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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커피 마시면 진보가 아니라고?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기자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혁명가는 미제의 산물을 사용해선 안 된다. 우리부터 커피와 콜라를 마시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도 한동안 마시지 않았다.”

 북한인권운동 단체인 ‘시대정신’의 허현준 사무국장이 얼마 전 한 말이다. 그는 95년 한총련 집행위원장을 지냈던 운동권 출신이다.

 지난 세대의 기억인 ‘커피 금기’가 통합진보당에서 난데 없이 다시 불거졌다.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유시민·심상정 전 대표를 겨냥해 지난 17일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 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당 게시판에 올린 게 발단이다. 이에 유 전 대표가 20일 “미국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싱거운 물커피”라며 익살스럽게 받아쳤다.

 20여 년 전 운동권의 치기(稚氣) 어린 의식이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에 아직도 남아 있다면, 한마디로 시대착오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신다고 반(反)민중적이고, 미 제국주의 지향적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은 ‘반민중적 미제의 식민지’쯤 된다고 해야 한다. 컴퓨터마다 미국산 윈도를 깔아놓고, 미국산 아이폰에 열광하고,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게 우리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왜 문제인지 납득시킬 수 있을까.

 지금이 어느 때인가. 북한에서도 미키마우스가 TV 전파를 타는 세상이다. 게다가 북한의 김정일도 진한 향의 커피를 즐겨 마셨다 하지 않나. 그래서 주사파들이 한 축을 이루는 통진당의 아메리카노 커피 논쟁은 더 생뚱맞아 보인다.

 통진당 강령 39조는 “누구도 성별·장애·나이·국적·인종·피부색·출신지역 등과 종교·사상·성별정체성·학력 등으로 차별 받지 않도록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무슨 커피를 마시느냐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빠져 있긴 하다. 유시민 전 대표가 아메리카노 때문에 욕 먹지 않으려면 강령부터 고쳐야 할 판이다.

 커피를 계급의식과 연결시킬 논리적 근거는 없다. 논란의 핵심은 통진당 내부의 권력 다툼이다. 아마 유 전 대표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마셨다면 왜 수돗물을 안 마시냐며 거품을 무는 사람이 또 나왔을 거다.

 지금 통진당 홈페이지 게시판엔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지하철 9호선을 타면 진보가 아니다(그 회사는 호주계 회사다. 공항 갈 일이 있어도 5호선이나 버스를 타자).”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 공방이나 계속한다면 이처럼 당 안팎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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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