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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은 여전히 ‘다크 나이트’ 배트맨 시리즈에 투영된 세계금융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미국 할리우드의 ‘블루칩’이다. ‘메멘토’를 시작으로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 등 참신한 영화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다. 2005년 ‘배트맨 비긴스’에서 시작된 그의 배트맨 3부작은 ‘다크 나이트’를 거쳐 지금 국내외에서 상영 중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른다. 매번 금융 관련 에피소드가 양념처럼 등장하는데, 각각의 장면은 당대 미국과 세계 금융시장의 공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배트맨 비긴스’, 글로벌경제 낙관론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미국의 가상 도시 고담을 수호하는 배트맨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배트맨 비긴스’다. 그는 부랑자의 총탄에 부모를 잃고 거대 기업집단 웨인 그룹의 경영권을 이어받는다. 철도·화학·정밀기계 업종을 영위하는 이 도시 최대 기업이다. 웨인은 고담시에 위기가 닥치면 배트맨으로 변신하지만, 평상시엔 정체를 감추고 한가로운 파티를 전전하는 한량 모습이다. 웨인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회사 지분 일부를 팔고 회사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긴다. 그러다 배신을 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고담시를 위협한 악당 라스알굴을 물리친 웨인이 이사회에 등장한다. 전문경영인은 “웨인이 더 이상 대주주가 아니다”라고 외치지만 웨인은 “우호지분을 매입했다”며 경영권을 다시 접수한다.

구미 자본시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와 방어 사례를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영화가 제작된 2005년은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극에 달한 시기다. 미 주택 가격은 한없이 치솟고, 중국 등 신흥경제권은 글로벌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었다. 자본주의 첨병인 주식시장도 2007년까지 이어진 장기 강세장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의 비즈니스 갈등은 호황 주식시장 내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지분 다툼에 그쳤다.

‘다크 나이트’, 反중국 정서 반영
시리즈 2탄으로 가보자. ‘다크 나이트’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에 만들어졌다. 전설적 악당 조커가 등장하는 이 영화에는 중국인 사업가 라우가 비중 있는 역할을 한다. 번듯한 사업가 같지만 실은 고담시의 검은돈을 관리해주는 불법 자금세탁자였다. 배트맨의 웨인 그룹에 합작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홍콩으로 도피한다. 조커와 싸우기도 바쁜 배트맨은 홍콩까지 날아가 라우를 붙잡아 고담시로 압송해온다. 라우는 중국에 대한 반감, 나아가 공포를 상징한다.

영화가 제작된 2008년은 미국이 쇠하고 중국이 흥하던 때였다. 미국 경제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여파로 휘청거렸고, 세계금융을 쥐락펴락한 월가도 해외 자본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에 지분을 파는 신세가 됐다. 1980년대가 일본 자본에 의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시대였다면, 2000년대 후반은 중국 자본에 의한 ‘바이 아메리카’의 시대였던 것이다. 미국인들의 위기감은 고담시 악당의 하나로 중국인을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금융시장은 게임의 규칙이 무시되는 무법천지로 바뀌었다. 고담시 악당들은 주식시장에서 포지션(postion, 자산 형태)을 조작해 웨인을 파산으로 내몬다. 악당 베인 일당이 가장 먼저 활동을 개시한 곳은 증권거래소다. 증권거래소를 점령한 뒤 증권거래를 중단시킨다. 악당들은 인민재판을 통해 고담시의 기득권층을 처단한다.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연상된다. 금융자본과 주식시장에 대한 반감이 영화로 옮겨졌다.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가 제작된 2000년대는 버블(거품) 경제로 시작됐다. 인터넷과 정보통신(ITC)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낯선 닷컴 기업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수익모델이 부족한 닷컴 버블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가파른 경기 후퇴에 당황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급속히 내렸다. 그 와중에 터진 것이 2011년 미 뉴욕 9·11 테러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 됐고, 정부는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했다.

유동성이 풀리다 보니 자산시장에 버블이 생겼다. 미 주택시장은 풍부한 유동성과 금융회사의 탐욕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대단한 호황을 맞이했다. 돈 빌리기가, 내 집 장만하기가 쉬웠다. 닷컴 버블로 인한 후유증을 주택 버블을 일으켜 막았던 셈이다.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1탄은 주택 버블이 커지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거품은 꺼진 뒤에야 거품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아직 평온했던 시절에 배트맨 시리트가 시작됐다.

최신 개봉작, 월가 점령 시위 시사
한편 2000년대는 동서 냉전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이슬람권과의 대립이 심화됐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은 이념이 아닌 종교·문화적 가치의 충돌을 보여줬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미국이 주택 버블 붕괴로 휘청거리던 2007년 이후에는 ‘중국 대망론’이 부상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미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외부의 적’은 옛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주의자에서 아랍과 아시아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배트맨 시리즈 2탄은 중국이 글로벌 경제의 중심으로 부각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배트맨 시리즈 3탄은 현재진행형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 금융 자본의 탐욕이 화두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비관론마저 엿보인다. 희망보다 걱정이 큰 시기에 만들어져서 그런지 가뜩이나 어두운 고담시 분위기가 더 어두워진 듯하다. 금융시장은 아직 ‘다크 나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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