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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84) 쑨원


▲1913년 3월, 일본에 체류하던 쑨원(앞줄 가운데)과 함께 오사카(大阪)의 일본인 친지들을 방문한 쑹자수(앞줄 왼쪽 첫째).   [사진 김명호]

1894년 1월 말, 광저우의 동서약국(東西藥局) 진료소는 한바탕 난리를 떨었다. “의사 쑨원(孫文·손문)이 돈을 들고 잠적했다.” 회계직원은 홍콩에 있는 천샤오바이(陳少白·진소백)에게 급전을 보냈다. “유동자금이 한 푼도 없다. 당장 살길이 막연하다.” 천샤오바이는 쑨원과 홍콩 의과대학(西醫書院) 동기로 동서약국의 동업자였다.홍콩에서 동지들을 규합 중이던 천샤오바이는 광저우로 달려갔다. 쑨원이 갈 만한 곳을 이 잡듯이 뒤졌다. 종적이 묘연했다.다들 저세상으로 갔다고 여길 즈음 쑨원이 나타났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종이 몇 장을 천샤오바이에게 건넸다. “고향 집에 가 있었다. 방문 닫아 걸고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이홍장)에게 보낼 건의서를 작성했다. 네가 품위 있게 다듬어봐라.”

고전 실력이 뛰어났던 천샤오바이는 8000여 자에 달하는 ‘上李鴻章書’를 한 자도 건드리지 않았다. 천하명문이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서방 자산계급을 본받아야 한다. 선진 과학기술을 도입해 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고, 공상업을 봉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인재 양성은 국가지도자의 의무다. 국가의 독립과 부강을 위해, 교육과 인재 선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부강과 치국의 근본은 별게 아니다. 사람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땅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며, 물건이 쓰임새를 다하고, 재물의 소통이 원활하면 된다.” 천샤오바이 25세, 쑨원 28세 때였다. 두 사람은 의사 가운과 청진기를 아궁이 속에 집어 던졌다. 옆에 있던 약국 직원들이 잘들 논다며 한심한 표정 짓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쑨원은 루하오둥(陸皓東·육호동)과 함께 리훙장이 있는 톈진으로 향했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다. 리훙장은 시골 청년들을 만날 겨를이 없었다. 쑨원은 “‘리훙장이야말로 중국의 비스마르크’라고 열을 올리던 의과대학 선생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혁명을 결심했다.

광저우로 돌아오던 쑨원은 상하이에서 루하오둥의 소개로 쑹자수(宋嘉樹·송가수)를 만났다.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름이었다.
부두에서 기다리던 쑹자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인 줄 몰랐다”며 쑨원을 끌어안았다. 익숙지 않은 행동에 쑨원은 당황했다. 어색한 농담이 나왔다. “중국인이지만 꼭 서양귀신(洋鬼子) 같다.” 쑹자수는 움찔했다. 전형적인 중국 서생(書生)의 눈빛에 기가 질렸다. 6년 후 의화단의 난이 발생했을 때 쑨원의 첫인상을 미국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거리에 나갔다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젊은 의화단 지도자와 마주쳤다. 그 눈빛이 몇 년 전 쑨원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았다.”


쑨원을 집으로 안내하던 쑹자수는 보인문사(輔仁文社)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보인문사는 쑨원이 2년 전에 조직한 홍콩 최초의 혁명단체였다. “내가 태평천국 지도자 홍슈촨처럼 왕을 칭하겠다고 하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치고받은 적도 있다”고 하자 쑹자수가 웃으며 말했다. “조심해라, 우리 사이에도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집 문 앞에 오자 쑹자수가 쑨원을 가로막았다. “제2의 홍슈촨이 되려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중국의 링컨이 되겠다면 환영하겠다.” 쑨원은 “낙하산을 타고 들어가겠다”고 응수했다.
쑨원의 행적을 들은 쑹자수는 면박을 줬다. “청원서 따위로 될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중국은 워싱턴이나 링컨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쑨원도 공감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의 워싱턴이나 링컨을 찾아 나서겠다.” 쑹자수가 언성을 높였다. “네가 해라. 제2의 홍슈촨이 되겠다는 사람이 제2의 워싱턴이나 링컨이 못 될 이유가 없다.” 쑨원은 말이 막혔다. 하와이의 형 집에 가 있는 동안 링컨의 이름은 들었어도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날 밤, 쑹자수는 3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링컨의 이야기를 쑨원에게 들려줬다.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쑨원은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생각하면 할수록 희한한 말이었다. “민족, 민권, 민생”. 삼민주의(三民主義)의 종자가 뇌리에 박히는 밤이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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