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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메리카노 커피와 노동자·민중을 연결하는 그 놀라운 상상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주방과 거실에 감도는 진한 커피향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커피머신에 종이필터를 깔고 그 위에 원두커피 가루를 넣는 일이다. 머그잔을 가득 채운 진한 드립커피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대개 하루를 시작한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조용한 새벽 시간에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뒤적이는 것은 나의 포기할 수 없는 작은 행복 중 하나다.

 내가 커피 맛을 알게 된 건 파리에서였다. 파리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으레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온다. 종업원에게 “앵 카페(Un cafe)”라고 말하면 소주잔 크기의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가져다준다. 처음엔 좀 쓰게 느껴졌지만 몇 번 마시다 보니 금세 인이 박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귀국하면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드는 가정용 기계까지 장만해 왔지만 파리의 카페에서 마시던 그 맛은 영 안 나왔다. 요즘엔 1회용 캡슐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도 종종 마시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때아닌 커피 논쟁에 휘말렸다. 구당권파의 핵심인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지난 주말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겨 마시는 유시민 전 공동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그는 “유시민 전 공동대표와 심상정 의원의 공통점 중 하나는 대표단 회의 전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라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썼다.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제(美帝)의 상징’인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수 있느냐는 힐난으로 들린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아메리카노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이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연하게 해서 마셨던 데서 유래했다. 이름만 아메리카노지 사실 미국과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좋아하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는 여러 가지 취향의 하나일 뿐이다.

 싸움을 할 생각이라면 싸움이 될 만한 걸 갖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재미가 있다. ‘진보는 미숫가루만 먹어야 하나’ ‘커피믹스는 진보고 아메리카노는 착취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백 전 부총장은 슬그머니 논점을 흐렸다. 비서를 시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지적한 것이란 얘기다.

 유시민 전 대표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겠냐”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문제 삼는 진보는 사이비 진보다. 보수도 진보도 결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다. 상상력 결핍도 문제지만 과잉도 문제다. 통합진보당의 앞날이 걱정된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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