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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정치 혐오증

어느새 공공의 적이자 안줏감으로 전락한 게 정치인들의 중요한 역할 같다. 말과 행동이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으니 흠 잡힐 일이 당연히 생긴다.
정치 혐오증은 한국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우리 정치 문화만의 문제점도 있다. 예컨대 낡고 투쟁적인 정치수사법이다. 독재와 싸웠던 경험 때문인지, 상대에 대한 칭찬보다는 나쁜 것만 부각시키고 흠잡는 습관들이 배어 있다. 과거에는 그런 투사들이 공감을 얻었지만. 민주사회에서는 타협과 절충을 모르는, 고집과 독선처럼 보인다. 어떤 사안이 있으면 떼로 서서 비분강개하는 모습도 마치 보스를 위한 충성 경쟁 같다. 전직 두 대통령이 언급했던 골목강아지와 동네강아지가 연상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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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유머의 부족도 거슬린다. 예컨대 누구에게 욕을 들었다면 여대생들이 기획했던 “잡년들의 행진”에라도 동참해야겠다며 웃어넘긴다면 ‘대인’소리라도 들을 것이다. 누구의 아류나 추종세력이란 소리를 들을 때 파르르 화내는 대신 오히려 더 엄정하게 그 대상의 공과를 분석하는 태도를 보여야 네거티브적 공격을 뛰어넘을 수 있다. 분노, 한, 억울함 등의 파괴적 감정을 삭이지 못하는 정서불안 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비극적 사건들은 역사 속에 넘친다.

정치혐오증의 원인은 유권자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내가 하면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훨씬 잘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일수록 들여다보면 자신의 가족이나, 사업장 하나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 극렬한 악담을 하는 사람 역시 대개는 비루하고 고립된 삶을 산다.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누구라도 비난해야 속이 후련하다. 모든 게 남 탓이고, 남의 티끌은 보지만 제 눈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긍정적 의견에 비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뇌 구조도 생각할 수 있다. 편향성의 틀 효과(Valence Framing Effect)다. 쉽게 말해, 특정 정치인에게 좋았던 느낌들은 쉽게 실망의 마음으로 변할 수 있는 반면, 한 번 누군가를 싫어하면 설령 그 사람이 좋은 업적을 내놓아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한 번 찍힌 사람은 영원히 ‘열외’이고 죄인인 것이다. 차브리스와 사이먼스가 쓴 “보이지 않는 고릴라(The invisible Gorilla)”에 언급되었듯,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한번 뿌리 박힌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변할 가능성은 그래서 크지 않다.

크건 작건 우리 모두에게는 권력 욕구가 있다. 당연히 나보다 조금 더 힘센 사람이 부러울 수 있다. 권력욕은 정의와 사명감으로 자주 포장되지만, 그 뿌리에는 남에게 주목받고 으스대고 싶은 나르시시즘과 남보다 더 누리겠다는 이기적 생존 욕구가 숨어 있다. 사실 어느 누가 수천만 명의 욕심을 다 만족시키겠는가. 주역의 한 구절처럼, 겸손하고 또 겸손하면 큰 강도 건너지만(謙謙君子니 用涉大川), 그릇은 작은데 경거망동하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 대한민국처럼 자신은 똑똑한데 단지 정치가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은 나라는 없다. 해서 호화로운 수사와 조작된 이미지로 포장된 거짓 히어로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권력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살림꾼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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