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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쳐서 거꾸러뜨리자’ 맥아더 동상 부수려는 그들

정기환
사회부문 기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2005년 69일간, 2006년 6일간 ‘맥아더 동상 철거’를 외치던 좌파 시위대가 6년 만에 다시 인천 자유공원에 나타났다. 이번엔 ‘철거’에서 한발 나아가 ‘쳐서 거꾸러뜨리자’며 ‘타도(打倒)’를 들고 나왔다.

 21일 오후 인천시 중구 북성동 자유공원의 비둘기광장.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이곳은 쌍안경을 든 채 인천항과 월미도를 굽어보고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으로 유명하다. 이 동상은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기념해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인천의 명물이다.

 ‘맥아더동상타도특위’는 이날부터 9월 8일까지 집회신고를 냈다. 집회가 예정된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하나같이 백발이 성성한 십 수 명의 타도특위 회원이 광장 입구에 나타났다. 동시에 해병대전우회와 인천상륙작전참전전우회 회원 50여 명도 진을 치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21일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에서 해병대 인천연합회 소속 한 회원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며 집회를 하고 있던 진보단체에 항의하려 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충돌은 오후 1시45분쯤 일어났다. “좌파 몇 명이 검은 가방을 메고 동상에 올라가 스프레이를 뿌리려 한다”는 소식이 해병전우회에 알려졌다. 10여 명이 우르르 동상으로 몰려갔다. “빨갱이들 물러가라” 등등의 고성이 오가면서 삿대질, 발길질까지 오고 갔다. 경찰이 양측을 갈라 놓고서야 타도특위 측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이들은 ‘정의행동에 관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제 민중이 정의행동으로 침략과 학살의 원흉 맥아더 동상을 타도하고 민중(人民)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배포한 한 유인물은 금시초문의 일화도 담고 있었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온 맥아더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에 총을 쏜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집회신고 마지막 날인 9월 8일에는 우호 세력들을 총동원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동상 철거운동의 단골 주역인 김수남 연방제통일추진회의 의장은 “현재 7∼8개 단체가 타도특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도특위가 정의행동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한 ‘인민’들은 정작 해병전우회보다 더 심하게 그들을 몰아세웠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바람을 쐬러 왔다는 김연순(56·여)씨는 “애먼 동상에 대고 종주먹질을 해대니 딴 세상 사람들 같다”며 “김일성 동상이라도 세우자는 얘기냐”며 고함을 질렀다. 인근 주민 신영수(79)씨는 “나도 열일곱에 전장에 나가 내 나라 내 고향을 지켜냈다”며 “그럴 힘 있으면 북한에 올라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농사나 지으라”고 소리쳤다. 박성용(47)씨는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평택 미군기지나 제주 강정마을 시위가 끝나자 다시 인천으로 몰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타도특위는 미국의 한자 표기에 굳이 도깨비 미(魅)자를 쓰고 있었다. 기발하다는 생각보다는 이념의 영역을 넘어 막무가내식 적개심이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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