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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면 평생 구박"…결혼전 꼭 해야하는 의식?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영화 같은 한순간' 위해선 120만원도 아깝지 않다?
프러포즈 이벤트 유행의 명암



9일 저녁 서울 회기동 경희대 인근 한 카페에 남녀 한 쌍이 들어섰다. 카페는 작은 무대와 객석이 있는 소극장처럼 꾸며져 있다. 들어서자마자 남자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비운다. 2분 후. 막이 오르고 스크린엔 커플의 사진을 편집한 영상이 흘러나온다. 이어 남자가 무대로 나와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을 불렀다. 긴장한 듯 가사와 박자에서 연달아 실수가 나온다. 노래가 끝나자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꽃다발과 반지를 건넨다.



여자는 “노래는 왜 불렀어”라고 물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준비된 대사는 ‘나와 결혼해줘’인데, 남자의 입에선 “어우, 민망해.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는 “애썼어”라고 답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이벤트를 준비한 우성훈(34)씨는 “원래 더 멋있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우씨와 여자친구는 이틀 후 결혼할 예정이다. 우씨는 “매일 야근하고, 결혼 날짜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제대로 프러포즈 행사를 준비하기 어려워 이벤트 회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씨가 이날 지출한 비용은 35만원.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는 “낭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래 결혼식 자체가 과시적 소비다. 본 예식은 집안 어른들을 위한 행사라는 성격이 강해 우리들만의 이벤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러포즈(청혼) 의식을 치르려는 커플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 사업이 성황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프러포즈가 ‘결혼 전 꼭 해야 하는 의식’처럼 자리 잡으면서다. 떠들썩한 함들이기는 안 해도 프러포즈는 꼭 해야 한다는 추세다. 프러포즈의 원뜻처럼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날까지 잡은 커플들이 결혼식 직전에 많이 한다. 예비 신혼부부들이 결혼 준비 하느라 바쁜 틈을 이용해 프러포즈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급증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각종 프러포즈 이벤트 상품을 내놓은 업체는 전국에 1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예비 신부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근사하게 “결혼해 줘”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서비스의 핵심이다.



이벤트 종류는 다양하다. 우씨처럼 전용 카페나 영화관, 소극장 등을 빌려 영상을 상영한 후 반지를 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최근엔 남자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 공연 프러포즈, 곰인형 탈을 쓰고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스케치북을 넘기는 장면을 재현하는 프러포즈, 요트를 빌려 하는 프러포즈 등 다양해지고 있다. 적게는 30만원 선에서 많게는 120만원에 달하는 고가 상품도 나와 있다.



프러포즈 이벤트 신청자 중 절대 다수는 남성이다. 김인호(30)씨도 결혼을 앞두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경우다. 공연 관람 중 관객 참여 코너에 당첨된 것처럼 무대 위에 올라 약 15분짜리 극중 결혼식의 주인공이 된다. 김씨는 “결혼 날짜가 정해졌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내 될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싶어 준비했다”고 말했다. 15분 이벤트 비용은 식사 장소로 데려다 줄 리무진 대여 비용을 포함해 총 35만원.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의 여자친구는 눈물까지 보였다.



여친 체면 살리려고 씀씀이 커져



프러포즈 이벤트가 결혼 전 필수코스가 된 것은 드라마·영화 등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드라마 등에 남자 주인공이 카페를 통째로 빌리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에 연일 쏟아지는 연예인들의 프러포즈 관련 기사도 일조한다. 최근 결혼한 개그맨 정준하씨는 얼마 전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을 공개했다. 그룹 스윗 소로우와 정씨가 노래를 부르다 신부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영상이 전파를 탔다. 정씨는 방송에서 “결혼식은 다가오고 프러포즈 압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인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2005년 결혼한 배우 한가인·연정훈이 결혼할 때 프러포즈 방식이 크게 이슈가 되는 등 매스컴을 통해 성대한 프러포즈 얘기를 많이 접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러포즈 업체 이용자 중에는 “여자친구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결혼을 앞둔 여성들 사이에서 “어떤 청혼을 받았는지”는 어떤 예물을 받았는지와 마찬가지로 관심사다. 결국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심리로 대행 업체를 찾게 된다. 여기에 “제대로 프러포즈 하지 않았다간 평생 원망을 듣는다”는 주변의 부추김도 한몫한다.



최근 결혼한 이지현(29·교사)씨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그의 남편이 준비한 이벤트는 시댁에서 시부모님이 다 계신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온 가족이 고기를 구워 먹었고 이씨는 설거지까지 해야 했다. 이씨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그건 좀 아니었다’는 말을 많이 해 남편이 지금도 미안해 한다”고 전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결혼했다는 최보경(29·회사원 )씨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친구들이 프러포즈를 받은 얘기를 하면 손해본 것 같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여자들끼리 ‘누구는 어떻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하는 얘기가 무용담처럼 회자되면서 환상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 남성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2010년 결혼을 앞둔 남성 1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73%가 “프러포즈 때문에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둔 정민우(29·회사원)씨는 “상견례 다 하고, 결혼 날짜 다 잡은 후 신부의 독촉과 기대가 있어 마지못해 해주는 의례적인 이벤트로 전락했다”며 씁쓸해 했다. 강정원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자유연애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뿌리 내리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과거엔 중매인이 결혼의 내용에 조금씩 간섭하고 유도했다. 현재는 산업화된 중매인이 결혼을 도와주는 시대인데 프러포즈 이벤트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희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문화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건 맞지만 유행에 휩쓸려 가는 모습은 민망하다”면서 “별난 프러포즈보다는 결혼의 본질을 좀 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전영선 기자, 문창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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