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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직전까지 갔던 우리가 ‘결혼 구조단’ 됐죠”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창립 20돌 맞은 가정문화 NGO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와 김향숙 원장

“자, 큰 소리로 따라 하세요. 아이처럼 울고 어른처럼 일어서자! 네, 좋습니다. 행복하자고 결혼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을까 싶으시죠? 힘든 걸 감추지 말고 이 자리에서 펑펑 우세요. 고질병도 눈물 한 방울이면 고칠 병이 된다고 합니다.”

16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 아론의 집. 가정문화 NGO 하이패밀리가 주최하는 부부관계회복 프로그램 ‘행복플러스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진행자 송길원(55) 목사와 부인 김향숙(52) 원장의 말이 끝나자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가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서로 손을 맞잡은 20여 쌍 부부들의 눈에선 거짓말처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날 캠프는 59차.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인원은 줄잡아 3000쌍이 넘는다. 2박3일간 부부가 합숙을 하며 성격검사와 댄스세라피 등으로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고 치유법을 찾는다. 하이패밀리에 ‘결혼구조단’이란 애칭을 선사한 간판 프로그램이다. 1992년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로 출발한 하이패밀리는 2002년 지금의 이름이 돼 올해 20년을 맞았다. 본격적 의미의 국내 첫 가정문화 NGO다. 행복플러스 외에도 결혼예비학교·남성클리닉·노년설계사·여성행복컨설팅 등 가족의 행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신학자인 총신대 안인섭 교수는 하이패밀리의 시대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20년사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결혼구조단’의 단장 격인 송 목사와 김 원장 부부를 만나 가정문화운동 20년을 함께 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27년 전 이들은 “치약 짜는 방법을 갖고도 싸울 정도로 사사건건 갈등이 심했던” 신혼부부였지만, 이혼서류에 도장 찍기 직전까지 간 위기를 가정문화운동이라는 기회로 슬기롭게 발전시켰다.



-부부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실제 부부가 진행하는 게 이채롭다.

“우리 부부가 싸웠던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현재를 자연스럽게 비춰보길 바랐다. 우리도 결혼 후 5~7년 동안 갈등이 가장 심각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버지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결혼해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 자식한테도 원만한 결혼생활 노하우를 미리 가르쳐줬어야 할 것 아닌가. 아버지가 일러준 건 고작 ‘신혼 초에 마누라 기선 제압을 못하면 내내 끌려다닌다’는 거였다(웃음). 결혼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결혼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송)

“부부싸움은 (특정한 일이나) 사건을 놓고 해야지 사람을 건드리게 되면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우리도 그랬다. 분노조절이 잘 안 돼 나중엔 상대 집안 얘기를 들먹이며 서로를 비난했다. 혀가 컨트롤이 안 되니 막장싸움이 됐다. 나중엔 집에 앉아 있으면 집이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답답하고 절망스러워 이혼서류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혼을 해도 고통, 안 해도 고통이었다. 고민을 거듭했다. 지금까지 상대를 바꾸려 했는데 잘 안 됐으니 이젠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어렵게 결심했다. 둘이서 한국에 있는 상담기관이란 상담기관은 다 찾아다녔다. 카운슬링 프로그램, 세미나 등 안 가본 데가 없다. 그런 데 가서도 계속 싸웠다.”(김)



-이혼 직전까지 간 경험이 가정문화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된 건가.

“그렇다. 결혼만 하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올 거라 착각한 우리가 어리석었다. 우리의 실수를 다른 부부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도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걸 이혼 위기까지 가보고서야 알았다. 부부 사이에 분노 유발 인자는 다양하다. 이걸 가속화시키느냐 조기진화하느냐의 문제다. 결혼예비학교 강좌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30년 갈 결혼생활보다 30분 할 결혼식에 쓸데없이 전력투구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까웠다.”(김)



-모델로 삼은 운동 사례가 있는지.

“미국의 제임스 돕슨 목사가 시작한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가정회복이 곧 사회회복이라는 데 일찌감치 눈을 떴다. 끊임없는 세미나와 상담 등을 통해 갈등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미국식 실용주의에 기반한 운동이다. 사람의 발달단계별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부부 사이 일인데 왜 남의 상담을 받느냐’는 식으로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송)



-여기 온 부부들은 대개 어떤 상태인가.

“초기엔 거의 이혼 직전인 부부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요새는 관계가 비교적 건강한 부부도 예방 차원에서 온다. 결혼 20주년을 맞아 부부 사이를 재점검한다는 커플도 있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졌다는 증거다. 이런 트렌드가 생기기 시작한 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이 뿌리째 흔들리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 거다. 물론 이런 데 와서도 갈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부부도 있다. 2박

3일을 못 채우고 남편이 먼저 차 몰고 떠나버린 경우도 봤다.”(송)



-요새 부부갈등의 특징은 무엇인가.

“결혼하고 나서 이혼하기까지 기간이 매우 짧아졌다는 거다. 과거엔 시부모와 며느리 갈등이 첨예했다면 요샌 장모와 사위 갈등이 심각하다. 그래서 젊은 커플들에게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하라’고 조언한다. 얼마나 부모 간섭이 심한지 커플이 와서 상담받고 가면 양쪽 부모들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 애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상담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물론 딱 잘라 거절한다.”(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가정의 갈등도 심각하다. 남자만 변하면 가정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한국의 가정 구조다. 여자들은 대개 바뀔 준비가 돼 있고 변화에도 유연하다. 남자들은 좀처럼 변하려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가정에 ‘재취업’한다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사회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데 남자만 ‘지금까지 돈 벌어다 주고 바람도 안 피웠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냐’는 식이라면 곤란하다.”(송)

하이패밀리는 지난달 경기도 양평에 ‘카펠라 오비(Capella Ovi)’라는 교회를 세웠다. 4.8평(15.9㎡) 남짓한 계란 모양의 이 교회는 부활과 생명을 상징하는 계란 모양을 가정의 회복과 연결시킨 공간이다. 교회 규모는 한 가족이 들어가 오붓하게 예배를 볼 수 있는 정도다. 교회가 세워진 3만 평 부지에는 가정치유회복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대형 교회 위주의 한국에서 작은 교회를 지은 이유는.

“교회에 가면 사실 자기 가족에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계란교회에선 남편의 숨소리를 느끼고 아내의 주름살을 눈여겨볼 수 있는 등 가족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은혼식·금혼식 등 가족끼리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이곳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얼마 전 결혼식을 치른 커플이 폐백 대신 이곳에서 성찬식을 하기도 했다. 작지만 천장이 3층 높이로 높고 계란 모양의 곡선 덕분에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낀다고들 한다.”(송)



-신학대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활동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교회를 세우자는 제안도 여러 번 받았고 유혹도 느꼈지만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교회에선 무조건 이혼하면 안 된다고만 하는데, 그러기보다는 가정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먼저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회를 이끄는 목사도 있어야 하지만, 문제가 있는 부부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가정사역 활동을 하는 나 같은 목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송)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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