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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차갑던 시어 … 이제 감정이 떠오른다

시인 이원은 세상을 이미지로 본다고 했다. 사라지는 찰나의 이미지, 휘발되는 이미지가 그의 시로 태어나는 것이다. [신인섭 기자]

‘순간주의자.’ 시인 이원(44)은 자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씨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됐다. 그의 시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묘사나 이미지로 연결된다는 것을, 또 ‘질주’ 등의 어휘가 시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휘발되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요. 초등학교 때 오빠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요. 세계가 일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죠. 나는 순간주의자에요. 인생 계획을 3개월 이상 잡은 적이 없어요. ‘미래는 없다’ 주의죠.”

 세상을 이미지로만 보는 이원의 시는 건조했다. 감정은 꼭꼭 숨겼고 디지털이나 금속성의 소재는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더했다. 그런데 그의 시가 조금 달라졌다. 예심위원인 최정례 시인은 “자기 감정을 묘사된 문장 밑에 가라앉혀 뒀는데 요즘에는 감정이 위로 떠올라 오는 모습이 보인다”고 평했다.

 “그동안 정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바깥으로 드러낼 만큼의 감정이나 정서, 고통이나 슬픔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죠. 시인은 과장을 하면 안 되니까. 고통에서 더 들어간 데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죠.”

 바닥까지 내려간 고통은 5년 전 스승 오규원 선생(1941~2007)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유사체험을 하는 거죠.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뒤 현실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

 그의 근작에는 죽음의 느낌이 매달려 있다. ‘죽은 사람과 정신을 나눠 쓰며/방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허공이 깊어져요’(‘새들의 말’)라는 표현이 등장하는가 하면 ‘강물로부터 온 편지’의 화자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사람이다.

 “‘강물로 온 편지’는 정신자살에 대한 이야기에요. 실족 같은 거죠. 한 순간에 발을 잘못 디디는 거에요. 우리는 크든 작든 실족의 순간을 경험하며 살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죠. 그 느낌을 담은 거에요.”

 죽음의 유사체험은 그가 경계의 문제를 고민하게 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 사이보그와 인간의 경계 등등. 경계의 언어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A와 B가 만나서 스미는 게 아니고 섞이지 않는 것, 경계는 다름을 다름으로 잡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다름을 인정하고 동화(同化)를 강요하지 않는 지점을 이씨는 ‘불가능의 가능성’이라고 칭했다. “불가능이라는 지점에서 가능이 시작되는 거죠. 시든 삶이든, 불가능을 뚫고 솟아나오는 순간이 가능이에요. 닿아 있는 경계를 버티는 자아 앞에, 불가능에서 솟아나오는 문장이 있어요. 그게 시에요.”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 현대시학 작품상(2002)과 현대시 작품상(200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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