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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분화구에 제 이름 남긴 후한 때 천재 과학자 기려

후한 시대 과학자 장형이 제작한 혼천의의 모형.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한 기구다. 허난(河南)성 난양(南陽)시 근교에 있는 장형박물관 야외에 전시돼 있다. 수력을 이용한 최초의 혼천의인데, 하늘은 달걀 껍데기 모양이고 지구는 달걀의 노른자위라는 지구 중심의 우주론에 입각했다.
시안(西安)과의 거리를 좁혀 놓기 위해 허난(河南)성 마지막 기착지를 전핑(鎭平)현으로 정했다. 도중에 있는 난양(南陽)시에서는 중국이 자랑하는 과학자 장형(張衡)의 박물관만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박물관까지 가려면 시내에서 북쪽으로 20㎞쯤 에돌기 때문에 꾀를 냈다. ‘난양 시내 어딘가에 자전거와 짐을 맡겨놓고 택시로 다녀오자’. 왕복 한 시간, 관람 한 시간, 작전 소요 시간은 총 두 시간. 그러면 오후 5시쯤 될 테고 난양에서 30㎞쯤 떨어진 전핑까지 저물기 전에 닿을 것이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18 난양(南陽) 장형(張衡) 박물관

처음 가는 곳인데도 서울 강남에서 경기도 과천의 과학관을 다녀오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계획한다. 회의주의자라면 세 가지를 지적했을 것이다. 첫째, 자전거를 맡아주는 곳이 적시에 나타날 것인가? 둘째, 변두리까지 왕복하고 기다려줄 택시를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셋째, 과연 맡아주는 곳과 택시기사를 믿을 수 있는가? 그런데 내 안의 회의주의자도 생각 못한 문제점이 있었다. 그게 더 뼈아팠다.

난양 시내에 접어들어 312번 국도변에 비즈니스 호텔이 보이자 무작정 자전거를 밀고 들어갔다. 호텔 여종업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다가 사정을 듣고는 놓고 가라고 한다. 돈도 안 받는다. 첫 관문 통과. 거리로 나오자 삼륜차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말이 삼륜차지 오토바이 엔진에다 운전석 뒤에 앞뒤로 꾸겨 앉으면 여덟 명이나 탈 수 있는 네모난 칸을 달고 있다. 9인승 ‘SUV’인데 지붕이 없다. 선글라스 쓴 기사의 목소리는 불량기가 느껴질 만큼 반질반질했다. 택시는 안 오고 그는 옆에서 계속 사분댄다. 더 이상 기다리면 작전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50위안(9000원)에 합의를 보고 삼륜차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중국의 삼륜차 택시. 승객 칸에 붙어 앉으면 8명이 앉을 수 있는 9인승의 ‘서민판 SUV’다. 지붕이 없어서 흙바람을 그대로 마셔야 한다
드넓게 펼쳐진 과수 들판을 가로지르는 기분은 잠시였다. 아스팔트가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노면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군데군데 꺼져 있다. 완충장치가 없어 몸이 통통 튄다. 자동차가 일으키는 노란 흙먼지에 숨을 쉴 수 없다. 그는 파인 곳과 먼지바람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역주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요철(凹凸) 부분을 통과할 때는 엉덩이를 살짝 들어서 충격을 피한다. 나는 속절없이 솟구쳤다가 덜커덩 떨어진다.

그는 먼지를 들이마시면 침을 뱉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칸막이가 없어서 침의 비행 각도에 민감하다. 나를 배려해서 고개를 왼쪽으로 쭉 빼고 침을 뱉다가 귀찮았던지 나중에는 그냥 고개만 돌려 침을 분사했다. 나는 그가 왼쪽으로 도리질하는 걸 보고 오른쪽으로 붙어 앉으려 했지만 양쪽 난간을 붙잡아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오른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 거기다 그는 백미러로 그런 나의 얄팍한 수작을 간파한 듯 가끔 오른쪽으로도 침을 뱉곤 했다.

그는 먼 곳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가보지 않겠느냐고 여러 번 제안했다. 나는 바가지 씌우려는 그의 속내를 꿰뚫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진작 우회전했어야 하는데 계속 직진하고 있다는 점. 내 안의 회의주의자가 ‘거봐, 이 사람을 어떻게 믿고 탄 거야’ 힐난한다. 침을 저렇게 뱉어대는 걸 보면 나를 으슥한 뒷골목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한 행동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몸은 튕겨져 나갈 것 같지, 흙먼지에 호흡곤란이지, 수평으로 날아오는 그의 침을 피해야 하지, 엔진소음은 고막을 때리지…. 거기다 내 몸은 삼륜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마침내 우회전을 했다. 위치를 몰라서 길을 돈 것으로 판명됐다. 길을 잘 안다고 장담하던 그는 네댓 명에게 길을 묻곤 했다. 박물관 앞에 드디어 내려줬을 때는 이미 한 시간 이상 지나갔다. 그리고 곧 회의주의자가 제기하지 않은 의문이 현실이 됐다. 만약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았으면?

