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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힐링으로 풀어보는 약주 기행① 강원도 술

요즘처럼 술이 불편한 존재가 된 적은 드물었다. 술 때문에 생기는 온갖 사회 문제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원래 술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음식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술을 빚을 때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솔잎 하나, 꽃잎 하나라도 더 넣어 정성껏 ‘약주’를 빚었다.

동강 문산 마을 산비탈에서 유기농으로 산머루를 재배하고 있는 동강산머루영농조합 김상경(49·강원도 영월군) 씨. [사진= 김수정 기자]

술은 약처럼, 적당히 쓰면 이롭지만 한꺼번에 쓰면 독이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술을 일러 ‘음식의 꽃’이라고도 표현하는 배경이다. 한편으로 술은 문화코드다. 한류의 흐름 속에 K팝이 있고K-Food가 있고 K-Sool(술)이 존재한다. 위스키나 와인·마오타이가 한 국가의 상징으로 행세하듯 한국 술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코드가 될 수 있다. 한국전통주진흥협회와 중앙일보는 한국의 술을 건강과 문화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우리술 맛과 멋’ 기행을 기획 연재한다. 첫 번째 주제는 ‘강원도의 술’이다.

강원도 술이 그리울 때 찾아가는 곳 중 하나는 강원도 영월의 ‘술샘’ 동네다. 이 술샘은 양반이 가면 청주가 나오고 상민이 가면 탁주가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옛날 청주를 맛보고 싶은 어느 상민이 양반 차림에 양반 걸음으로 술샘을 찾아갔는데 탁주가 나왔다. 화가 난 그는 술샘을 바위로 내쳐버렸다. 그 뒤로는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을까. 술샘이 있는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에 술샘박물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었다. 조만간 술샘 이야기를 담은 전설의 술맛을 보게 될 참이다.

 영월의 술로 머루와인 레드듀(Red Dew·사진)가 있다. 레드듀는 아침 이슬을 뜻한다. 이 술은 2011년 우리술품평회에서 과실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양조장은 영월 동강의 가장 깊숙한 마을인 문산2리에 있는데, 친환경을 추구해 황토방으로 지어졌다. 황토방 안으로 들어가니, 와인 제조에 필요한 장비가 알뜰하게 준비돼 있다. 11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동강산머루영농조합의 김상경 대표는 백합 구근을 심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양조 시설 규모는 머루 9000㎏을 가공할 수 있는데, 지난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 머루 800㎏을 술로 빚었다고 했다. 농사꾼이 농사지은 것만 내다 팔듯 농사지은 머루만으로 와인을 빚는 ‘마음 편한’ 양조장이었다. 김상경 대표는 연습 삼아 내놓은 술이 최우수상을 받았다며 겸손해했다. 그래도 상을 받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김 대표는 무농약 재배를 거쳐 전환기 유기농 단계로 접어든 산비탈 머루 밭으로 향했다. 술맛의 승부는 머루 농사에서 난다는 것이다.

 머루는 즙이 적어 생과로 소비되는 것보다 와인이나 음료로 소비되는 양이 많다. 머루는 비타민 C가 풍부해 피로 해소에 좋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하다. 노화방지와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김 대표가 따라준 레드듀를 맛보았더니 머루향이 단단하게 잡혀 있고, 머루 특유의 묵직한 맛에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진다. 동강의 거친 듯하면서 힘찬 기운을 빼 닮았다.

오미자, 더덕, 감초 등 약주에 들어가는 다양한 약재들.
다양한 곡물과 약재로 건강 효과 높인 ‘강원도 술’

2011년 우리술품평회에 입상한 술이 또 있다. 횡성군에 위치한 국순당의 ‘자연 담은 오미자 막걸리’다. 국순당은 강릉에 터를 잡았다. 1988년 이곳에서 양조업을 하면서 흑주를 생산했는데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 왔다가 2004년 다시 강원도(횡성)로 회귀했다. 2009년 막걸리 바람이 분 이래로 가장 공격적으로 막걸리 시장을 파고든 양조장이 국순당이다. 종류도 햅쌀 막걸리, 인삼 막걸리, 더덕 막걸리, 샴페인 막걸리, 옛날 막걸리, 아이스 막걸리, 고급 탁주인 이화주 등 12종에 이른다. 인삼막걸리 미몽은 2010년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국순당 횡성공장의 2층에 올라가 보니 시음장과 전시장이 갖춰져 있다. 양조장 견학 통로를 따라 제조도구와 술병들이 전시돼 있어 한눈에 양조 과정과 역사를 살필 수 있다. 국순당 고봉환 홍보팀장은 “술 빚기에 쓰이는 약재는 주로 강원도산을 사용한다”고 했다. 시음장에서 맛본 오미자 막걸리는 병에 담겨 있어 특색이 있고, 연홍색이 돌아 예쁘장하니 고왔다. 오미자의 신맛이 엷게 느껴지고, 살균 막걸리임에도 맛이 튀지 않아 가지런하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오미자는 눈을 밝게 하고, 기침과 천식을 다스리고, 여름철 땀을 많이 흘려 탈수 증상이 날 때 널리 쓰인다. 주로 차로 마시지만 요즘엔 술로 빚어져 주목을 받는다.

