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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화성돈 공사관’의 귀환

구한말 대한제국 주권의 상징이었던 ‘화성돈 공사관’이 역사에서 사라진 지 102년 만에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화성돈(華盛頓)은 미국 워싱턴의 한자 표기로 화성돈 공사관은 지금으로 치면 주미 한국대사관에 해당한다. 미국 내 주소는 ‘15 Logan Circle NW Washington DC’다. 1910년 한·일 강제합방 때 주권과 함께 일본에 빼앗긴 화성돈 공사관은 그 뒤 여러 명의 미국인 손을 거쳐 개인주택 용도로 변질되면서 역사성을 상실했다. 정부가 마침내 화성돈 공사관의 미국인 소유자와 매입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20년 전부터 국내 언론과 현지 교민이 꾸준히 제기한 매입 문제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온 정부의 책임이 깨끗이 씻어진 건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330조원 예산을 쓰는 대한민국 정부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살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외교공관을 이토록 오래 떠돌이로 방치해 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화성돈 공사관은 1891년 고종 황제가 궁중 내탕금(內帑金·임금 개인의 재산) 2만5000달러를 털어 마련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선이었지만 인접 열강인 중국·일본·러시아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미국의 외교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투자였다. 고종 황제는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청산과정에서 미국에 또 한번 배신의 쓴맛을 봐야 했다. 황제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넘기면서 화성돈 공사관을 폐쇄했고, 강제합방 당한 뒤엔 주미 일본공사관에 5달러를 받고 팔아버렸다. 그때 매매계약서에 쓰인 “일본 공사는 조선 황제에게 5달러를 지불하고 조선 황제는 무조건 상속재산권에 의해 일본 공사에게 부동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은 마치 망한 나라의 주권(主權)가격이 2만5000달러에서 5달러로 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화성돈 공사관엔 대한제국의 몸부림치는 자주와 실용, 독립의 의지가 배어 있으나 국제정치의 힘의 논리, 짝사랑 외교의 실패, 망국의 한이 깊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화성돈 공사관의 귀환은 단순히 잃어버린 백 년 전 과거의 한 조각을 되찾아 오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국민이 얼마나 참혹한 현실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의 얘기다. 요즘 한·중·일 3국에 몰아치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격랑은 한 세기 전 동아시아의 힘의 각축을 연상케 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믿을 건 국민의 내적 역량밖에 없다는 화성돈 공사관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화성돈 공사관 매입을 나라의 소중함, 주권의 귀중함을 시민에게 알리는 일대 정신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영삼 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를 복원하고 김대중 정부가 백범기념관을 건립해 독립정신을 고양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화성돈 공사관을 미국 내 ‘한국의 독립박물관’처럼 꾸며 온 세상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도록 만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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