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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의 뇌관 제거하려면

14년 전에 우리가 겪은 IMF 외환위기는 재벌기업들의 과도한 부채(금융기관들이 단기외채 차입 후 대출)가 뇌관이 되어 터졌고, 4년 전 월스트리트에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부채(주택대출 채권을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판매)가 뇌관이 됐다. 유로존 국가들의 요즘 재정위기는 정부 부채가 문제다. 부채를 관리하지 못하는 경제주체는 스스로도 파국을 맞게 될 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게 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 재무구조는 비교적 건실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가계부채가 위험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관련 경제부처나 한국은행은 ‘무시 못할 위험요인은 되지만, 당장 심각하게 대응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비교적 낙관하는 것 같다. 가계의 금융부채가 1000조원을 넘지만 금융자산 보유규모도 2300조원이나 된다는 분석이나, 가계부채의 69%는 비교적 소득이 높은 계층이 갖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시 통계치를 보더라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9%나 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77%)을 상회하는 과다부채 상태에 이르렀다. 정책당국의 낙관적 태도는 우리 경제가 3% 미만의 저성장 궤도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향후 2~3년간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청년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이 될 것이다. 또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조기퇴직자들이 뛰어드는 자영업도 생계유지 수단이 되기 어렵다. 정책당국이 가계부채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자영업의 경쟁력 강화 같은 것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지는 경로는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에서 은행권, 전체 금융시장이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지기 전에도 가장 답답하고 앞이 캄캄한 계층은 돈을 빌려 집을 산 국민들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돈을 빌려 내 집을 마련했는데 집값이 20~30% 하락한 경우가 많고, 그나마 매물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 기일은 계속 닥쳐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가계부채 가구 중 46%는 자영업자라는데 앞으로 음식·숙박업이나 도·소매업 같은 중소 규모 자영업이 단기간에 불황을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영업 역시 조기 퇴직자들이 계속 늘어나면 경쟁환경이 점점 나빠질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금융의 근본 문제는 주택대출의 상환구조가 주택구입자의 상환능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택가격이 장기 상승 추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하락 국면에선 다르다. 미국의 주택담보 대출처럼 20~30년 장기분할 상환을 하거나, 상환능력 상실 땐 주택 소유를 포기하는 출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중 일시상환 대출비중이 35%나 되고 향후 3년 이내에 57조원이 만기 도래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가계부채의 상환만기를 잠시 연장해주고 고금리 채무를 조금 낮은 금리로 일부 전환해주는 식의 소극적 대책으로는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30~40대 젊은 직장인들에게 상환기간을 10~20년까지 장기화해 주고 소득상승에 비례해서 분할상환을 하도록 해 ‘하우스 푸어’들의 숨통을 터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주택금융공사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고, 한은과 정부가 대규모 출자를 해서 주택금융공사의 채권발행 능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직장을 잃거나 자영업에 실패하여 분할상환 능력조차 없는 이들에 대해선 대출금융기관에 주택소유권을 일단 넘겨주고 향후 주택경기가 호전되고 지불능력도 회복되면 매도가격으로 다시 살 수 있는 환매청구권을 부여하면 될 것이다.

14년 전 외환위기 때 많은 기업들은 부동산을 갖고 있으나 현금이 없어서 빚을 갚지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보유 부동산을 토지개발공사에 매각한 다음 부채를 갚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기업들은 토개공이 발행한 채권을 매각대금으로 받고, 이 채권으로 금융기관 차입금을 상환했다. 기업들은 토개공에 넘긴 부동산을 자금사정이 풀린 뒤에 같은 가격으로 살 권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얼마에 부동산을 매각할 것인지 시비가 생기지 않았다. 수년 후 외환위기가 수습되고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되면서 기업이나 토개공 모두 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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