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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 문워커 암스트롱 하늘나라 최후 비행 떠나다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사진①)은 최초로 달에 착륙한 인간이었다. 1969년 7월 20일 그가 달에 남긴 ‘작은 발자국’(사진②)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 됐다. 암스트롱이 동료 버즈 올드린과 함께 성조기를 달에 꽂은 순간(사진③) . [사진 NASA]

밤하늘의 달을 보면서 낭만에 젖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저 달에 내가 다녀왔지’ 하고 추억할 수 있는 이는 인류 역사상 12명(생존자 8명)뿐이다.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2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82세.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 호를 타고 ‘고요의 바다’에 내린 지 43년 만이다. AP통신 등은 그가 심장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유족의 말을 전했다.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 인류 전체의 큰 도약(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첫 문워커(moonwalker)의 소감은 TV로 지켜보던 5억 인구를 전율케 했다. 특히 냉전시대 소련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 발사에 자극받았던 미국은 “이로써 하늘은 인간세계의 일부가 됐다”(리처드 닉슨 대통령)라며 열광했다. 암스트롱과 동료 버즈 올드린이 달에 머문 것은 총 2시간31분. 아폴로 11호가 왕복 195시간의 장정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 이들의 삶은 전과 같을 수 없었다. 국가 전역에서 환영 퍼레이드가 열렸고, 여야 정치권의 구애가 이어졌다. 암스트롱의 나이 38세였다.

 “지구상 누구보다 내성적인 편”(동료 올드린)이었던 암스트롱은 지상에서 붕 뜨는 것을 원치 않았다. “동료들이 나를 특별한 사람처럼 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2005년 전기 『퍼스트 맨』)고 했다. 암스트롱은 달에서 귀환한 뒤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내근했고 이후 신시내티대 교수로 갔다.
 
2009년 7월 20일 달 착륙 40주년 기념행사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한 암스트롱(왼쪽).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대중의 열광은 끈질겼다. 암스트롱이 해준 사인이 경매에서 거액에 팔리고 이를 이용한 사기 행각마저 벌어지자 1994년 이후엔 사인을 중단해야 했다. 20년 지기 단골 이발사가 그의 머리카락을 3000달러에 팔아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달 착륙 소감 ‘One small step’을 상업용 성탄절 카드에 무단 사용한 기업에도 소송을 냈다. 여기서 받은 거액 배상금은 우주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외골수 공학자’를 자처한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유명세였다. 94년엔 38년간 함께했던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암스트롱은 1930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퍼듀대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하던 중 해군에 입대했다. 전투조종사로 복무하면서 한국전에도 참전해 78차례 출격하기도 했다. 62년 NASA의 제2기 우주비행사로 선발돼 66년 ‘제미니 8호’의 지휘조종사로 첫 우주비행을 했다. 아폴로 11호는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달 나들이였다.

 말년에 은둔하다시피 살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을 때다. 연방정부 재정적자로 인해 유인우주선 사업을 민간에 넘기게 되자 암스트롱은 의회에 출석해 비판 성명을 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타계 소식에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영웅 중 한 명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본다는 것은 신의 눈으로 지구를 보는 것이다.”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은 우주 체험의 특별함을 이렇게 말했다(다치바나 다카시 『우주로부터의 귀환』). 최초의 문워커로서 암스트롱은 정치인이나 사업가로 화려하게 살 수도 있었다. 때로 그 특별함을 못 이겨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이(버즈 올드린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평생 평범한 지구인의 삶을 추구했다. “우주선 안에서 조종간을 붙잡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던 때의 흥분이 가끔 그립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암스트롱의 위대함은 달에 남긴 발자국뿐 아니라 평생 겸손하려 한 인간다움에도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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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