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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자, 치우자 …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치여 산다


“정리정돈은 버리기부터 시작하라” “물건에 휘둘리지 마라” “물건은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가져야 한다.”

 요즘 ‘버리고, 또 버리라’는 메시지를 내세운 책이 인기다. 버림의 미학, 정리정돈의 기술이 집중 조명받고 있다. 옷장·서랍 수납 요령을 일러주는 것을 넘어서, 버리는 기술 자체를 삶의 태도와 연결해 설명하는 책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가 왜 버리고, 정리해야 하는지를 설득하고, 버리고 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강조한다.

 예컨대 정리의 중요성과 공간·시간 정리법을 소개한 『하루 15분 정리의 힘』(윤선현 지음)은 지난 3월 출간된 이래 베스트셀러 상위를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10만부 가량 판매됐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정리 전문 컨설턴트가 쓴 책이다.

 일본 정리 전문가들이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정리정돈의 습관』도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 30년 간 살아온 프랑스 저자가 쓴 『심플하게 산다』와 또 다른 일본 책인


『마흔 살의 정리법』(사카모카 요코 지음)도 선보였다. 이른바 ‘정리정돈 신드롬’이다.

 ◇시작은 ‘잡동사니’였다=예전에는 오로지 수납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 실용서가 주류였다. 그런데 정리의 개념이 라이프 스타일, 삶에 대한 신념에 대한 것으로 확장됐다. ‘버리기’를 단순한 청소로 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관점에서 결단해야 하는 행위, 나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올해 불어닥친 정리정돈 신드롬은 지난해 ‘잡동사니’의 고통을 응시한 책들(『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 『잡동사니의 역습』 『잡동사니 증후군』)이 줄줄이 나온 흐름과도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잡다한 물건에 둘러싸인 생활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높아진 정리 욕구, 왜?=일본에서는 지난해 정리 관련 책들이 큰 붐을 일으켰다. 최근 일본 저자들의 책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런 연유다.

 더난출판사 편집부 윤현주 과장은 “일본에서는 정리 관련 책 하나가 100만 부 넘게 팔리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잘 된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정리 관련 책들이 빠르게 나가고 있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정리정돈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가 높아졌고, 관련 책시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풀이다.

 그런데 왜 지금 ‘정리’가 독서시장의 키워드로 떠오른 것일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잡동사니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덜어보려는 노력, 즉 자아치유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신건강 전문의 윤대현 교수(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정리는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의식과 같은 것”이라며 “경쟁이 치열하고 삶이 분주해진 만큼 정리를 통해 정신적 긴장을 이완하고 좀더 자신의 삶을 성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버려야 하나=책들은 우리가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버림의 행복론』을 쓴 야마시타 히데코에 따르면,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사는 삶은 풍요로운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다. 구매를 부추기는 소비 환경에서 필요하지 않은데도 갖고 있는 물건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버리는 행위는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혼돈·무질서 상태의 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사소한 행위가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쓴 곤도 마리에는 “진짜 인생은 정리 후에 시작된다”고 했을 정도다. 선별해 버리고 남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버리기를 용기와 결단의 행위로 간주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버리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일 힘든 것은 버리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게 불필요한지 판단하는 일이다”고 했다. 욕심을 줄이고 버리는 일이야말로 강한 신념이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생활 공간에 대한 관심 반영=‘정리정돈 신드롬’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버리고 정리하는 것을 마음을 리셋하는 행위로 여긴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서 강조했던 정신을 일상생활에서 라이프 스타일로 변용하기 시작한 움직임으로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버리기’ ‘적게 소유하기’를 강조하지만 정리정돈 열풍은 정작 ‘무소유’와는 거리가 있다. 청빈함 대신에 아름다움과 품위, 디테일, 퀄리티 등 미학적 가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는 이런 흐름을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법’으로 해석했다. “고속 성장기에는 성취하는 것, 갖는 것, 채우는 것에 집중했지만, 사회가 안정되면서 고성장 시대에 돌아보지 못했던 부분, 틈새의 일상공간을 보살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젠 양보다 질, 적게 소유하면서도 더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얘기다.

 출판계 정리정돈 신드롬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정민경 YES24 콘텐트 팀장은 “정리 관련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비슷비슷한 책들이 쏟아져 나올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더 읽어볼 만한 책들

『단순하게 살아라』(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김영사)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캐런 킹스턴, 도솔)
『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브룩스 팔머, 초록물고기) 『마흔 살의 정리법』(사카오카 요코, 이아소)
『잡동사니의 역습』(랜디 O 프로스트 외, 윌북) 『잡동사니 증후군』(마이크 넬슨, 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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