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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의 지름 6㎝ 원형 함몰, 그 정체는…

“이번엔 꼭 진실을 밝히겠다.”
“달라질 게 없다. 이미 결론이 났다.”

채널 15 JTBC 탐사코드J 장준하 유골이 말하는 ‘죽음의 순간’


고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지 37년, 그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전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 진실을 밝혀줄 수도 있는 새로운 단서가 등장한 게 계기가 됐다.

지난 1일, 장 선생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유골에 특이점이 발견됐다. 두개골에 지름 약 6㎝의 원형 함몰이 드러난 것이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호권씨는 “두개골 뒷부분이 타원형으로 함몰된 것으로 볼 때 누가 뒤에서 가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유골을 검사한 서울대의대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는 ‘머리 손상’을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머리뼈와 골반 외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두개골의 손상이 무언가에 맞아서 생긴 것인지, 추락하면서 돌에 부딪혀 생긴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망치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됐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함몰의 크기로 볼 때 공사장에서 쓰는 망치로 가격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사장 망치는 육각형이나 팔각형인데 함몰은 원형”이라고 말했다. 무언가에 가격돼 두개골이 함몰됐을 수 있지만 적어도 망치 종류는 아닐 거라는 얘기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은 경기도 포천 약사봉으로 향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호림산악회 회원들과 등반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회원들이 점심을 먹는 사이, 장 선생은 좁은 산길을 계속 걸었다. 평소 장 선생을 따르던 김모(77)씨만 따라 나섰다. 그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씨는 “앞장서 걷고 있는데, 소리가 나 뒤돌아 보니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돌아가셨다”고 증언했다.

취재진은 충남 당진에 살고 있는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진실은 몇 만 년이 지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이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것을 두고는 “이미 수차례 조사해 결론이 난 것인데, 재조사한들 다른 사실이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장준하 선생은 생전 ‘유신 독재’에 항거하던 민주계의 아이콘이었다. 그 때문에 사인을 두고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 테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세 차례나 재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는 ‘진상 규명 불능’이었다. 19일 오후 9시50분, JTBC에서 방영되는 ‘탐사코드J’에서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장준하 죽음의 순간’을 둘러싼 엇갈린 주장과 현장을 다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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