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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 장벽 넘으니 빈부 장벽

백금광산에서 흉기를 들고 시위하는 남아공 광부들. [루스텐버그 AP=연합뉴스]
플래티넘(Platinum·백금). 고급 장신구에 쓰이는 천연의 은백색 금속이다. 변색·변질이 없고 단단한 성질을 지녀 산업 소재로도 각광받는다. 전기 콘센트, 자동차 배출 가스 제어 장치 등에 필수다. 전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극히 적어 연간 생산량도 금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 생산국으로 으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세계 확인 백금 매장량의 5분의 4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 남아공이 ‘피 묻은 플래티넘’으로 흔들리고 있다. 사건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남아공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마리카나 광산에서 벌어졌다. 세계 3위의 영국계 백금업체 론민이 소유한 광산에서 광부들의 임금 인상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34명이 숨졌다. 또 78명이 다치고 256명이 체포됐다. 마리카나 광산에선 지난 10일부터 이번 발포 사건 전까지도 파업 시위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을 포함해 10명이 숨졌다.

 광부들의 요구는 300~500달러인 월급을 1500달러(약 170만원)로 올려달라는 것. 하지만 론민 측은 경기 악화로 백금 가격이 좋지 않다며 거부했다. 발포 사고 이후에도 불법파업에 맞서겠다며 남아공 전체 사업장 운영을 중단했다. 그러자 광부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연일 시위를 벌였다. 회사 측의 해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복귀 시한(20일)까지 돌아온 인원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파업 위험을 안은 론민의 주가는 런던 주식시장에서 연일 하락했다.

 이번 사태는 1994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 정책) 폐기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다. 60년 시위 도중 69명의 흑인이 죽음을 당한 ‘샤퍼빌 학살’에 빗대 ‘마리카나 학살’이라는 말도 나온다. 게다가 흑백 갈등 시절과 달리 광부들에게 발포한 경찰 다수는 광부들과 같은 흑인이다.

 사태 이면에는 흑백 분리 정책 폐기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빈부 격차가 도사리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남아공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000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인구의 40%는 하루 3달러 이내 생계비로 살아간다. 로이터통신은 20일 “만성 실업과 흑인 하층계급의 증가, 저학력 저임노동의 악순환이라는 남아공의 고질적 문제가 이번 사태로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뿌리깊다. 사태 이후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 정치인 겸 기업인 시릴 라마포사가 희생자 장례식에 25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차라리 임금을 올려주지 그랬느냐는 힐난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남아공 최대 노동조합인 광산노조 사무총장을 지낸 라마포사는 현재 론민 이사회의 일원이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20일부터 일주일을 희생자 애도주간으로 선포했다. 마리카나 광산도 곧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광부들의 폭력시위에 맞선 경찰의 자위권 행사였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파업 위험으로 해외투자자들이 손을 뗀다면 광산업 자체가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 남아공에선 올 초에도 세계 2위 백금생산 기업인 임팔라 플래티넘의 러스틴버그 광산에서 파업 충돌로 3명이 숨졌다. 이로 인해 1분기 생산량은 46%나 줄었다. 남아공의 올해 1분기 성장률(2.7%) 부진도 광산업이 전 분기에 비해 16.8% 위축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피 묻은 백금일지라도 어떻게든 안고 가야 하는 게 남아공 정부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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