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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분쟁 유발' 일본인 누구인가보니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정무국장 시절 집무실에 앉아 있는 야마자 엔지로. 그는 독도의 일본땅 편입, 한반도 강점의 과정을 이끌었다. [중앙포토]


“조선 땅” 日 내무성 의견 무시, 1905년 편입 주도
독도 분쟁의 유발자, 야마자 엔지로

독도를 몰래 자신의 땅으로 편입한 일본, 그 뒤 다시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킨 제국주의의 야욕은 어떤 경로를 거쳐 펼쳐졌을까. 이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이 있다. 일본 독도 왜곡의 뿌리이자 제국주의 첨병이다. 독도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지는 요즘 우리는 이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장보다는 차분한 사실 확인을 통해 일본의 왜곡과 억지를 잠재우자는 취지에서다. 매우 드물지만 이 인물을 면밀하게 추적한 저작이 있다. 『독도실록 1905』(예영준 저, 책밭)다. 그에 덧붙여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의 도움말을 통해 독도 왜곡에 이어 한반도 강점까지 넘본 이 일본인의 행적을 소개한다.



한반도 침탈 앞장선 ‘흑룡회’와 관련

19세기 말은 조선의 황혼 녘이었다. 한반도의 해역에는 낯선 철선(鐵船)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제국의 기운을 뻗치려는 낯선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그런 기운은 어느덧 황혼을 맞은 조선의 운명을 옥죄고 있었다. 1892년 당돌한 외모의 일본인이 부산에 입항했다. 일본 외무성의 초임 외교관으로 부산의 일본영사관에 부임한 야마자 엔지로(山座圓次郞·1866~1914)였다.



그가 벌인 첫 작업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로, 경부선의 측량작업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제국주의의 기운을 한반도로 뻗기 위한 인프라에 주목했던 셈이다. 그러나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조선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6세의 청년 외교관 야마자의 꾀가 번득였다. “조선의 새를 사냥한다는 명분으로 조선 정부에 허락을 받자”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사술(詐術)이었다. 그의 꾀대로 일은 벌어졌다. 조선 정부에 “새를 사냥할 테니 붉은 깃발을 세우면 사람들이 접근치 못하게 해 달라”고 한 뒤 부산~서울의 철로 부지를 샅샅이 측량했다. 그가 벌인 측량작업을 바탕으로 일제가 1904년 한반도 강점을 위해 경부선을 깔았던 것은 물론이다.



그의 출생지는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였다. 구마모토(熊本)와 함께 이 지역은 한반도 침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서면 원장은 “메이지(明治) 유신에서 주류에 섞이지 못했던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출신 정객들은 일본의 힘을 바깥으로 뻗는 확장정책을 주도하면서 결국 한반도 침탈의 선봉에 섰다”고 지적했다. 그 지역 출신자들로 이뤄진 대표적인 단체가 현양사(玄洋社)다. 나중에 한반도 침탈에 앞장선 조직 흑룡회(黑龍會)와 일본 낭인들의 모임인 천우협(天佑俠) 등이 다 현양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야마자는 이 현양사의 구성원으로서 우두머리였던 도야마 미쓰루(頭山滿)와 막역한 관계였다.



야마자는 1901년부터 1908년까지 일본 외무성 정무국장을 맡는다. 장관과 차관 밑에 국장으로는 통상과 정무만 있던 시절이었다. 통상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맡은 자리가 정무국장으로, 일본의 대외 정책을 모두 주무르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가 정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벌인 일은 부지기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독도를 강제로 일본에 편입하는 작업이었다. 아울러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 뒤 러시아와의 전쟁(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한반도 강점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독도 강제 편입의 사정은 이렇다. 일본 시마네현 출신인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어부가 있었다. 독도에까지 와서 그곳에 서식하던 강치(바다사자의 일종)를 포획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독도의 강치 잡이를 독점하기 위해 이 섬을 조선정부로부터 임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혹시 (독도가) 조선의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일본 수산국, 해군 수로부(水路部) 관리들의 말을 듣고 아예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편입하려는 청원을 낸다.



그에 따라 나카이는 내무성을 찾아갔으나 “조선 영토라는 의심이 있는 불모의 섬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다. 실망했던 나카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야마자가 정무국장으로 있던 외무성이었다. 1910년께 나카이가 정부 보고용으로 직접 작성한 ‘다케시마 경영의 개요’라는 진술서는 당시 야마자가 보인 반응을 이렇게 적고 있다.



“태연하게 듣고 있던 국장이 천천히 입을 열더니, 외교상의 일은 다른 사람이 관여할 일이 아니며… 시국(時局)으로 봐도 영토편입은 대단한 이익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무국장은) 시국이야말로 영토편입을 급히 필요로 하며 망루를 세워 무선 또는 해저전선을 설치하면 적함 감시에 대단히 요긴하지 않을까… 서둘러 청원서를 외무성에 제출하라고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야마자가 말한 ‘시국’은 그가 준비하고 있던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당시 일본은 울릉도에 이미 통신선을 설치한 상태였다. 최서면 원장은 “당시 해군의 전투는 누가 먼저 상대를 발견해 함포로 선제 사격을 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울릉도에 이어 독도에도 통신선을 가설해 러시아 발틱함대의 이동을 먼저 파악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 과정은 제법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하고, ‘량코(리앙쿠르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르던 독도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러 곡절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독도가 일본 땅으로 둔갑하는 과정은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어부의 개인적인 욕심,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야마자 엔지로의 음모로 결국 성사됐던 셈이다.



48세로 사망해 행적은 잘 안 알려져

최서면 원장이 최근 입수한 문서가 있다. 야마자가 가토 마스오(加藤增雄)라는 인물에게 보낸 편지 7장이다. 가토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대한제국 시절 서울 주재 일본 공사로 활약하다 고종의 신임을 얻어 한국에서 궁내부 고문으로 일했던 사람이다.



최 원장이 입수한 그의 편지 한 대목에는 ‘조선의 땅을 군사적으로 활용토록 조치를 취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가토에게 대한제국 왕실을 움직여 한반도의 일부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라는 권유였다. 1905년 벌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은 진해를 주목했다고 알려져 있다. 발틱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진출하는 길목인 진해의 군사적 중요성을 간파한 것이다.



야마자는 당시 영국과의 동맹 체결을 주도한 뒤 러시아를 제압해 아시아로 팽창하려는 계획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야마자는 가토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뜻대로 일본은 진해를 발틱함대와의 전쟁 기지로 십분 활용했다. 최 원장은 “이런 기록을 통해 일본이 어떻게 한반도를 병합까지 끌고 갔는지를 살필 수 있다”며 “야마자의 편지에는 두만강 하구 섬인 녹둔도를 정찰해 일본이 할양 받게끔 상황을 만든 뒤 만주 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야마자는 결국 독도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보호국화’에 성공했다. 을사늑약이 그 뒤를 이었음은 물론이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이 벌어진 뒤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는 물론 내정상의 모든 권한까지 빼앗는 정미 7조약을 체결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야마자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그의 역할이 이렇게 중대했음에도 그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야마자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1908년 외무성 정무국장 자리를 떠나 영국에서 4년 근무한 뒤 1913년 중국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주중 일본 대사였다. 그는 이듬해 5월 27일 집무실에서 쓰러진 뒤 사망했다. 중국 남부의 정치세력에 우호적이었던 그를 중국의 당시 실권자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독살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



유광종 기자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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