 강원도에서 술맛 나는 최고의 풍류 공간은 강릉 경포대다. 이곳에 올라 술잔을 기울였던 이들은 하늘·바다·호수·술잔에서 달을 보고 마음속 달까지 보았다고 한다. 경포대 인근에 자리 잡은 창령 조씨 집안의 서지초가뜰(조씨 집안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송죽두견주가 있고, 전주 이씨 집안의 선교장에는 연엽주가 있다. 강릉 바닷가 사천 과즐 마을에는 방풍 잎을 넣어 전통 방식으로 빚는 방풍 막걸리가 있다. 강릉 단오제가 열리는 늦봄에는 단오신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 인기에 힘입어 사회적 기업인 단오문화사업단에서는 단오신주를 강릉 양조장들의 공동브랜드로 확장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강원도 술의 개성은 다양한 잡곡과 약재에서 생겨난다. 그중 특색 있는 것은 엿기름이다. 엿기름은 소화를 돕고 위를 데워주며 입맛을 돋워준다. 엿기름을 달여 마시면 몸이 가뿐해지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우리 술에는 당화 보조제로 엿기름이 간혹 사용되는데, 강원도에서는 딱딱한 곡물, 특히 옥수수를 삭힐 때 엿기름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술을 빚을 때도 엿기름을 흔하게 사용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강원도에서 맛보는 막걸리나 약주에서는 엿기름에서 나오는 달달한 맛과 엿기름의 싹에서 나는 풋내가 곧잘 올라온다. 엿기름을 재료로 명성을 얻은 술이 맥주다. 맥주처럼 대중으로부터 폭넓게 사랑 받는 강원도 술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릴 즈음에는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허시명 작가

허시명 작가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우리 술 교육훈련기관인 ‘막걸리 학교’ 교장,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삼청동 입구에 자리한 ‘막걸리 학교’에서 막걸리 인문학 강좌, 주안상이 함께 나오는 한국 명주 강좌, 술 빚기 실습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막걸리, 넌 누구냐?』 『술의 여행』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 등이 있다

2012 술 품평회=한국 술의 진흥과 명품화 작업의 일환으로 농식품부가 주관해 2007년부터 시작한 경진대회와 축제의 장이다. 올해도 10월 넷째주 목요일부터 4일동안 진행된다.

술 건강 효과는

홍천 옥선주 1995년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됐고 전국 술품평회에서 두 번이나 입상했다. 멥쌀·옥수수·엿기름·당귀·칡이 들어간 40% 증류주다. 임금님께 진상까지 했다는 약소주다.

오가자주 오가피의 학명은 아칸토파낙스다. 파낙스는 만병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오가피의 뿌리와 가지의 껍질을 장복하면 몸을 가볍게 한다 해서 축구 선수들이 음료로 즐기기도 했다. 오가자 술은 오가피 열매를 발효시켜 만든 독특한 술이다.

방풍 막걸리 방풍잎은 풍을 막아준다는 약초다. 강릉사람 허균의 『도문대작』에 방풍죽의 맛이 좋아 3일이 지나도 입안에서 가실 줄 모른다고 했다. 동해안 모래사장에 자생하고 사찰음식으로도 쓰였다. 방풍 막걸리는 고두밥을 찔 때 방풍잎을 함께 넣어 빚는다.

강원도 대표술

① 영월 머루와인 레드듀/ 동강산머루영농조합 011-445-1876
② 영월 더덕술/ 영월더덕영농조합법인 033-372-1885
③ 정선 오가자주/ 국순당정선명주 033-563-5603
④ 횡성 오미자 막걸리/ 국순당 033-340-4300
⑤ 강릉 방풍막걸리/ 방풍도가 033-647-0677
⑥ 강릉 단오신주/ 강릉탁주공동제조장 010-3323-5647
⑦ 평창 감자술 서주/ 오대서주양조 033-335-7609
⑧ 삼척 귀리술/ 삼척 전통주 연구회 011-9879-6119
⑨ 삼척 너와마을 머루와인/ 너와마을 영농조합법인 033-552-3560
⑩ 양양 송이동동주/ 양양 민속도가 033-673-3015
⑪ 양구 송이주/ 솔래원 033-482-8000
⑫ 홍천 옥선주/ 옥선주조 033-433-5910
⑬ 춘천 왕수 막걸리/ 춘천양조장 033-262-4807
⑭ 화천 블루베리와인/ 채향원 010-9366-2527

‘나만의 차례주’ 직접 빚어 보세요

중앙일보 주관으로 추석맞이 ‘차례주 빚기’ 체험행사를 엽니다. 전통 누룩과 고두밥으로 나만의 차례주를 빚고 싶은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술을 빚은 뒤 직접 만든 술 3L를 가져가며, 시판되는 다양한 차례주를 시음하며 평가합니다. 참여한 분들께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만든 ‘달잔(막걸리 잔)’을 드립니다.

일시 2012년 9월 14일(금요일) 저녁 7~10시

행사 내용 차례주 빚기, 다양한 차례주 시음회, ‘제주(제사에 뜨이는 술)’에 담긴 뜻 특강(‘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 등

참가 인원 30명(선착순)

장소 막걸리학교(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4<사간동 126-6번지> 3층)

참가비 3만원(재료비)

참가 신청 참가를 원하는 독자는 (eunkyung@joongang.co.kr)로 이름, 연락처, 참가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개별 연락을 통해 참가 여부를 알려 드립니다.

※허시명의 ‘힐링으로 풀어보는 약주 기행’ 기사의 자세한 내용과 사진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서 제작하는 디지털 매거진 ‘THE HEALTH(더 헬스)’ 9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KT올레매거진을 다운로드 받으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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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