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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 女論] 최초 여성 경제학사, 선정적 염문 속에 28세로 요절하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31년 11월 최영숙(崔英淑)은 ‘금의환향’했다. 근 10년 만의 귀국이었다. 여주에서 포목상을 하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923년 이화여고보를 졸업한 뒤 중국 회문여자중학교로 유학을 떠났었다. 중국 유학 시절 그녀는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고 당시 조선의 여성해방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여성운동가 엘렌 케이의 사상에 심취했다. 1926년 그녀가 스웨덴으로 다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한 것도 그곳이 엘렌 케이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유학 시절 최영숙은 부친의 사업 실패 때문에 고학(苦學)을 해야 했다. 학비 조달을 위해 자수(刺繡), 황실 도서관 연구보조, 신문 기고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스톡홀름대에 입학해 조선 여성 최초로 1930년 경제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눈에 띄는 점은 그녀가 ‘실천적 삶’이라는 문제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학 생활에서 “수업이란 것이 오직 서적을 읽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지적 생의 싸움을 실험하는 데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직접 체험하고 실행하는 삶을 다짐했다.

 이러한 그녀의 결심은 이후 그녀의 행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세계 20여 개국을 여행하며 그곳의 사회와 조직에 대해 공부했다. 스웨덴에 있을 때도 강연회에서 자신에게 깊은 감화를 준 여성운동가(실비아 팽크허스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와 강연 후 달려가 담화를 하고,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 사로지니 나이두 등의 명사들을 직접 만나러 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 사회의 “급무인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 전공을 살려보려 했던 그녀의 꿈은 귀국 직후 산산이 부서졌다. 그녀는 몰락한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조선 사회에는 아직 그녀처럼 초엘리트 여성을 수용해줄 만한 영역도 부족했다.

 더구나 그녀가 홀로 임신한 채 귀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학식이나 능력보다는 아이 아버지가 인도 청년이라는 사실에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가 사산(死産)과 영양결핍의 후유증으로 귀국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28세로 요절했을 때도 언론은 그녀의 애인이 순수 인도인이었나, 조선인 혼혈이었나, 정식 결혼을 한 사이인가, 사생아를 가진 것인가 등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그렇게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의 재능과 열정은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선정적인 염문 속에 시들고 말았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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