평일 오후에 박물관이 닫혀 있는 상황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장형박물관은 보수 중이어서 모든 야단법석이 단박에 부질없어졌다. 이전에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사마광(司馬光)의 옛집에 들렀을 때도 보수 중이었다. 그때도 문 두드리고 들어갔듯이 장형박물관 안으로도 그냥 들어갔다. 중국에서는 일단 부딪치고 본다.

달에 있는 한 분화구의 명칭은 국제적으로 장형의 이름을 붙인다. 달이 스스로 빛날 수 없고 햇빛을 받아 빛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낸 장형에 대한 적절한 예우다. 그는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기 위해 혼천의도 최초로 만들었다. 한국의 1만원권 지폐 뒷면에 혼천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고 “역사를 도둑질하고 있다”고 중국 네티즌이 분개하는 그 혼천의다. 동양 과학기술사의 대가 조셉 니덤은 모든 시계장치의 제작은 혼천의에서 시작됐다고 했을 만큼 장형을 높게 평가했다. 태양계의 소행성 1802는 그의 공로를 기려 ‘장형성’으로 불린다.

비록 보수 중이었지만 그의 묘소와 그에 대한 찬사가 적힌 비석들을, 그리고 혼천의와 지진 관측장비인 지동의의 모형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의 기기는 실용적인 도구의 건조함이 없다. 지동의는 당시의 세계관과 표현력을 반영하는 예술품이다. 그 안에 빚은 술이 담겨 있다고 해도 속아넘어갈, 길쭉한 원형의 통에 여덟 마리의 용이 긴 손잡이처럼 달려 있는데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입에 여의주가 아닌 청동구슬을 물고 있다가 지진이 나면 그 방향에 있는 용이 구슬을 뱉는다. 그럼 바닥에 용과 마주 보고 배치된 여덟 마리의 청동개구리 중 한 마리가 그 구슬을 받아먹는다. 지진에 대한 가장 시적인 표현이다. 지진은 용의 구슬을 청동개구리가 먹는 현상이다. 하지만 기기로서 관측의 정확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후한대인 78년에서 139년까지 살았던 장형과 대비되는 동시대 서양의 인물은 이집트에 살던 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다. 두 사람은 모두 천동설을 주장, 시대적 한계 속에 있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 대집성』이라는 이론서를 펴냈고 장형은 기기를 만들었다. 장형이 만든 지동의는 유실됐고 후대에 복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2005년 중국 과학자들이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은 있지만 이론이 없다. 이론이 있어야 검증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 이론이 나오면서 과학이 발전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400년 후『천문학 집대성』을 꼼꼼히 분석한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부정되면서 ‘지동설’로 진화해 나간다.

개인의 역량만큼은 탁월하다. 장형은 지남차도, 수레의 속도계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名)문장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초대 중국과학원장 궈모뤄(郭沫若)는 “이처럼 전면적 발전을 이룬 인물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천년, 만년 우러러볼 인물이다”는 찬사를 바쳤다. 하지만 장형을 보면서 중국 고대 과학기술의 선진성보다는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의 과학이 낙후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천재적인 개인의 고립된 성취로는 과학이 발전하지 않는다.

올 때 안 좋은 길을 더구나 돌아왔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자고 했더니 그는 뜻밖에 반색하며 차를 몰았다. 화물차들의 매연과 흙먼지 때문에 이 길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제대로 출발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출발지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맡겨둔 호텔 이름조차 외워두지 않았다. 그가 중간에서 내리라고 하면 꼼짝없이 길을 헤매는 중국 거지가 될 판이다. 참 무모한 녀석이군.

그는 몇 차례 더 다른 곳을 가자고 성가시게 했지만, 감사하게도 호텔 앞에 내려줬다. 다만 50위안을 주니까 펄쩍 뛰며 언성을 높인다. 중국에선 가끔 이런 경우를 겪는다. “니 하오(안녕?)” 한 마디만 해도 “너 어디서 배워서 그렇게 중국말을 잘하느냐”고 칭찬하던 사람이 이해가 엇갈리면 속사포 중국어로 몰아세운다. 올 때 다른 길로 왔으니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가 해괴하지만 말싸움에서 밀렸다. 나는 침이 좀 묻었다는 것을 할인 요인으로 제시, 결국 30위안을 얹어주는 걸로 낙착됐다. 그래도 험한 경우를 당해서 지불할 수 있는 엄청난 대가에 비하면 얼마 안 된다. 다른 삼륜차 기사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얼마 줬느냐고 묻는다. 웃음이 툭 터졌다. 동료에게 물어보면 될 걸 나한테 물어보는 걸 보니 상호 감시체제가 작동 중인가 보다.
호텔 로비에는 자전거와 짐이 그대로 있다. 짐 안에 넣어둔 현금을 확인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자전거를 맡아준 선의를 의심으로 갚는 것 같아 그냥 끌고 나왔다. 오늘 하루 내 안의 회의주의자와 낙천주의자 둘 중 누구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 이럴 때 판정하는 사람도 항상 낙천주의자다. 땅거미와 함께 전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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