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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인 줄 알았는데, 온몸이 시커멓게 썩어…

지난 16일 오후 7시쯤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두 청년이 만났다. 7월에 이은 두 번째 대면이다. 반가웠는지 이정준(25·광주광역시)씨가 이동한(27·전북 전주)씨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동한씨가 볼멘소리를 한다. “그럼 내가 동생 같잖아.” 정준씨가 응수했다. “형은 팔이 없어서 어깨에 팔을 못 올리잖아.” 두 사람이 파안대소했다. 실은 정준씨도 손이 성치 않다. 열 손가락 모두 한 마디도 없는 뭉치 손이다. 두 청년은 양쪽 다리도 절단했다. 동한씨는 전동휠체어가 발이다. 정준씨는 의족을 찼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란 병이 남긴 ‘흔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두 청년의 만남은 운명일까. 이들 둘 모두 12월 31일 발병했다. 사형선고를 받으며 새해를 시작한 셈이다. 사지에서 빠져나와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딘 두 청년의 사연을 소개한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에 걸려 팔·다리를 절단한 이동한(오른쪽)·이정준 씨.
빠르게 진행 돼 7명 중 1명 사망

이동한씨는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였다. 포지션은 윙백. 고1이던 2002년 12월 31일 합숙소에 있었다. 낮잠이 들었다. 갑자기 오한과 열이 찾아왔다. 감기로 여겨 약을 먹었다. 그대로 의식을 잃고 4일 후 눈을 떴다.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동한씨는 “팔다리에 감각이 없고, 피부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2003년 중3이었던 이정준씨. 12월 31일 친구들과 PC방에 다녀온 후 열이 났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 있던 1.5L 물 세 통을 마셨다. 구토와 설사가 이어졌다.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실려갔다. 정준씨는 “집에 언제 가냐”고 물은 뒤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후 충격에 빠졌다. 이마를 빼고 온몸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정준씨는 “병실 바닥에 살점이 뚝뚝 떨어졌다. 콧등도 날아가고 입 천장이 뻥 뚫렸다. 미라 같았다”고 기억했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잠깐 잠든 사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찾아왔다. 두 사람의 병명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수막구균이 뇌와 척수, 그리고 뇌와 척수를 둘러싼 막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세균이 혈관에 파고드는 패혈증이 같이 발생한다. 뇌가 손상되고 팔다리를 중심으로 피부가 점차 썩어들어간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는 “발병 시기를 예측할 수 없고, 굉장히 빠르게 진행돼 7명 중 1명이 사망한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방치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사지 절단, 그리고 바뀐 인생

점차 썩는 피부를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전신의 피부 밑에 소독한 거즈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썩은 부위를 뜯어냈다. 한 번에 두 시간이 걸리는 소독을 하루 세 번 받았다. 동한씨는 “거즈에 살점이 붙어 떨어질 때 할 수 있는 건 비명뿐”이라고 말했다. 정준씨는 체중이 30㎏으로 줄고, 링거가 7개로 늘었다. 그는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인공호흡기를 직접 떼기도 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한 달 반 동안 이어졌다. 의료진은 살려면 사지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신체 내부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심장에서 먼 팔과 다리에 혈액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썩어들어간다. 의료진도, 가족도 수술 후 깨어날지 확신하지 못했다. 수술실을 나온 두 학생은 눈을 떴다. 하지만 멀쩡했던 팔과 다리를 잃었다. 동한씨의 두 다리는 허벅지만 있다. 오른쪽 팔은 어깨 밑으로 없고, 왼쪽 팔은 팔꿈치까지 살려 의수를 했다. 정준씨는 양쪽 다리 무릎 밑이 의족이다. 양손 손가락은 모두 한 마디 정도만 남았다. 신체 곳곳에는 썩어 들어간 흉터가 남았다.

 입원 6개월 뒤 퇴원했다. 하지만 진짜 절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정준씨는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하며 피했다.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고 떠올렸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1년간 집에만 있었다. 동한씨는 “무력해진 나를 보며 매 순간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유일한 친구였고, 점차 세상과 멀어졌다.

인생의 두 번째 발걸음 내딛다

캄캄하고 긴 터널에 갇혀 있을 줄 알았다. 인생의 멘토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정준씨는 의족을 맞추러 갔다 우연히 40대 아저씨를 만났다. 양쪽 다리가 없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저씨는 유쾌했고, 사회생활을 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반년간 수천 번 넘어지며 의족으로 걸을 수 있게 됐다. 내친김에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해 운전을 시작했다.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해 수시 입학에 합격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민연금공단 광주지사에서 청년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힘든 이들을 돕고 싶었다. 대학생 땐 200시간 넘게 봉사활동을 했다. 직장 동료는 정준씨의 타자 실력에 놀란다. 뭉치 손으로 한글 500타, 영문 300타를 친다. 그는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 컴퓨터만 끼고 산 결과”라며 웃었다.

 동한씨에게 빛을 준 멘토는 책이다. 만화책, 공상과학·판타지·무협소설···. 외로움을 달래려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20세에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해 23세 때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동한씨는 “내 손으로 쓴 글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졸업반인 그는 순수문학을 하고 싶다. 우선 시인으로 등단할 계획이다. 그는 틈만 나면 왼팔 의수로 시를 쓴다. 한 청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인 동한씨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

 두 사람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만났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수막구균성뇌수막염센터에서 질병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두 사람이 헤어질 시간. 정준씨가 물었다. “형, 어떻게 (집에) 갈 거야.” 휠체어를 탄 동한씨가 답했다. “응, 걸어서.” 두 청년은 세상을 향해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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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