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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노무현과 박근혜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한 사람은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야당 대표였다. 그 시절 둘은 무던히 싸웠다. 정치 지형상 야당 대표가 각을 많이 세웠다. 한 사람이 손을 내밀기도 했지만 그걸 받아줄 사정도 안 됐다. 시간이 꽤 지났다. 한 사람은 고인이 됐다. 다른 한 사람은 대통령 후보가 됐다. 21일 대통령 후보가 된 이가 고인이 된 이를 찾아 처음으로 인사했다. 노무현과 박근혜 얘기다.

 노무현은 박근혜를 이렇게 평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미래연합 총재였던 박근혜에 대해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했다. 하지만 “개혁적인 생각도 많겠지만 박정희 시대 통치의 정당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집착이 있을 것”이라며 “갈 길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길이 달랐다.

 2005년 여름, 노무현은 박근혜에게 대연정을 제안한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연정을 구성하고 대통령의 권력을 넘기겠다고 했다. 대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고 했다. 박근혜는 거부했다. “무책임하고 헌법 파괴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그때 노무현의 꿈이 물거품되면서 받은 정치적 상처가 컸다.

 삐걱거린 건 그뿐이 아니다. 2004년에는 노무현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박근혜가 펄쩍 뛰었다. 그해 겨울에는 사학법 개정 방침에 반대해 길거리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박근혜가 독하게 노무현을 비판한 건 2007년 1월이었다. 노무현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박근혜는 “대통령이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거기선 노무현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 날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라고 일갈한다. 3선 개헌을 한 박정희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함께 해낸 것도 있다. 노무현의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은 박근혜가 뜻을 함께 해 이뤄진 결과다. 나중에 이명박 정부가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박근혜가 꿋꿋이 세종시를 지킨다. 세종시는 노무현이 발의하고 박근혜가 매듭지은 합작품이다.

 박정희 시대를 어두운 과거로 보는 노무현과 박근혜는 출발부터 대척점에 있었다. 정치적으론 가까이 할 수 없는 환경에 휩싸인 관계였다. 비판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박근혜가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했다. 명분은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라서다. 하지만 평소 그의 행보를 보면 파격이 분명하다. 대통령 후보로서 첫 행보였다는 점에선 더욱 그렇다. 그가 내세운 ‘보수·진보 없는 100% 대한민국 실현’ 의지에 부합한다. 이명박 정부가 홀대하고 응어리지게 했던 부분에 대한 신원이란 의미도 있다.

 그가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야 한다. 그에겐 남은 과제도 국민들이 공감할 만큼의 크기로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정수장학회와 5·16 쿠데타 논란, 정치 혐오증 극복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직도 한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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