착하게 답하면서도 ‘무성애자도 사랑을 아느냐’ 같은 질문에는 기자의 편견이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두 차례의 인터뷰 동안 20여 개의 질문이 오갔지만 보개트 교수는 “좋은 질문(a good question)”이라는 단어를 딱 한 차례 사용했다. ‘무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질문에서였다. 그는 무관심→‘장애’로 인식→‘소수 성’으로 인식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를 설명했다.

 데일리메일의 지적대로 세계는 ‘성욕 과다 사회’다. 보개트 교수 스스로도 “과잉 성애화된 사회에서 무성애자나 무성애를 다루는 학자들이 고립감을 느낀다”고 토로할 정도다. 무성애 연구와 무성애자를 포용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아직은 멀어 보인다. 게이와 레즈비언 보호에 앞장서는 미국에서도 무성애자를 ‘보호해야 할 소수자(a protected class)’로 규정한 곳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아직 두 곳(버몬트·뉴욕)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개트 교수는 “무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다루는 이론적인 논문을 발표하며 생산적인 논쟁을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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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