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꿈 찾자 방황 끝났다, 40만 달러 장학금 받는 예비 외교관 됐다


“꿈은 평범한 나를 특별한 나로 만들었어요.” 2008년 봄, 당시 20세였던 미국 보스턴대 국제정치학과 2학년 최성찬씨에게 꿈같은 일이 생겼다. 미국 정부가 매년 선발하는 예비 외교관 훈련 프로그램(IIPP 펠로십) 장학생이 된 것이다. 재미동포 3세인 최씨는 한국계 남학생으로선 처음으로 전국 대학생 800만 명 가운데 뽑힌 IIPP 펠로십 장학생 32명의 일원이 됐다. 청소년기, 가난 속에서 춤과 펜싱에 미쳐 학업을 등한시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꿈’이었다.

최성찬씨는 “꿈이 없다면 방 안에 세계지도를 붙여보라”고 말한다.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꿈을 찾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어·영어·스페인어·터키어·아랍어·히브리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하고, 미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예비 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는 최성찬(24)씨. 주변에선 그를 ‘엄친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 ‘엄친아’란 말은 남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출로 방황이 시작됐습니다. 부모님 모두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그 공허함을 이성교제와 운동·춤으로 메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제대로 놀았다. 매일 5시간씩 마이클 잭슨의 춤에 빠졌다. 오죽하면 연예기획사가 러브콜을 했을까. 운동에 미쳐 고교생 땐 유색인 최초로 학교 펜싱부 주장이 됐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고 꿈도 없었다. 백인 아이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놀렸고, 가정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최씨는 “그 당시엔 최선을 다할 동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스턴대를 졸업한 누나와 하버드대를 다니는 여동생은 1등을 도맡았다. 딸들과 달리 공부와 담을 쌓은 아들을 보며 어머니 황경애(47)씨는 애간장을 태웠다. 아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려고 꾀를 내야 했다. 황씨는 “사춘기 아이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폭발할 때 부모는 조용히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기다리며 아버지를 대신할 롤모델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아들 친구들이 자유롭게 집을 드나들 수 있도록 했고, 매주 파티를 열었다. 아들이 집 밖이 아닌 가정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게 도왔다. 황씨는 “아들의 형·누나뻘 되는 학생들에게 아이의 고민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며 “아이 스스로 주변에서 롤모델을 찾아 방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황씨의 노력 덕에 아들은 롤모델을 찾았고 누나를 보며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최씨는 고교 2학년 때 미국 전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 리더 콘퍼런스’에 참가한 뒤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이때부터 외교관이 돼 남을 돕겠다는 꿈을 꿨다. 최씨는 “만약 그때 꿈을 찾지 못했다면 지금 가게 종업원이나 춤꾼, 펜싱선수가 됐을 수도 있다”고 회상했다. 꿈이 생기자 방황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공부벌레가 됐다. 재미동포 3세 최성찬은 마침내 보스턴대 4년 장학금과 미국 정부에서 주는 예비 외교관 훈련 프로그램(IIPP 펠로십) 장학금을 받는 ‘40만 달러의 사나이’로 변신했다.

운동으로 익힌 시간 관리·집중력, 공부에 도움

황씨는 “뒤늦게 공부에 매달린 아들이 빨리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운동 덕분”이라고 말했다. 고교 펜싱부 주장으로 활동하면서 시간관리와 리더십·집중력·사회성·팀워크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운동을 통해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뱄다”며 “고3 때도 하루 2시간은 반드시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을 단련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공부 비결은 시간관리와 정신력이다. 이는 고교 졸업시험을 앞두고 빛을 발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위염이 위궤양으로 악화됐는데도 시험을 친 뒤 병원에 가겠다며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보스턴대 국제정치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IIPP 펠로십은 외국어 몰입 교육으로 3개 국어 이상을 할 줄 알아야 장학생이 될 수 있다. 6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최씨는 중동과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 때문에 ‘아시아통 외교관’이 첫 번째 꿈이다. 팔레스타인과 터키·한국에서 인턴 생활을 한 뒤 터프츠대 국제대학원 플레처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다.

 최씨가 권하는 꿈을 찾는 방법은 ‘경험’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글로벌한 꿈을 꿀 수 있다”며 “다문화 가정을 위한 봉사를 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보면 자연스레 다른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최씨는 꿈이 없는 청소년에게 반드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은 방황이란 그림자를 달고 살게 됩니다. 꿈이 없다면 가치 있는 삶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꿈은 나를 미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꿈의 엄청난 힘을 믿어보세요.”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