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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남의 아픔 읽을 줄 아는 것이 영어 한 줄 읽을 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른들 사이에도 왕따는 존재한다.

 30여 년 전, 처음 발을 내디딘 미국의 텍사스 주. 난 그곳에서 왕따였다. 코리아 하면 6·25전쟁만을 떠올리던 시절이니 그들에게 난 작은 키에 누런 피부, 말도 잘 못 알아듣고, 마늘냄새까지 풍기는,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여자였으리라. 교회가 주최하는 만남이었던가. 일주일에 한번, 죽기보다 그곳이 가기 싫었지만 매번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서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외톨이로 서 있다가 우울하게 돌아오곤 했다. 더듬거리며 영어로 말을 걸어도 외마디 대답만이 돌아올 뿐. 웃고 떠들며 얘기하는 그들이 말 걸어주기를, 미소 지으며 한 귀퉁이에서 기다리는 처절하고 더러운 기분. 그들에게 난 투명인간이었던 것이다.

 한 달 내내 소외감에 괴로워하다가 꾀를 냈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 한두 개 외워서 적극적으로 말을 걸자. 그 후 간신히 왕따는 면했지만 그때의 뼛속 깊은 외로움과 치 떨리는 소외감을 어이 잊으리. 그 덕분에 요즘 다문화가정 엄마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걸어주는 센스는 생겼다. 그들도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미소 지으며 우리가 말 걸어주기를 기다릴 거다.

 우리 모두 낯선 곳에선 왕따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티아라 놀이’ 일명 ‘왕따놀이’가 유행이라고 한다. 지난달 30일. 코어콘텐츠미디어 김광수 대표가 티아라의 멤버 화영을 계약 해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생방송 거부와 돌출행동이 이유란다. 이 과정에 화영을 왕따시켰다는 의문이 팬들 사이에 돌면서 그 내용이 카카오톡과 SNS로 퍼져나가고.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사실로 둔갑하고. 불화가 생겼다면 자체에서 조용히 해결했어야 했다. 연예인은 인기만큼이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티아라 왕따설’이 ‘티아라 놀이’로 둔갑 되듯이 아이들에겐 아이돌의 모든 것이 모방 대상이다. 친구 중 한 명을 ‘넌 이제 왕따야’ 지목하고, 나머지 친구들이 합심해서 그 친구를 괴롭히는 놀이. 동조하지 않은 아이는 다음 왕따의 타깃이라 한다.

 우리들이 소외시킨 왕따. 결국 사회부적응자로 자라나서 자살을 하거나 남을 죽이는 묻지마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회가 원망스럽다’. 범행 직후 그들이 내뱉는 한마디. 우리 귀에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이런 것이 ‘소꿉놀이’ 같은 놀이라니. 소름 끼친다. 마치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잠자리 날개 하나씩 떼어내며 노는 걸 보는 것만 같다.

 이제 어른들에게 숙제가 생겼다. 주위 한번 돌아보자. 소외된 아이나 어른은 없나. 혹여 내 아이가 어딘가에서 잠자리 날개 하나씩 떼며 서서히 누군가를 죽이고 있지는 않나.

 아이들에게도 일러주자. 환경이 바뀌면 어느 누구도 왕따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남의 아픔 읽을 줄 아는 것이 영어 한 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까지.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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