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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느끼는 로봇 개발… 욕하면 멍들듯 파랗게 변해

1 곽 교수는 나폴레온 힐의 유명한 성공학 저서『Think and Grow Rich』의 제목을 살짝 비튼 이화여대 산업디자인과 로비의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2 감성로봇 디자인 ‘라이’ 3 ‘한글봇’을 구성하는 자모 블록
“솔직히 한글을 좀 빨리 가르치고 싶었죠. 책을 읽으면 제가 편하니까요.”
한글봇 개발 과정을 설명하던 곽소나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딸 김이음(3)양이 한창 엄마를 찾던 지난해 초 곽 교수는 연구와 강의로 한창 바빴다.

파워 차세대 ① 인간-로봇 간 교감 꿈꾸는 곽소나 교수

딸아이가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된 블록 놀이를 즐겨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저걸로 글을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글봇 디자인의 단초는 이렇게 일상 생활 속에서 겪는 불편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해결해 보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곽 교수의 아이디어는 주위 동료들을 통해 구체화됐다. KAIST 후배이자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은호 박사(한국생산기술연구원 CT융합연구실 연구원)가 하드웨어 구성을 맡았다. 제자인 손영빈·이은욱·김지명씨 등이 블록 디자인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시제품 제작 등을 도왔다. 부친 곽윤근 KAIST 기계항공시스템학부 명예교수도 많은 조언을 해 줬다. 곽 교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로봇 블록을 만든다는 반짝 생각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해 준 동료들의 도움도 컸다”고 말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관찰해, 때로 엉뚱해 보이는 발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곽 교수의 강의 방법이기도 하다. 2007년 봄 건국대에서 로봇과 사람의 상호작용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됐다. 어려운 주제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로봇이 ~하면, ~한다” 형태의 문장을 만들고, 이를 구현할 아이디어를 내보도록 과제를 줬다. 나중에 한글봇 연구를 함께하게 된 수강생 김지명씨가 “로봇이 맞으면 멍이 든다”는 문장을 제시했다. 사람의 말에 상처를 입으면 로봇의 가슴에 멍이 든다는 뜻이었다.

4 언어청정로봇 ‘멍’ 5 감성로봇 디자인 ‘해미’
곽 교수는 이 발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연구 분야인 인간-로봇 상호작용(HR I·Human-Robot Interaction)과 관련된 최신 연구 주제가 떠올랐다. 인간의 대화 음성에서 특징적인 부분을 분석해,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는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곽 교수는 학생의 아이디어와 최신 기술을 결합했다. 두 달 만에 시제품이 나왔다. 거친 억양의 말이나 욕설을 하면 로봇 몸체가 멍이 든 것처럼 점점 파랗게 변한다. 거꾸로 애정 어린 말을 하면 얼굴에 홍조를 띠듯 붉은색으로 변한다. 이름은 언어청정 로봇 ‘멍(Mung)’으로 정했다. 멍 로봇은 2007년 8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 로-맨(RO-MAN) 2007’ 학술대회에서 은상을 탔다. 제품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여러 전시회에 소개되며 관심을 모았다.

곽 교수는 또 제3세계 아이들이 축구공처럼 갖고 놀다가, 어두울 땐 낮에 축적한 에너지를 활용해 전등으로 쓸 수 있는 로봇 ‘램피(LAMPY)’를 개발했다. 모두 현실 생활을 관찰하고, 사람이 필요한 점을 채워주는 새로운 개념의 탐구에서 나왔다. 곽 교수가 학생 시절 처음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도 감성 로봇이었다. ‘해미’란 이름의 이 로봇은 단순한 의사전달뿐 아니라, 시각·청각·촉각을 모두 이용해 친밀감 같은 ‘감정’ 요소까지 전할 수 있는 휴대용 로봇이었다.
곽 교수는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이다. 부친인 곽윤근 명예교수를 따라 대덕에 자리를 잡은 뒤 초등학교 때부터 박사 과정까지를 이곳에서 마쳤다. 산업디자인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독 로봇 연구를 선택한 것도 부친의 영향이 크다. 같은 로봇이지만 기계공학자인 부친과 달리 디자인과 인문학, 공학이 어우러진 융합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 중이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로봇 디자인으로 박사를 처음 땄고, 2006년에는 HRI 학회의 영 파이어니어로 선정되는 등 일찌감치 세간의 인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로봇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밤샘은 기본이고, 제작 단계에서 포기한 아이디어도 많다. 곽 교수는 “멍로봇과 한글봇의 전시회나 발표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평소 잘되던 로봇이 갑자기 작동이 안 되는 아찔한 순간도 몇 차례나 있었다”고 말했다.
곽 교수가 몸담고 있는 HRI 분야는 국제적으로도 21세기 들어 각광받고 있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김명석 교수는 “그동안 로봇 연구는 인간을 대신할 특정한 기능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런 기술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접목하려는 과정에서 심리학·사회학 등 인간 연구 분야와 융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화 성공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완구 기능을 대체하거나 기존 로봇 기능을 개량한 수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파워 차세대’ 자문위원을 맡은 정지훈 관동대 명지병원 교수(IT융합연구소장)는 의학 분야의 활용 가능성을 예로 든다. 정 교수는 “현재는 인간의 수술 기능을 정밀하게 대체하는 기술이 발전해 수술 로봇이 보급되는 단계”라며 “앞으로 홈닥터 등 의료 인력의 역할을 대체할 로봇이 등장할 텐데, 여기에는 환자와 상호 작용하고 교감하는 기능을 갖춘 HRI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런 사회적 로봇 연구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데다, 전자·자동차·기계 공업 등 제조업 기반과 우수 연구인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보다 까다로운 ‘소비자’를 갖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한국형 로봇 혁명의 비전을 살려나가려면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여러 분야가 합쳐지는 만큼 기존의 학문 분야 경계를 넘어서는 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KAIST 김명석 교수는 “기계·전자 등 공학은 물론 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성과를 통합하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며 “각 분야를 융합하고 어떤 물건을 왜 만들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 측면의 고려도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첨단 분야의 연구 성과를 시장으로 옮기기 위해선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파워 차세대’ 자문위원을 맡은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벤처기업협회 공동대표)는 “선진국들도 초기 단계인 첨단 신산업 분야 중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는 산업에 대해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며 “신산업 분야의 기초 연구는 물론, 이를 사업화하는 벤처기업 등에도 체계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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