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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MB의 망가진 외교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서울을 방문 중이던 북한 대표가 필자에게 만나자고 연락해온 것은 대선이 코앞에 닥친 2007년 12월 1일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담에서 그가 궁금해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며 그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필자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을 것”이고, “기업 CEO 출신 정치인인 만큼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테지만, “북측 하기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특히 예전처럼 인수위 기간이나 정부 출범 초기에 대남 비방만 일삼지 말고 대화채널을 모색해 보라고도 일러 주었다.

 출범 이후 이명박(MB) 정부의 대북정책은 경직된 원칙과 ‘북한 붕괴’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 무모한 기다림이 전부였다. 남북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조문사절단의 일원으로 다시 서울을 찾은 북측 인사는 필자에게 넌지시 불평을 건넸다. “문 선생이 틀렸네요. 실용주의가 없네요.” 필자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첫 사례였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5월 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합의했다. 한·중 관계의 격을 높이는 놀라운 외교적 업적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필자는 양국관계의 미래를 매우 낙관했지만, 그 역시 실패한 예측으로 판명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나라 지도자 사이의 교감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논할 정도로 긴밀하다는 청와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천안함 피폭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교전’으로 인식했다. 대북 경제제재는 중국의 비협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반면 북·중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리창춘(李長春)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조·중 우호증진은 전략적 선택”이라고까지 말했다. 한·미·일 3국 공조 강화에 대응해 중국이 꺼내 들었던 이 발언은 분명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선언을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는 일본이었다. MB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는 아예 ‘민주동맹’으로 격상해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토대를 구체화하자는 이야기까지 거론됐을 정도로 긴밀했다. 한·일 정보보호협정과 군수지원협정 체결은 국내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미뤄졌지만 한·일 안보협력과 미국을 포함한 군사공조 모색이 현 정부 대일정책의 골간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나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이전 같지 않다”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같은 강경발언을 예상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이제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문자 그대로 외교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하겠다고 통보하고 ‘보복조치’까지 언급한 지금 그 결과를 점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남은 건 미국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MB정부의 ‘한·미동맹 우선주의’는 흔들릴 리 없는 절대적 기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마저 장담해도 좋을지 슬슬 의심스럽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전략’을 위해서는 한·미·일 군사공조가 필수적이나 한·일 간의 안보협력 협정들이 여론에 밀려 좌초한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차세대 전투기(FX) 사업까지 미국 뜻대로 되지 않거나 평택 미군기지 건설에 차질이 생긴다면, 혹은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나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청와대가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실망한’ 워싱턴의 반응이 동맹의 견고함을 흔들게 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외교가 치밀한 전략과 계산에 의거한 ‘회심의 한 수’였다면 필자는 오히려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내 예상이 틀린 것이야 뭐 그리 대수겠는가. 외교에도 때에 따라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고 기민한 행동으로 국가이익을 관철하는 길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일련의 사태발전이 정교하게 설계된 로드맵에 따라 불거진 파열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건 그냥, 어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된 듯 보이는 파국이다. 우리와 명운을 나누는 주변국 모두와 각을 세우는 외교, 이건 아니다 싶다.

 대선이 넉 달도 남지 않았다. 누가 승리하든 다음 대통령이 얻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상대와 국민을 섣불리 놀라지 않게 하는 외교, 냉철한 사고와 분석을 통해 후속결과를 가늠하고 이뤄지는 행동의 중요성이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국가의 백년대계가 탄탄해지기 때문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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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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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