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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탄 만삭女, 불룩한 배때문에 남편을…

22일 경남 하동군 한부규·띵티안이씨 부부가 스쿠터를 타고 농로를 달리고 있다. 띵티안이씨는 불룩한 배 때문에 남편을 꽉 잡지 못한다. 스쿠터·버스를 타고 1시간30분 만에 진주의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하동=박종근 기자]


지난해 출산율은 1.24명이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을 높이려 환경 개선에 연간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출산 인프라가 붕괴되고 있다. 전국 54개 시·군·구에 산부인과가 없어 2만 명의 임신부가 인접 시·군으로 가는 ‘출산 난민’ 신세다. 승용차가 없으면 만삭에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100리를 간다. 애 낳으러 가는 길이 고행길이다.



애 낳기 힘든 나라<상> 출산 난민 2만명
시외버스 갈아타고 고속도로 달려 … 하동에서 진주 왕복
‘출산 난민’ 시골 임신부의 병원길

“후득, 후드득~”



 지난 22일 경남 하동군 고전면에 사는 한부규(45)씨 동네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한씨는 마당으로 나와 빨간색 스쿠터가 비에 젖지 않도록 창고에 밀어 넣었다. 베트남 출신 부인 띵티안이(26)씨는 마루에서 딸 덕미(1)를 안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기를 안고 있는 배가 불룩했다. 11월에 세상에 나올 예정인 둘째 아이다.



 이날은 띵티안이씨가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 인근에 산부인과가 없어 한 달에 한 번 진주까지 나간다. 4월 16일 임신 진단을 받은 뒤 이번이 다섯 번째 진주행이다. 비가 오는 바람에 남편이 일을 쉬면서 이날은 진주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아내가 걱정돼 웬만하면 같이 간다. 이달 초에는 일 때문에 띵티안이씨가 혼자 갔다 왔다.



 한씨 부부는 2010년 4월 15일 결혼해 이듬해 덕미를 얻었다. 그리고 또 올해 둘째를 임신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무조건 진주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경남도청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이동 산부인과를 개설하면서 이번에는 병원 가는 횟수와 비용을 줄였다. 산부인과 공중보건의사를 태운 버스가 2주에 한 번씩 나오지만 간단한 초음파·소변검사 등만 가능하다. 22일은 띵티안이씨가 정밀검진을 받는 날이라 진주로 가야 한다.



 진주까지 나가려면 이웃 마을의 전도버스정류장까지 3㎞를 가야 한다. 한씨에게는 승용차가 없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스쿠터다. 비가 계속 오면 택시라도 불러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비가 몇 차례 쏟아지다 멈추기를 반복하다 다행히 잦아들었다. 한씨는 아내를 채근했다. 오전 11시 부부는 스쿠터에 올라탔다. 덕미가 할머니(67) 품에 안겨 손을 흔든다.



경남 하동의 임신부 띵티안이(오른쪽)씨가 진주행 버스에서 남편에게 기대 자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한씨가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자 띵티안이씨가 우산과 산모수첩을 들고 뒷좌석에 탔다. 띵티안이씨가 남편의 허리춤을 잡는다. 배가 불룩 나와 남편을 꽉 안을 수 없어 허리는 꼿꼿이 세웠다. 스쿠터는 논밭 사이 농로로 접어들었다. 좌우로 논이 지나간다. 띵티안이씨의 표정이 경쾌하지만은 않다. 콘크리트 포장길이긴 하지만 곳곳이 파여 있어 비포장이나 다름없다. 오르막·내리막길에서는 몸이 흔들린다. 스쿠터가 지방도에 오르자 차가 휙휙 지나간다. 그때마다 스쿠터가 위태롭게 보인다. 띵티안이씨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차가 지날 때마다 남편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멈췄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쓸 수도 없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15분 만에 전도정류장에 도착했다. 진주행 버스는 30분~한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다행히 20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한씨는 “운이 좋네”라며 웃었다. 이달 7일 띵티안이씨가 혼자 진주로 갈 때는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30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띵티안이씨는 “땀을 많이 흘렸다. 어지러웠다”고 했다.



 띵티안이씨는 조심스레 버스 계단을 올랐다. 평일인데도 제법 승객이 많았다. 부부는 어지럼을 덜 느끼도록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한씨는 아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의자의 각도를 맞췄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자 띵티안이씨는 산모수첩을 펼쳤다. 전날 이동 산부인과에서 찍은 아기 초음파 사진이었다. “이게 팔이에요”라며 어색한 한국어로 설명했다. 한씨는 마냥 싱글벙글 웃었다. 금오산(해발 849m) 자락을 넘어가며 버스는 자주 덜컹거렸다. 띵티안이씨는 “엉덩이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굽은 길을 지날 때는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약간 어지러웠다. 버스는 진교면에 한 번 더 정차한 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띵티안이씨는 힘든지 남편 어깨에 기대 눈을 붙였다. 안색이 창백했다.



 진주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30분. 하동 집에서부터 약 40㎞를 오는데 꼬박 1시간30분이 걸렸다. 병원은 정류소 맞은편에 있는 진주제일병원. 일부러 정류소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골랐다. 병원 점심시간(오후 1시)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아 부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편 한씨는 “시골에 사니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해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띵티안이씨는 “버스를 기다릴 때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제일 힘들다”고 했다. 부부는 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오후 2시가 넘어 하동행 버스에 올랐다.



중앙일보·인구보건복지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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